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9월 8일) 낮 글쓴이 *이근호 목사*
번잡한 안양 인덕원 4거리 2층에 위치에
담배연기로 답답한 허름한 어느 커피 전문집
박기삼 대장간 출판사 사장님은 커피맛이 없다고 하셨다.
10년 전, '예수 사회'를 처음 찍을 때는 15,000부가 나왔다고 하셨다.
그 때 당시로 150만원이 쏟아부어졌다고 하셨다.
그러다가
10,000부, 5,000부, 3,000부
결국
'예수 사회'의 출간은 멈춰졌다.
날이 갈수록
교회는 복음으로부터 자기 교인들을 차단시키기 시작했다.
기성 교회는 눈을 뜬 것이다.
옛날 불교가 민중들의 불교가 되기 위해서는 자진해서 무속인이 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데 눈이 뜬 것처럼
오늘날 교회가 교회로서 지탱하기 위해서는
대중들이 원하는 복의 정당성을 신의 이름으로 제공하고 빌어주어야 교회가 살아남을 수 있다는데 눈이 뜨였다.
그래서
교회에는 복음을 철수 시켰다.
예수님을 위해 모든 것을 걸었고
또 목숨까지 걸었던 사도들과 스데반 집사의 이야기는 걷어내었다.
예수는 그들에게 단지
복 빌어주는 무당의 오야봉이기를 원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자요 주의 종님들은 목사님들은
그 오야붕 무당(예수)의 똘마니 이기를 대중들은 원했다.
대중들이 원하는 것을 컨셉으로 하지 않는 교회는
대중들이 떠난다.
남은 것은
매달 집주인에게 날아오는 홀의 월세 청구서이다.
밤 새 커놓는 십자가 네온사인의 전기세도 감당 못할 지경이다.
그래,
"대중들의 심성 속에 자리잡은
그 물질적 축복을 실현시키는 신종 무당으로 거듭나자!"
이로서
교회 마다
복음 거부 운동이 벌어진다.
교회에 좋은 이미지를 갖고 오래간 만에 교회 찾은 안정된 중산층도
이미
축복 따내기 경영대회장으로 변해버린 교회의 대세에 마지못해 동참한다.
아무래도
교회 안나녔다가 죽어 천국 간다고 보장받기 힘들다고 느꼈지는 모양이다.
이래 저래
교회에서
복음 들어본지 오래다
신참 목사든
고참 목사든
심지어
신학교에 입학원서 낸지 얼마되지도 않는 신학생마저
교회 번창 이외는 아무 것도 모른다.
만약
복음이나 예수님이나 성경을 들먹이며
교회 번창을 막는자는
교회 목사, 부목사, 전도사, 장로, 집사 할 것없이 왕창 달려들어
"이 놈 이단입니다 주의하세요. 교회 부흥을 가로막는 놈입니다."라고 떠들어서 교계 바닥에서 매장시킬 요량이다.
박사장님은 처참한 심경에서 말씀하신다.
옆 테이블의 담배연기가 이곳까지 점령했다.
잔뜩 흐려진 안경 너머로 눈동자가 가려지기에 나는 입만 주목하고 있었다.
"사람이 산다는게 뭡니까? 복음 증거하라고 살지 그냥 맹목적으로 오래 살으라고 있는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교회마다 십자가 복음을 의도적으로, 제도적으로 차단하는 기운이 더욱더 세어진 겁니다.
김형희라는 분은 교도소 있을 때, 교도소 내 쓰레기 통 안에서 구겨진 '예수 사회'를 발견하고서 처음으로 복음이 이런 거구나 라고 알았다는 겁니다.
문서가 아니면 기존 교회에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을 접근할 길이 없어져 버린 겁니다.
교회는 조금이라도 복음이라고 느껴지면 비상벨을 울러 절대로 전도되지 못하도록 예민해진 세상,
이런 세상이 이렇다고해서 복음을 전해야 될 책무가 있는 성도들이 세상 탓만 할 수 없지요.
저는 대구 동원교회에서 6개월 교회 생활하고 지금까지 한 번도 교회 생활을 한 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뜻은 교회 세워라는 것이 아니라 진리, 오직 진리를 알고 그 진리의 복음으로 천국을 소개하라는 것이 우리 하나님의 뜻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진리는 오직 성경에만 있다고 믿습니다.
