췌장암말기 3개월 시한부 완치사례-병원치료 거부 자연치유로 완치-
아래글은 현대의학 라이센스가 있는 의사분께서 쓰신글입니다
대학병원에 계시다가 개인병원을 운영하신후 현대의학에 한계를
느끼고 의사라는 직업을 그만두고 농사를 지으시고있으며 현재는
베지닥터회원이고 자연치유연구소를 운영하며 한살림,교육청
보건소 등등 강의를 다니시는 분입니다
구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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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 여명 췌장암 환우의 치유
일년의 세월 구대장 09.11.12
2008년 10월 중순
소화가 안 되고 명치부근이 아파서 동네의원을 가니 음식물이 얹힌 것 같다고 약을 처방해 주었습니다 나은 듯 하더니만 또 많이 아파 조그마한 내과에 가서 종합검진을 했습니다. 위내시경
간초음파 ct촬영 등등…….
위내시경 사진을 보니 십이지장으로 내려가는 구멍이 막혀있었습니다. 색깔도
시퍼렇게(쓸개즙색) 물들어 있었습니다. 췌장암의 크기가(약12cm) 커서 위를 밀어
구멍이 막혔습니다. 약 보름동안 물과 물 같은 죽으로만 살았으니까요.
빨리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해서 다음날 새벽첫차타고 무조건 서울삼성병원 응급실로 올라갔습니다.
이틀 동안 검사결과 췌장암 말기판정(3개월 여명 임파선 전이 간전이 복막전이 복수 많이 참) 을 받았습니다.
의사가 하는 말이 자기병원에서는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진통제(봉지에 붉은
사선 두 줄 마약 알약 한 봉 펫치 한 봉)를 처방받아 퇴원하고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데 진주
경상대학병원 암센터에 근무하는 친구가 하는 데까지 해 보자며 대전 건양대병원 사이버나이프를
소개했습니다.
그곳에서 검사를 다시한 후 의사가 하는 말 시술도중에 죽을 수 있으며 성공(1년 생명연장)확률 5%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거금을 들여 시술을 했습니다. 약 한달 후 경상대학병원에서 다시검사 했는데 의사가 하는 말 "상태가 이런데도 사이버를 하자고하던가요"라고 했으며 항암이나 방사선을 하더라도 확률이 40%도 안 된다고 했습니다.
12월 30일까지 병원 생활과 병원 쫓아다니다가 그래서 인간이 못 고친다고 하니 매달릴 곳은 하나님밖에는 없다는 마음으로 2008년 12월 31일 저희부부는 경기도 휴전선부근 조용한산속 기도원에 올라가 둘이같이 21일 작정금식기도를 했습니다. 단식 기간 중에도 하루도 안 거르고 맨발로 눈길을 걸었습니다.
보호식은 거의 한 달 가까이했습니다. 처음에는 쌀뜨물을 마셨고 점점 농도를 짙게 하며 죽에서,
미음으로(흰쌀), 그리고 점점 농도가 짙어지면서 현미로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보식 초반에 된장
국물을 조금 마신 것이 탈이 나 몸이 퉁퉁 부어 산행도 못하고 다시 3일간 금식한 경험도 있습니다.
금식 못지않게 보식을 잘 해야 된다는 것을 그때 알았습니다.
보식을 마치고 오로지 저의 생명을 하늘에 맡긴 후 그때부터 주위에서 좋다고 하는 것을
이것저것 먹기 시작했습니다. 유근피. 청국장. 버섯효소. 겨우살이. 민들레. 쑥. 각종약초. 각종버섯류 등등…….
그 추운 겨울에 맨발로 산행을 했으며 두서없이 이것저것 했습니다.
2009년 2월 말쯤 집(시내)으로 내려와서 저의아내와 자식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는걸 보니 내가
시간을 그냥 낭비해서는 안 되겠다 싶어 그때부터 스스로 하루일과표를 만들어 자기 전까지
계획적으로 살기 시작했습니다.
새벽5/00기상 5/30 새벽예배 7/00식사 9~11시 산행 12/00 식사 2~4시 산행 6/00식사 9/00취침. 중간 중간에 위의 것을 먹으며 투병을 시작했습니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아무리 통증이 와도
누워 있으면 죽는다는 일념 하에 무조건 밖에 나와 걸었습니다.
또 4월 21일 공기 좋은 시골로 구들을 갖춘 통나무 흙집으로 가족 모두 이사를 했습니다.
