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 글은 당당뉴스* 에서 옮겨 온 글입니다.-
장산이 교회에 나가고 싶단다. 750만 달러짜리 뉴저지 집에서 사는 장산은 맨해튼에서 사업을 하는 부자다. 15년 전부터 글을 통하여 알게되어 호형호제하는 불신자인데 나와 친분이 깊다. 장산은 내가 지어준 아호다. 집안 대소사에 불러 기도받기를 좋아하고 여행을 데리고 다니지 못해 안달이다.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교회 밖의 장로님인 셈이다.
15년 동안 난 한 번도 장산에게 교회 나가잔 말을 한 적이 없다. 기다리고만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스스로 고백을 한 것이다.
“70을 넘고보니 교회에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카토릭에도 다녀봤지만 그래도 등촌따라 기독교인이 되고 싶습니다. 등촌은 은퇴했으니 내가 나갈 수 있는 교회를 소개해 주세요.”
그가 소개받고 싶어 하는 교회는 세속과 돈에 때묻지 않은 교회를 말한다.
“성당을 몇 년간 나가봤습니다. 헌금함을 비치해 놓아 자발적으로 헌금하게 하지 헌금채를 돌리지 않더라고요. 한국에서는 절에 다녔는데 절에 가봐도 시주함만 있지 헌금채를 돌리지 않아요. 그런데 교회는 모일적마다 헌금채를 돌리니 이해가 안돼요. 우리 가게에서 일하는 아주머니가 있어요. 아주 어렵게 사는 분인데 교회부흥회에서 1만 달러를 헌금했답니다. 놀랐어요. 누가 그러는데 ‘하나님은 전능하셔서 1만 달러 내면 100배인 백만 달러로 축복해 주시기 때문에 빚을 내서라도 헌금 한다’는 거예요. 그 말이 맞나요?”
내가 어이없어 하자 그는 내친김에 계속했다.
“장로인 친구따라 뉴욕의 교계행사에 자주 구경가봤지요. 그런데 목사 안수식에도, 교협회장 취임식에도, 심지어는 신학대학교 졸업식에도 헌금채를 돌리면서 헌금을 걷더라고요. 그 신학교가 엉터리통신신학교였으니 다행이지만 말입니다. 아무튼 세속에 물들지 않고 돈에 때 묻지 않은 교회를 소개해주세요”
집으로 돌아온 나는 장산이 다닐 수 있는 뉴저지에 있는 교회를 찾아봤다. 같은 값이면 내가 잘 아는 목사가 목회하는 교회를 소개해 줘야지! 그런데 모두가 헌금채를 돌리고 있었다. ‘절간이나 성당처럼 헌금함에 헌금하게 하는 교회가 그중에 하나도 없단 말인가? 뉴저지에 혹시 그런 교회가 있으면 금방 추천해 줄텐데......, 좋은 교인 하나 놓치게 생겼으니 아까워라 아까워!’
나는 이번 기회에 헌금에 대하여 근본적으로 생각해 보고 싶다.
“한국교회 교인들은 헌금 넘버원입니다. 미국교인들은 1달러 2달러를 하는데 한국교인들 십일조 말고도 주일헌금 심방헌금 감사헌금으로 봉투를 가득 채우더군요. 미국교회는 300명 교회 목사도 우체국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30명교인 데리고도 목사가 넉넉하게 살아요. 한국교인들 헌금열심에 부럽습니다.”
이민교회를 방문한 미국목사는 주보에 끼어있는 헌금내역들을 보고 혀를 내두른다.
-십일조, 주일헌금, 생일감사, 환갑감사, 결혼감사, 출생감사, 백일감사, 돌 감사, 이사 감사, 입학감사, 취직감사, 심방감사, 범사감사, 장학헌금, 도서헌금, 부흥회헌금, 성탄절헌금, 추수감사절헌금, 선교헌금, 건축헌금, 구제헌금, 건축헌금, 주일 밤 예배헌금 ,수요예배헌금, 금요철야헌금, 구역예배헌금, 기타헌금 헌금헌금 또 헌금......,
“와우! 세금 많이 뜯어내기로 유명한 악명 높은 미국 국세청의 세금고지서보다도 훨씬 많네요.”
한국교회가 원래는 그렇지 않았다. 중소교회가 사이좋게 평화공존을 누리던 60년대까지만 해도 주일 낮 예배때만 헌금을 거두었다. 부흥회때는 아예 헌금순서가 없었다. 병고침을 받거나 은혜를 받은 이들이 가끔 감사헌금을 했을 뿐이다. 그것도 헌금이 아니라 연보(捐補)라 했다. 그러다 조모목사가 신유와 기복설교로 대형교회를 만들고 난 후부터 한국교회는 모일 때마다 헌금이다. 수요일 밤에도 금요철야에도 헌금채를 돌린다. 부흥회때는 밤마다 헌금이다. 아마 지구상에 있는 수백 개 종교 단체 중 헌금 자주 걷기로는 단연 교회가 첫 번째일 것이다.
지금 한국의 대형교회들은 넘쳐나는 헌금을 주체할 수가 없을 지경이다. 그래서 호텔급 기도원을 짓고 대학을 세우고 신문사를 차리고 병원과 노인아파트를 짓는데 투자한다. 전국에 지성전을 짓고 재벌기업이 해외 자회사를 내듯 해외선교로 교세를 확장한다. 재벌들의 문어발식 사업 확장과 다를 게 없다. 확장하지 않으면 교인들의 기가 죽어 교세가 작아져 버리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엄청난 돈이 정부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고 결국 교인들 주머니에서 나오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교인들은 지 닭 잡아먹고 좋아하는 눈먼자들처럼 자신들이 헌금하고도 하나님이 주셨다 한다. 헌금 걷는 수법이 이단들과 다를 바가 없다. 한국교회는 헌금의 대종인 십일조를 축복의 종자씨앗이라고 설교한다. 말라기 말씀 때문이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4:10)
옛날 신정(神政)으로 통치하던 구약시대 성경구절이다. 그런데 목사들은 헌금수단의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써먹는다. 하나님은 전능하셔서 십일조교인에게 쌓을 곳이 없도록 물질축복을 주신다고 목사들은 설교한다.