성경을 전하고, 진리를 전하고, 복음을 전하고 이것 외에 성도가 살아야 될 목적이 또 있더란 말입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알지 못하고, 이런 복음이 있는 줄로 모르고, 못 접해보고 사는데,
우리가 그들과 같은 시대에 살게 하시는 이유가 그들에게 이런 복음이 있음을 전하는데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동안
주위에
아무도 진리와 복음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없어서 경제적으로 심히 힘에 부치면서도 문서 전도를 하였고 '예수 사회'를 발간해서 나누어주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믿습니다.
이 시대에 각가지 언론 매체들이 있지만 문서 선교만이 복음을 못 대해 본 자들에게 복음 전하는 가장 좋은 길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다른 매체들은 이미 메시저급 교회들의 자본이 대중들에게 복음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차단시키고자 이미 대세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소규모 문서 선교는 아직도 전달 여지가 있다고 믿습니다.
이상에 제 뜻인데 이 목사님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나는 박사장님의 긴 이야기 가운데 하나만 여운이 남았다.
"인간이 맹목적으로 왜 삽니까?, 무엇 때문에 아직 살아있습니까?"라는 말씀이 그 말씀이다.
더불어
같이 복음 전하자는 이야기는 참으로 얼마만의 듣는 이야기인가!
많은 목사님들을 만났지만
만나서 우선 물을 수 밖에 없는 질문은
'인간이 맹목적으로 왜 삽니까?'가 아니라
아직도 교회가 유지되고 있습니까? 복음 좋아하는 교인들이 거의 없을 건데 생활비는 어떤 식으로 충당됩니까'라는 신상 걱정이 우선이었다.
이 질문은 다음과 같은 나의 속 마음의 대신하는 말이다.
"목사님, 아직도 복음만을 전해서 교회 승부 걸 생각이십니까? 정 힘드시면 그냥 기존 교회가 하는 식으로 돌아셔서도 목사님을 경제적으로 못 도와드리는 형편에서 우리 남은 자는 목사님을 욕하지 않겠습니다"라고 정치적 흥정책이라도 제시하고 싶었다.
싶게 말해서
새삼스럽게 헌금 강변하는 설교하셔도 우리 목사들이 당신을 이해하고 싶습니다라는 뜻이다.
그러나 박사장님의 입에서 이런 대화가 나오지 않았다.
"목사님 사람이 왜 살아야 합니까?"
어떤 식으로 복음 전도 안 하려거든 살 필요없이 사는 인간이라는 말이다.
나는 다음과 같이 장단을 맞추었다.
"발간하면 되잖아요
하지만 다음과 같은 조건이 둡시다.
저서가 특정인으로 쏠리게 하지 말고, 재정적인 뒷바침도 후원하는 자의 후원금으로 유지되어 관심있는 모든 분들이 자신이 직접 선교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즉
특정 단체에 일임해서 돈만 내고 내 몰라라 하는 기분을 갖게 하기 보다는 회원들이 실제로 자신이 운영하는 문서 선교 단체가 되기를 저는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자진을 다양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박사장님께서 어렵게 꺼낸 자신의 긴 이야기에 보람이 있다고 여겼는지 기뻐하시면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덧붙였다.
"저는 우리 교회(매인교회) 교인들에게 같은 취지의 말을 했습니다. 우리 교회도 재정적으로 이 책자 발간에 참여 할 것입니다. 바라기는 복음을 아는 여러 교회들이 조금씩 참여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말했다.
"이 일을 위해서 '예수 사회' 공동 발기인을 모집할 필요가 있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문서 선교에 관심과 동참할 의사가 있는지 두루 알아보기 위해서 제가 크로스빌리지 게시판에 글을 올리겠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모인 관심과 기대가 기초가 되어 조금씩 전진해 봅시다.
제 생각에서 이 일은 어떻게 하든지 해야만 하는 일처럼 느껴집니다"
담배만 깊에 내뿜던 옆 테이블의 서로 마주 앉은 중년 신사들은 무슨 속상한 일이 갑자기 있었던지 음성이 높아지면서 고함치기 시작했다.
이제 속히 이 커피점을 나가야만 한다는 생각이 나나 사장님에게나 들었다.
나는 왜 사는지?
왜 더 살아야 하는지?