한약도 처방받아 (무료임)지금까지 먹고 있으며 또 한 명의 지인을 만났는데 그분이
뜸자리(구당 김남수옹 제자 무료)잡아주어 지금까지 뜸을 떴으며 야채스프를 소개해
그것도 지금까지 먹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분의 지인이 이 카페이며 살메님 이십니다. 쑥뜸과 야채스프. 한약은 3월부터 해왔습니다. 그러던 중 한의사를 한 분 만났는데 체질검사를 해주어 지금까지 체질식(소음인; 찬 음식을 피함. 주로 뿌리음식을 따뜻하게 데워서)을 하고 있습니다.
통증은 발병당시는 명치부근이 주로 아팠고 11월부터는 등 쪽이 2월부터는 배 전체가 5월까지 아팠으며 6월이 접어들면서 서서히 없어지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괜찮습니다. 통증이 오려는 느낌이 들면 쪼그려 앉아 미친 듯이 웃어재끼기 시작했고 10분 이상 웃다보니 통증이 사라지더구요.
9월부터 지금까지의 생활계획표와 식단입니다.
04/20기상 04/30 발목펌프운동 05/00새벽예배 06/00 야채스프 마신 후 바로 쑥뜸(배꼽왕뜸2개) 07/00 아침식사 08/30 한약 09/00 판크레아틴 프로폴리스 클로렐라 09/30 약간의 과일 10/00비타민c 오메가3 셀레늄 11/00 야채스프 12/00 점심식사 13/30 한약 14/00 프로폴리스 비타민c 오메가3 클로렐라 판크레아틴 15/00 간식 17/00 야채스프 18/00저녁식사 19/30 한약. 뜸(직접구 팔 다리 배 등 머리) 20/00 판크레아틴 오메가3 비타민c 프로폴리스 클로렐라
셀레늄 20/30 발목펌프운동 21/00 취침
식사는 주로 채식위주의 체질식 생선은 이틀에 한번 꼴로 먹으며 식사시간은 1시간정도 꼭꼭 씹어서 먹습니다. 소화도 잘되고 식욕이 왕성하나 소식하려고 부단히 노력합니다. 뭘 먹어도 약이다
생각하고 먹습니다.
. 아무리 바빠도 산행은 빠지지 않으며 초창기 때부터 그랬지만 산행은 남들이 걱정할 정도로 빡세게 합니다. 지리산을 한 달에 한두 번 가며 나머지는 우리 집 뒷산(5~700고지)을 매일 갑니다. 산에 갈 때는 약을 필히 지참하여 가지고 다닙니다. (살메님께 배웠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요. 뭘 먹어도 낳는다는 믿음이래에 먹어야하며 항상 웃으려고 노력하며 항상 긍정적인 생각을 해야 합니다. 저는 이렇게 살려고 항상 노력합니다. 인간인지라 힘들 수도 있으나 노력하면 될 거라 믿습니다. 통증이 오면 크게 한 번 웃어보세요
저는 이렇게 해보니 신기하게 없어진 듯 했습니다.
두서없는 글 읽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저의 집은 경남 진주에 있습니다. 부근에 지날 때 들리세요.
황토방 비워 드릴게요. 공기도 좋고 산도 좋습니다. 저의 식단에 부족함이 있다면 조언 부탁드립니다.
2009.11.12. 15:06
벌써 암 확진 받은 지가 일 년하고도 두 달째가 됐습니다.
작년이맘때는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이 병원 저 병원 쫒아 다닌 게 엊그제 같습니다. 의사의
말 한마디에 (3개월 간전이 임파선전이 복막전이 복수가 참) 집안 온 식구가 울며불며 정신없이
헤맸던 것을 생각해보면 기가 찰뿐입니다. 저 혼자 자살을 하려고 유서까지 적어 지갑 속에 넣어
다녔던 게 지금 생각해보면 부끄럽습니다. 지금의 저는 제 아내와 아이들이 저를 살려놨습니다.
항상 머릿속으로는 고맙게 생각하는데 몸과 입이 머릿속을 따라주지 못해 미안할 뿐입니다
저 같은 경우는 다른 분들처럼 이 요법 저 요법으로 한 게 아니라 이것저것 잡종으로 했기 때문에
저의 투병기에 대해서는 뭐라고 할 말이 없습니다. 다만 통증이 5월까지는 있었는데 6월이 되면서
통증이 사라졌고 지금까지는 큰 문제는 없습니다. 저 나름대로는 열심히 산행하고 항상 웃을려고
노력하고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하는 그런 사람이 될려고 노력합니다.
