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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한국교인들은 거짓을 행한다는 것입니다.

by 골동품나라 밴드 리더 2005. 3. 8.
그러므로 한국교인들은 거짓을 행한다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온전히 행했기 때문에 하느님이 복을 주셔서 록펠러가 거부가 되었다면, 록펠러의 새발의 때만큼도 못사는 한국교회 교인들 전부는 온전한 십일조를 하지 않고 아나니아와 삽비라 처럼. 하느님을 속이고 십일조를 하는 자들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십일조를 떼어 먹는 바람에 록펠러처럼 거부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겁을 주어도 한국교인들은 십일조를 떼어 먹습니다. 그런 연유로 하느님꼐 복을 받지 못해 록펠러처럼 부자가 되지 못한 것입니다.

거짓을 일삼고 살아가는 목사가 자신들이 한말에 자신이 걸려 허우적 대는 모습입니다.온전한 십일조를 한 덕분에 부자가 되었다면, 록펠러처럼 거부가 되지 못한 자들은 모두 하느님을 속이는 자들이 되어야 마땅한 것입니다.그러므로 한국교회의 목사와 교인들은 모두 거짓 그리스도인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말도 안되는 궤변으로 허부적 대다가 떠나는 인생이 되는 것은 나이가 먹을 수록 심합니다. 나약한 의지와 판단력의 세포수가 감소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처참한 몰골앞에 회개 하기는 커녕 죽기전에 구ㅜ언을 확보받고 싶어 안달하는 것입니다..

욕심이란 늙는다고 줄어드는 것은 아닙니다..





┃[사두환님께서 남긴 내용]
┃(퍼온 글)

┃ 김폴  

┃록펠러는 십일조를 잘내서 거부가 되었다고??

┃그리고 한국목사들의 18번 노래는 세계적인 거부 록펠러가 하나님께 십일조를 꼬박 꼬박 잘바쳐서[안떼어먹고?] 세계적인 부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마 지금 이시간에도 어느 교회에서 이 말로 성도들을 속일지도 모릅니다.


┃록펠러는 세상이 다 아는 비밀종교단체인 프리메이슨 회원입니다.
┃미국에서 록펠러 재단의 사옥 건물위에 666마크가 있는것을 촬영하여 공개된 적이 있습니다. [10년전에 한국에도 번역 출간되었슴]

┃그리고 간교한 은행자본가 입니다.
┃[소수의 자본가가 부를 독점하므로서 세계단일정부와 세계단일 화폐를 만드는일의 주역입니다 아래글 -미국경제 파멸-참조]

┃일만악의 뿌리인 돈을 사랑하는 한국교회의 목사님들은 제발 정신차리시길 바랍니다.


┃┃[이석봉님께서 남긴 내용]
┃┃제목 : 돈을 바르게 쓸 줄 아는 사람 록펠러
┃┃  
┃세계 최고의 부자, 석유왕 자선가로 기억되는 록펠러, 그는 1839년 뉴욕주 리치포드의 허름한 오두막집에서 태어나 가난한 유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는 부자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센트럴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상과대학에서 3개월 동안 경영 공부를 한 후 열 여섯살 때부터 직장을 구했습니다.
┃┃
┃┃  1859년 20세에 클라크 앤 록펠러 회사를 설립하여 겸손과 성실로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31세 되던 1870년 스탠다드 석유회사를 설립하였습니다. 스탠다드 석유 회사는 세계에서 가장 큰 기업으로 가장 이윤을 많이 남기는 회사가 되었습니다.
┃┃
┃┃  그의 성공의 뒤에는 하나님이 주신 지혜,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었습니다. 그는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힘썼습니다. 어머니의 가르침 중에는 "아침에는 꼭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려는 시간이 필요하다"라는 교훈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물려준 신앙의 유산을 끝까지 지켰습니다.
┃┃
┃┃  그는 부자였지만 검소했습니다. 그에게도 좌절과 고통, 질병과 아픔이 있었습니다. 때로 사람들에게 오해와 질타도 받았습니다. 각종 잡지와 신문은 스탠다드 석유의 독점을 비판하며 정부를 쥐고 있는 낙지로 묘사했습니다(잡지 퍽(Puck)). 그러나 주저앉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를 보였습니다.
┃┃
┃┃  록펠러(Rockefeller)는 물질의 주인이 하나님이신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자기와 자기 가족만을 위하여 물질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는 미국의 존스홉킨스대, 예일대, 하버드대, 콜롬비아대, 시카코대학 등 여러 대학을 설립 및 지원하였습니다. 록펠러는 생애동안 24개의 대학과 4928개의 교회당을 세웠으며 록펠러 재단과 일반 교육 재단, 록펠러 의학 연구서 등을 설립하여 의료와 교육 그리고 문화면에서 사회에 큰 기여를 하였습니다.
┃┃
┃┃  그는 1937년 더 케이스먼트 저택에서 98세를 일기로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를 최고의 부자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그를 단지 돈 많은 부자로만 기억하지 않습니다. 그는 돈을 바르게 쓸 줄 아는 세계 최고의 자선가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를 신앙으로 이끈 록펠러의 어머니도 함께 기억합니다.
┃┃
┃┃  록펠러는 말했습니다.
┃┃  "나는 부모님 특히 어머니로부터 세 가지 신앙 유산을 받은 것이 성공의 비결이라고 생각합니다.
┃┃  1. 십일조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2. 교회에 가면 맨 앞자리에 앉아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  3. 교회를 다닐 때 교회의 일에 순종하고 목사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말라는 어머님의 가르침 때문입니다."
┃┃
┃┃  믿음의 사람 록펠러는 말씀과 기도와 순종의 사람이었고 십의 일조로는 감사의 양이 차지 않아서 평생을 하나님께 십의 칠, 팔조를 드리며 헌신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