구약시대에 십일조는 유태민족뿐 만 아니라 타민족의 종교관습이기도 했다. 애굽인 들은 10의 2조를 황제에게 바쳤다.(창47:24) 십일조는 땅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나그네와 고아를 위하여 내는 종교적 소득세였다.(신26:12) 그런데 구약시절 십일조는 오늘날 대형교회 십일조 통계처럼 거액이 아니라 구제금처럼 초라했다. 그래서 말라기 시절에는 십일조로 먹고사는 레위 족들이 가난을 견디다 못해 성전일을 버리고 도망가 수배를 당하기도 했다. 십일조로 먹고 살기가 오죽 가난했으면 그랬을까?
신약시절 이후 십일조는 의무조항이 아니었다. 초대 기독교지도자 이레니우스는 십일조의 의무를 폐지하고 자발적인 십일조를 강조했다. 헌금과 연보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헌금”(獻金)은 “하나님에게 드리는 돈”이란 뜻이다. 제사(祭祀)지낼 때 신에게 바치는 헌물(獻物)인 제물(祭物)의 의미가 있다. “연보”(捐補)는 “자기재물을 내어 남을 도와주는 돈”이란 뜻이다. 일종의 구제금이다. 헌금은 신(神)에게 드리는 것이요 연보(捐補)는 사람에게 드리는 것이란 말이다. 구약 제사시절에는 “헌금”이나 “헌물”로 부르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유태인들이 여호와 하나님에게 소나 양을 바치면(獻物) 죽여서 몽땅 불태워 살라버렸다. 헌물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기에 드리고 난 후 불살라버려 사람이 취하지 못했다.
물에 빠져 자살해 죽은 처녀와 목매달아 죽은 총각이 영혼결혼식을 하는 걸 본적이 있다. 처녀 집에서 신랑양복, 이불, 장롱을 비롯한 고급혼수를 마차에 가득 싣고 처녀가 자살한 물가로 갔다. 거기서 영혼결혼식을 치루더니 바리바리 마차에 싣고 온 혼수들을 몽땅 불태워 버리는 것이었다.
“아까워라 아까워, 새 혼수를 불태워 버리다니!” 장가 갈 때 달랑 여름양복 한 벌을 얻어 입은 것이 전부인 가난뱅이 전도사는 여간 아까운 것이 아니었다.
“아깝다니요. 신랑영혼이 가져간 것이라서 결코 없어져버린 게 아니 랍니다”
구약의 제물(祭物)이 저랬을까? 헌금이나 헌물은 그런 것이다. 귀신이건 참신이건 신에게 바쳤다면 사람이 손 댈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연보는 다르다. 헌금이 신(神)에게 드리는 것이라면 연보는 사람(人)에게 드리는 것이다. 고린도교인들은 미리 연보를 거두어 두었다가 바울이 방문하자 필요한데 쓰라고 내놓았다. 교인들이 십시일반으로 거두어서 목회자 생활에 도움이 되라고 내어 놓는 게 연보다. 그래서 작은 교회장로는 연보로 십삼조, 십오조를 내놓아 목사를 돕는다.
그래도 목사는 가난하다. 수십만 명이 모이는 대형교회의 십일조는 매주 수억을 넘는다. 연보 정신대로 하면 그렇게 많이 거둘 필요가 없는 것이다. 구약도 하나님 말씀이기에 십일조를 해야 한다면 구약의 다른 말씀도 똑같이 지켜야 옳다. 구약대로라면 안식일(일요일이 아니라 토요일)에 일하는 자는 죽여야 한다. 무당 불교를 비롯해 기독교이외의 이교도들도 모조리 죽여야 한다. 구약을 믿는 이슬람은 지금도 안식일을 실천한다. 그래서 중동을 지옥으로 만들고 자살테러로 세계를 떨게 하고 있다. 그렇다고 십일조 하는 것을 죄라 할 수 없다. 자원해서 하는 것이라면 10의 9를 하면 어떤가? 다다익선(多多益善)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우리 동네 목사님은 가난했다. 교인이 적어서 아무리 헌금을 해도 끼니가 어려웠다. 교인들은 헌금 말고도 개인 주머니를 털어서 목사님을 도왔다. 아버지가 먼 길을 떠나는 날이면 어머니는 몰래 광으로 들어가 목사님 댁으로 쌀을 퍼 날랐다. 나는 교회를 다니지 않았지만 쌀자루를 들러 메고 목사님 댁으로 갈 때면 의적홍길동이라도 되는 듯 기분이 좋았다. 교회가 어려우면 십일조 말고 십삼조, 십오조라도 해야 한다. 단지 헌금을 하더라도 연보정신으로 하는 것이 옳다. 그게 사도행전 시절의 연보정신이기 때문이다.
▲ 등촌 이계선 목사
1.출생헌금 2.순산헌금 3.돌헌금 4.백일헌금 5.헌아식헌금 6.새차구입헌금 7.취업헌금 8.좋은 일자리헌금 9.아르바이트헌금 10.개업보호헌금 11.범사헌금 12.좋은여행헌금 65.목사자식 신학대가면 4년간 등록금헌금 66.목사차량헌금 67.교회차량 헌금 제대로된 출처를 못찾겠습니다. 자료가 이리저리 다 퍼져서 그래요. 그래서 못올리고 말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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