제가 살메님을 만난 것도 크나큰 행운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요즘은 시골에서 좋은 공기 마시며 뒷산에도 다니며 또 한 번씩 지리산도 다녀오곤 한답니다.
아무튼 이 카페의 회원님들 모두 힘을 냅시다.
저도 앞으로 내 뱃속의 암덩이와 같이 상부상조하며 더욱더 노력하며 살겠습니다.
앞으로 5년 10년 후에도 이 카페의 회원이기를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해 봅니다.
2009.12.11. 12:11 http://cafe.daum.net/lovepencancer/PxsG/118
어제 초등학교 동창회모임이 있어 나갔더니 진주 경상대학병원 암센터에 근무하는 친구가 나와
있었습니다. 그 친구가 이런저런 말끝에 자기병원에서 내가 연구대상이라나 뭐라나 하더군요.
만날 때마다 병원에 와서 검사해보자고 해서 돈 안 받으면 해볼 수도 있는데…….라고 했더니
그 뒤에 만나서 무료로 해주겠다고 했지만 한 귀로 흘려버렸습니다. 그 후 아무 말이 없더니
요즘은 나보고 항암안하기 참 잘했다고 합니다.
주위에 친구들도 이젠 제가 참 잘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몇 일전에 친구장인어른이
췌장암말기(병원에만 의지)였는데 돌아가셨거든요. 모두들 나보고 병원 안 간다고 난리더니……
. 그 친구들의 콧대를 꺾어놓고 나니 얼마나 내 자신이 뿌듯하고 기분이 좋던지 하늘을 날아갈듯 합니다.
모두들 힘내시고 인간답게 살아봅시다. 파이팅!
2010.01.05. 10:38 http://cafe.daum.net/lovepencancer/QBYR/3
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됩시다
사: 사랑하는 사람이 될줄도 압시다
해: 해맑은 웃음으로 항상 우습시다 히히히 호호호 하하하 크크크 키키키
요: 요놈(종양)도 그러면 순진해질 겁니다
2010.01.10. 08:47 http://cafe.daum.net/lovepencancer/QBSL/6
감; 감사 합니다
사; 사랑하는 사람끼리
합; 합심하여 이겨낼수있게 해줘서 더욱 감사합
니; 니다 서로의 사랑을 확인할수있게 해줘서 감사합니다
다; 다함께 감사하며 이겨냅시다 모든님들 화이팅합시다 아자!아자!
이상의 글은 3개월 여명을 선고 받았던 췌장암 말기 환자의 투병일기 일부입니다. 본인의 허락 하에
모 췌장암 환우회 카페에서 복사한 내용으로, 직접 인터뷰하여 살짝 보완하였고 보기 좋게 손을
약간 보았습니다.
잘 알다시피 췌장암은 아주 빠르게 진행되어 가장 무서운 암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3년을
훌쩍 넘겼습니다. 지금은 동료 환우들을 위해 전화 상담은 물론 방문 상담도 기꺼이 응대하곤 합니다. 이제 자기 밥값을 하기 위해 가볍게 짬짬이 돈벌이를 할 정도로 정상인 생활수준까지 올랐습니다.
위의 글을 읽으면서 많은 사람들은 감탄하면서도 헷갈려 합니다. 뚜렷한 요법이나 치료법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해서 완치가 되었을 까 의아해 합니다. 현대의학을 받은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뚜렷한 대체요법을 한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럴까요, 심지어 ‘봤어?’하고 의심하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분이 살아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제 눈엔 정말 쉽게 발견됩니다. 이 글을 읽어 보기 전에 잠깐 만나서 몇 마디 나눌 때 이미 그래서 살아계시는구나 하고 알아차렸습니다.
그 이유가 궁금하다고요? 한 마디로 그 분은 자연치유의 길을 제대로 걸으셨기 때문입니다. 저를
만나기 전까지도 자신의 길이 자연치유의 길이라는 점을 뚜렷이 정리하지 못하고 계시더군요. 비록
자신이 걸어 온 길을 분명히 알지 못했지만 자연치유의 길을 제대로 걸으셨던 거지요. 지금부터
그 분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정리해보겠습니다.
1> 완치를 위해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조건을 완벽히 갖춘 분입니다.
거의 모든 암 환자들과 크게 다를 바 없이 얼마 살지 못할 거라는 의사의 사망 선고를 이 분 역시
받아들였습니다.자살을 생각하며 유서도 써 놓을 정도였으니 이미 포기 상태나 마찬가지라 보입니다.
그 당시 암에 대한 지식은커녕 지혜도 없었으니 일개 환자가 의사의 말을 무시할 수 없었을 겁니다.