뭘 하고 죽어야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번잡한 안양 인덕원 4거리 2층에 위치에
담배연기로 답답한 허름한 어느 커피 전문집
박기삼 대장간 출판사 사장님은 커피맛이 없다고 하셨다.
10년 전, '예수 사회'를 처음 찍을 때는 15,000부가 나왔다고 하셨다.
그 때 당시로 150만원이 쏟아부어졌다고 하셨다.
그러다가
10,000부, 5,000부, 3,000부
결국
'예수 사회'의 출간은 멈춰졌다.
날이 갈수록
교회는 복음으로부터 자기 교인들을 차단시키기 시작했다.
기성 교회는 눈을 뜬 것이다.
옛날 불교가 민중들의 불교가 되기 위해서는 자진해서 무속인이 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데 눈이 뜬 것처럼
오늘날 교회가 교회로서 지탱하기 위해서는
대중들이 원하는 복의 정당성을 신의 이름으로 제공하고 빌어주어야 교회가 살아남을 수 있다는데 눈이 뜨였다.
그래서
교회에는 복음을 철수 시켰다.
예수님을 위해 모든 것을 걸었고
또 목숨까지 걸었던 사도들과 스데반 집사의 이야기는 걷어내었다.
예수는 그들에게 단지
복 빌어주는 무당의 오야봉이기를 원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자요 주의 종님들은 목사님들은
그 오야붕 무당(예수)의 똘마니 이기를 대중들은 원했다.
대중들이 원하는 것을 컨셉으로 하지 않는 교회는
대중들이 떠난다.
남은 것은
매달 집주인에게 날아오는 홀의 월세 청구서이다.
밤 새 커놓는 십자가 네온사인의 전기세도 감당 못할 지경이다.
그래,
"대중들의 심성 속에 자리잡은
그 물질적 축복을 실현시키는 신종 무당으로 거듭나자!"
이로서
교회 마다
복음 거부 운동이 벌어진다.
교회에 좋은 이미지를 갖고 오래간 만에 교회 찾은 안정된 중산층도
이미
축복 따내기 경영대회장으로 변해버린 교회의 대세에 마지못해 동참한다.
아무래도
교회 안나녔다가 죽어 천국 간다고 보장받기 힘들다고 느꼈지는 모양이다.
이래 저래
교회에서
복음 들어본지 오래다
신참 목사든
고참 목사든
심지어
신학교에 입학원서 낸지 얼마되지도 않는 신학생마저
교회 번창 이외는 아무 것도 모른다.
만약
복음이나 예수님이나 성경을 들먹이며
교회 번창을 막는자는
교회 목사, 부목사, 전도사, 장로, 집사 할 것없이 왕창 달려들어
"이 놈 이단입니다 주의하세요. 교회 부흥을 가로막는 놈입니다."라고 떠들어서 교계 바닥에서 매장시킬 요량이다.
박사장님은 처참한 심경에서 말씀하신다.
옆 테이블의 담배연기가 이곳까지 점령했다.
잔뜩 흐려진 안경 너머로 눈동자가 가려지기에 나는 입만 주목하고 있었다.
"사람이 산다는게 뭡니까? 복음 증거하라고 살지 그냥 맹목적으로 오래 살으라고 있는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교회마다 십자가 복음을 의도적으로, 제도적으로 차단하는 기운이 더욱더 세어진 겁니다.
김형희라는 분은 교도소 있을 때, 교도소 내 쓰레기 통 안에서 구겨진 '예수 사회'를 발견하고서 처음으로 복음이 이런 거구나 라고 알았다는 겁니다.
문서가 아니면 기존 교회에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을 접근할 길이 없어져 버린 겁니다.
교회는 조금이라도 복음이라고 느껴지면 비상벨을 울러 절대로 전도되지 못하도록 예민해진 세상,
이런 세상이 이렇다고해서 복음을 전해야 될 책무가 있는 성도들이 세상 탓만 할 수 없지요.
저는 대구 동원교회에서 6개월 교회 생활하고 지금까지 한 번도 교회 생활을 한 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뜻은 교회 세워라는 것이 아니라 진리, 오직 진리를 알고 그 진리의 복음으로 천국을 소개하라는 것이 우리 하나님의 뜻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진리는 오직 성경에만 있다고 믿습니다.
