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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동품 판매완료

포대화상 유래-중국 미륵보살의 현신-200년 넘은 포대화상-골동품-

by 골동품나라 밴드 리더 2015. 2. 10.

 

포대화상 유래-중국의 미륵보살의 현신-200년 넘은  포대화상-

 

 

포대화상은  지금으로 부터 1100년전에 중국의  봉화현에서 태어났으며, 이름은 계차이고, 일찍 부모를 여위고 출가하여 도업을 쌓았다고 알려 졌는데, .그 시절 전쟁으로 인하여  고아와 굶어 죽어 가는 사람들로 넘쳐 나는 것을 보고 , 하산하여 불쌍한 사람들을 구제하러 다녔습니다..

 

 

스님은 커다란 자루를 메고 다니면서 시주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자루에 담았는데, 사람들이 물건을 주면 반듯이 쓰다듬고 받았으며 , 먹을 것을 주면 맛만보고 모두 자루에 넣었으며,  그러나 돈을 주면 절대 받지 않고 되돌려 주었답니다..

 

이렇게 전국을 돌아 다니며 시주한 물건이나 음식을 헐벗고 가난한 이웃들에게 모두 나누어 주었다고 합니다...포대화상 스님에게 물건이나 음식을 얻은 가난한 사람들이 그 때부터 재복이 터지면서 가난을 면하고 굶주리지 않게 생활이 윤택해 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병자들은 모든 병이 다 치유 되었답니다.....

 

 

뚱뚱한 몸에 언제나 웃음을 짓고 배는 풍선처럼 불러서,  자루를 둘러메고 다녔기에 사람들은 그를 일컬어 포대화상이라고 불렀습니다...

 

 

 

포대는 큰 자루에 물건을 담아 자비를 베푼다는 뜻이며 , 화상은 넉이 높은 스님을 뜻하는 것입니다.....

 

 

포대화상은 무엇이던지 주는 대로 먹고, 아무곳에서나 무위도식하며 잠을 청했고 세속사람들과 별반 차이없이 어울리며 살아가면서 깨우침을 주었으며, 또한 포대화상은 때로는 길흉을 예언 하였는데 틀린적이 없었으며, 눈이 내리는 곳이 있어도 눈이 몸에 뭍지않았고 ,맑은 날에 나막신을 신으면 비가 내렸으며, 짚신을 신으면 비가 그쳐 , 사람들은 포대화상의 차림새만 보고도 날씨를 알아 챌 수 있었다고 하지요...

 

포대화상은 장난치는 것을 좋아하여, 어린아이들과 많이 놀아 주었는데, 어느날 한사람이 " 스님 스님은 깨달음을 얻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찌하여 귀한 시간을 어린아이들하고만 놀면서 허비하십니까  저희에게 선의 진수를 보여 주십시요 ?... 하고 질문하자

 

스님은 자신이 메고 있던 자루를 쿵하고  땅에 내려 놓으며 "이것이다 , 이것이 선의 진수다 " 라고 말하자, 사람들이 어리둥절하면서 서로를 처대보자, 포대화상은  " 이것이 내가 보여주고자 하는 전부이다..내가 짐을 내려 놓았듯이 그대들도 자신들의 짐을 내려 놓아라 " 하고 말하였는데,  

 

그러자 그들은 또다시 " 그러면 그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라고 질문을 하였고 포대화상은 다시 자루를  둘러매고 발걸음을 걸으면서 " 이것이 그 다음일이다...나는 짐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이 짐은 나의 것이 아니다.이제 나에게 모든 짐들은 단지 어린아이들의 장남감이 되어버렸다 "...라고 하면서 길을 떠났다고 합니다....

 

 

그러나 포대화상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를 미친사람으로 취급하였고, 짓굿은 아이들은 놀리면서 막대기로 때리기도 하였는데, 그는 웃음으로 받아 넘겼고, 아이들과 싸우면서 바보짓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행동이 욕망을 가진 현세의 인간들을 깨우치기 위함에서 비롯되었다고   하지요.....

 

 

 

불교계에서는 불교 특유의 한시를 읆거나 시를 짓는데,  그것을 가리켜 게송이라고 게송[揭頌]이라고 부르는데 포대화상이 지은 게송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  포대화상 게송   --

 

 

밤마다 부처를 보듬고 자다가 아침마다 같이 일어난다 

 

일어나건 앉건 서로 붙어 다니며, 말을 하건 하지 않건 머물고 눕는다

 

털끝만큼도 서로 떨어지지 않으니, 몸의 그림자 같구나

 

부처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자 할진대 다만 말하는 이놈이니라 

 

 

바루대 하나로 천집의 밥을 얻어 먹으며, 외로운 이몸 만리길을 떠나네,

 

 

맑은 날에도 사람만나기가 어렵고, 길을 묻는 사이 머리에는 백발이 내렸네,,,

 

늠름하고 자재하여 하는일이 없으니, 한가롭고 한가로워 출가한 장부일세

 

눈앞의 참된 도를 본다 하여도, 티끌만큼도 기이하게 여기지 않으리...

 

나에게 포대가 하나 있으니, 허공처럼 걸림이 없어라...

 

 

열어 펴면 우주에 두루하고, 오므릴때도 자재 하도다

 

미륵불 중에도 진짜 미륵불 , 백천억가지로 몸을 나누어

 

항상 사람들 앞에 나타나도 사람들이 스스로 알지 못하네...

 

 

포대화상은   이 게송을 마지막으로 남기면서 반석위에서 단정하게 앉은 채로 입적 하였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이 마지막 게송을 듣고 , 포대화상을 미륵불의 화신으로 여겨 존경하여 받드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포대화상이 죽고 난 후 얼마지나지 않아 그의  초상을 그리는 것이 유행이 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17세기부터 포대화상을 그리기 시작하였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포대화상  그림은 몇점 남겨져 있는데 귀한 편입니다...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것은 그림 이외의 다른 작품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래의 대추나무를 깍아서 만든 포대화상은 嘉慶 병진년 [丙辰年 :1796]에 만들어진 것입니다...포대화상이  우리나라에 들어 온지 그리 멀지 않는 싯점에서 만들어진 포대화상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주 단단한 대추나무를 깍아서 해학적으로 만든 것으로 나무 밑에 발가락만 다시 드러나게 만들어 포대화상의 진면목을 새롭게 각색한 조신시대 장인의 지혜가 비범해 보입니다..

 

 

이런 발상은 우리나라 선조들이 생각해 낼 수 있는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창작활동의 면모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만들어 진 시기가 200년이 넘을 정도로 오래된 포대화상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진귀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작품의 독창성이나  얼굴의 한국적인 미소나 형태가 친근감을 주는 아주 귀한 문화재이자 보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보면 볼수록  멋들어진 귀한 보물이자 유물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자손만대에 물려줄  가보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보면 당장이라도 구입을 하려고 할 것 같은데 말입니다...

 

골동품은 주인을 알아 보는 사람에게 찾아 간다 라는 말이 공감이 가는 것 같습니다....

 

 

 

오늘날의 산타크로스 할아버지와 비슷한 역활을 한  포대화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