당연한 태도입니다. 그래서 포기 심정으로 그러나 마지막 남은 인생이라도 잘 정리하겠다는 일념은
끝까지 놓지 않고(희망을 잃질 않고) 2009년 세밑에 산으로 단식기도를 들어갑니다.
그동안 거부해왔던, 아내의 바램인 신앙의 힘을 빌어 마지막 희망을 걸고 숲속 기도원에서
자신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단식으로 허기진 배를 움켜지고 시시때때로 나타나는 암성 통증으로
고통스러울 때 찡그리는 대신 미친 듯 웃었고, 누워 있으면 죽는다는 일념 하에 추운 눈길을
맨발로 걷습니다.
엄청난 의지력을 발휘한 것이지요. 단식을 마치고 집(시내)으로 돌아와서 가족들이 자신을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는걸 보고 시간 낭비해서는 안 되겠다 마음을 다시 가다듬고 스스로 하루일과표를 만들어 자기 전까지 계획적으로 살기 시작합니다.
뭘 먹어도 낳는다는 믿음이래에 항상 웃으려고 노력하며 항상 긍정적인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럴까요, 처음 만났을 때 너무나 밝은 모습에 깜짝 놀랄 정도였습니다. 어찌나 밝은
표정이었는지, 췌장암 환우회 번개팅에 참석한 분들중 가장 환자 같지 않은 분이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아내와 내내 그 분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이후 저희도 더욱 웃고
긍정적으로 살아야겠다는 것을 깨달게 됩니다. 이렇듯 이분은 나을 거라는 희망, 믿음, 확신,
그리고 자신감과 긍정적인 마음을 모두 갖추고 강한 의지력으로 이겨냈던 것입니다.
바로 그분의 이런 삶의 태도가 누구도 무서워하는 췌장암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던 첫 번째 이유입니다.
2> 둘째, 올바른 길을 걸으셨습니다.
강한 의지력을 보이는 분들을 가끔 봅니다. 암 선고를 받아도, 누구나 망설여하는 수술,
항암이나 방사선을 받아들이고도 두려운 기색 없이 당당하게 대처하는 분들은 종종 있습니다.
배짱이 두둑한 분들이지요. 그러나 강한 의지력, 희망적 태도나 긍정적 태도만으론 완치에
이르는 데 부족할 때가 많습니다. 한 동안 잘 이겨내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계속되는
시련(치료 후유증과 재발 등) 앞에 끝내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곤 합니다.
이런 경우는 주위에서 비일비재로 확인됩니다. 그 이유는 올바른 길로 걷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위 글 당사자는 일반 암 환자와 다른 길을 걷습니다. 어떻게
걸었는 지 살펴보겠습니다.
1. 자연치유력을 높이는 첫 단계
어차피 먹어도 토하니 굶는 것을 첫 번째로 택했습니다. 다시 말해 음식을 거부하는 자기
몸이 원하는 데로 곡기를 일단 끊어버린 겁니다. 아주 중요한 선택입니다. 자기 몸에 대한
요구를 무시하지 않고 존중했던 겁니다. 또한 자연치유력을 해치는 일들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일반 암 수술에 비해서는 덜 스트레스 사이버 나이프만 받았고 다행히 큰 무리를 받지 않은 듯합니다. 수술, 항암, 방사선, 그리고 체력 보강하려며 의사들이 권유하는 고기를 선택하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한약, 침, 뜸 등 다양한 대체 요법을 선택 역시 크게 무리하지 않은 선에서 자기 판단 하에서
한 듯 보입니다. 이렇듯 내 몸이 내린 처방을 무시하지 않고 방해하지 않고 잘 따랐습니다.
즉 자연치유력을 높이는 가장 중요한 첫 번째 단계를 잘 받아들였던 겁니다.
2. 자연치유력을 높이는 두 번째 단계. 자연치유적 삶
1) 체질식이라고 잘못알고 생선도 먹긴 했지만 기본적으론 치유식인 현미밥 채식을 선택했습니다. 다른 요법으로 선택한 대부분이 각종 산야초였고, 이 역시 자연식물이였습니다.
2) 비록 허기진 몸이었어도 움직이는 일을 포기하지 않고 굳세게 걸으셨습니다. 또한 시골로 이사한
뒤에는 텃밭을 일구어 자신이 먹을 먹을거리도 가꾸기 시작합니다. 낮에 충분히 움직이고 좋은 공기를 마시고 살았으니 밤에도 그럭저럭 잘 잘 수 있었을 겁니다.