성경을 전하고, 진리를 전하고, 복음을 전하고 이것 외에 성도가 살아야 될 목적이 또 있더란 말입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알지 못하고, 이런 복음이 있는 줄로 모르고, 못 접해보고 사는데,
우리가 그들과 같은 시대에 살게 하시는 이유가 그들에게 이런 복음이 있음을 전하는데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동안
주위에
아무도 진리와 복음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없어서 경제적으로 심히 힘에 부치면서도 문서 전도를 하였고 '예수 사회'를 발간해서 나누어주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믿습니다.
이 시대에 각가지 언론 매체들이 있지만 문서 선교만이 복음을 못 대해 본 자들에게 복음 전하는 가장 좋은 길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다른 매체들은 이미 메시저급 교회들의 자본이 대중들에게 복음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차단시키고자 이미 대세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소규모 문서 선교는 아직도 전달 여지가 있다고 믿습니다.
이상에 제 뜻인데 이 목사님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나는 박사장님의 긴 이야기 가운데 하나만 여운이 남았다.
"인간이 맹목적으로 왜 삽니까?, 무엇 때문에 아직 살아있습니까?"라는 말씀이 그 말씀이다.
더불어
같이 복음 전하자는 이야기는 참으로 얼마만의 듣는 이야기인가!
많은 목사님들을 만났지만
만나서 우선 물을 수 밖에 없는 질문은
'인간이 맹목적으로 왜 삽니까?'가 아니라
아직도 교회가 유지되고 있습니까? 복음 좋아하는 교인들이 거의 없을 건데 생활비는 어떤 식으로 충당됩니까'라는 신상 걱정이 우선이었다.
이 질문은 다음과 같은 나의 속 마음의 대신하는 말이다.
"목사님, 아직도 복음만을 전해서 교회 승부 걸 생각이십니까? 정 힘드시면 그냥 기존 교회가 하는 식으로 돌아셔서도 목사님을 경제적으로 못 도와드리는 형편에서 우리 남은 자는 목사님을 욕하지 않겠습니다"라고 정치적 흥정책이라도 제시하고 싶었다.
싶게 말해서
새삼스럽게 헌금 강변하는 설교하셔도 우리 목사들이 당신을 이해하고 싶습니다라는 뜻이다.
그러나 박사장님의 입에서 이런 대화가 나오지 않았다.
"목사님 사람이 왜 살아야 합니까?"
어떤 식으로 복음 전도 안 하려거든 살 필요없이 사는 인간이라는 말이다.
나는 다음과 같이 장단을 맞추었다.
"발간하면 되잖아요
하지만 다음과 같은 조건이 둡시다.
저서가 특정인으로 쏠리게 하지 말고, 재정적인 뒷바침도 후원하는 자의 후원금으로 유지되어 관심있는 모든 분들이 자신이 직접 선교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즉
특정 단체에 일임해서 돈만 내고 내 몰라라 하는 기분을 갖게 하기 보다는 회원들이 실제로 자신이 운영하는 문서 선교 단체가 되기를 저는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자진을 다양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박사장님께서 어렵게 꺼낸 자신의 긴 이야기에 보람이 있다고 여겼는지 기뻐하시면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덧붙였다.
"저는 우리 교회(매인교회) 교인들에게 같은 취지의 말을 했습니다. 우리 교회도 재정적으로 이 책자 발간에 참여 할 것입니다. 바라기는 복음을 아는 여러 교회들이 조금씩 참여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말했다.
"이 일을 위해서 '예수 사회' 공동 발기인을 모집할 필요가 있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문서 선교에 관심과 동참할 의사가 있는지 두루 알아보기 위해서 제가 크로스빌리지 게시판에 글을 올리겠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모인 관심과 기대가 기초가 되어 조금씩 전진해 봅시다.
제 생각에서 이 일은 어떻게 하든지 해야만 하는 일처럼 느껴집니다"
담배만 깊에 내뿜던 옆 테이블의 서로 마주 앉은 중년 신사들은 무슨 속상한 일이 갑자기 있었던지 음성이 높아지면서 고함치기 시작했다.
이제 속히 이 커피점을 나가야만 한다는 생각이 나나 사장님에게나 들었다.
나는 왜 사는지?
왜 더 살아야 하는지?
뭘 하고 죽어야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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