맞습니다. 잘 움직이고 잘 자는 일은 살아있는 자의 의무이자 권리입니다. 이 권리를 포기하면 병이 들고 병이 낫지 않습니다. 자연치유적 삶의 두 번째 요소인 신체활동과 쉼을 잘 받아들였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분이 위 글 주인공처럼 맨발로 눈길을 걸어야만 하는 건 아닙니다. 그분은
평소에도 산행을 즐겨하셨기에 기본 체력은 남달랐습니다. 자기 몸에 맞는 활동과 쉼이 필요합니다.
3) 당연히 공기 좋은 숲 또는 숲 근처 시골에서 살았듯이 자연의 혜택을 막끽했습니다.
4). 앞서 말한 건강한 마음가짐, 즉 마음의 평화를 잘 키워갔습니다. 모든 직장에서 오는 모든
스트레스를 과감히 벗어던지고 한적한 시골로 이사를 가 텃밭을 일구며 마음을 비우고 살아갑니다.
3. 자연치유력을 높이는 세 번째 단계.
그도 사람인지라 불안해했습니다. 세상에 떠도는 각종 자연요법과 대체요법을 찾아 자신에게
적용시키고 관찰했습니다. 산야초, 건강보조식품 등 대체요법, 침 뜸 한약 등 한의학적 방법 등
경제적 부담이 크게 느끼지 않는 선에서 이것저것 찾아 선택합니다. 이들 중 자연치유력을
방해하는 건 거의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우연한 선택치고는 참 올바른 선택이었습니다.
아마도 희망과 긍정의 힘을 바탕으로 자신에게 집중하는 힘이 컸기에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3> 자연치유력을 높이는 세 번째 단계.
자기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면서 스스로 걸어갔습니다. 가족의 도움도 있었지만 자기
스스로 모든 것을 판단하려고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세상에 널리 퍼진 수많은 요법에 크게
흔들리지 않고 나름대로 원칙을 세워 실천했습니다. 자기 자신이 의사가 된 겁니다. 자기
몸 안의 의사의 처방을 잘 받아들이고 그대로 잘 따라온 명의가 되어갔던 겁니다.
이와 같이 거의 완벽에 가까운 자연치유의 삶, 자연치유적 삶을 걸어왔습니다. 그렇기에 이 분은
빠르게 호전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이 상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면 이미 완치되었고
정상인보다 더 건강하게 살 것으로 확신합니다. 대다수 생존자들은 자신이 온 길의 핵심을 잘 모를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먹어서 나왔다, 어떤 요법을 해서 나았다라고 말하곤 합니다. 아주 좁은 시각이지요.
현재 시행하고 있는 건강보조식품이나 대체요법은 초반에는 거의 하지 않았고 오히려 통증이
완화된 뒤부터 더 많이 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 요법에 대한 의존도가 그렇게 크지 않았고 오직 자기 몸의 자연치유력에 더 집중하며
걸어왔습니다. 삶이 바뀌지 않으면 치유되지 않습니다. 이분은 병 만드는 삶에서 자연치유적 삶으로
아주 빠르게 치유의 확신을 키워가며 내달려 왔기에 그 만큼 쾌차를 보인 겁니다. 누구나 그 기회는
있습니다. 그 열쇠는 바로 자기 자신의 몸 안에, 자기에게 있습니다. 주변을 너무 자주 둘러보지
마십시오. 자신에게 집중하고, 자신이 가야 할 길에 집중하십시오.
한가지 더.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할 때 비록 자신이 먹진 않지만 곁에서 고기를 구워준다고 하는 말을 언뜻
들었습니다. 그런 태도는 위험합니다. 육식을 먹어도 되는 음식이라는 관점을 버리지 않는다면,
언젠가 휩쓸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만약 이 분이 자신이 다 나았다고 자만에 빠져 옛 생활에 점점
깊이 발을 담그면 다시 도질 것이고, 그 땐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될 겁니다. 완치로 가는 길은 결코
어느 한 순간으로만 결정되는 게 아닙니다. 뿌린 만큼만 늘 거둡니다. 스스로 도울 때만 하늘은
돕습니다. 누구도 예외는 없습니다. 자기 자신은 물론 가족들 모두 가야할 길로 받아들이길
간절히 기대합니다.
췌장암말기 병원치료 거부하고 자연치유로 완치시키다.-항암제로 살해당하다 항암치료 구부하면 암을 고친다. 항암제는 증암제 발암제 암전이제 자연이 암을 고친다. 자연치료법 암고치는 방법 말기암치료법 췌장암치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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