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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교회신앙

싸리버섯과 다래...그리고 사라진 십자가..

by 골동품나라 밴드 리더 2006. 9. 13.

 

올해는 비가 오지 아니해서 버섯이 자라나지 못한탓에  버섯이 귀합니다. 겨우 몇송이 싸리 버섯을 끝으로 더이상은 참싸리 버섯을 만나보기가 어려 울듯 싶습니다.

 

까치버섯입니다.흔치 않은 버섯입니다만, 맛은 별로 입니다..

 

광대버섯 입니다.독버섯입니다.

야생 느타리 버섯입니다..

오랜만에 만난 제비새끼입니다..

다래가 한창 입니다..

 

사라진 십자가.... 십자가 마을 에서 옮겨 온글..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시며, 당신을 향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믿기만 하면 됩니다. 믿기만 하면 당신은 구원을 받게 됩니다. 예수를 믿습니까? 이제 예수를 믿기로 결심하십니까?

네, 믿습니다. (이제부터 예수를 믿기로 결심합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 이후로 제도교회에 가입된 그 사람을 향해 어느 누구도 그를 정죄할 수 없다. 이제는 그가 믿는 그 신앙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위로만이 그 사람에게 주어져 있을 뿐이며, 성화의 길을 그는 부지런히 준비하게 되는 것이다. 말씀도 이전에 선포된 말씀과는 달리 세상과는 단절했다고 하는 그를 향해 그를 위로 하는 말씀으로 바뀌어 버린다. 이제 그는 거듭났으며, 성도인 것이다. 그가 세상 속에서 믿지 않는 자로 살았을 땐, 그를 허물과 죄로 죽어 있다고 정죄하였던 그 말씀, 그 선포된 말씀이 이제는 그가 거듭났으므로 그를 위로하는 말씀이 되어 버린다. 복음을 향한 그의 고백과 제도 교회 내에 가입되어 있다는 그 이유가 "그를 죄인으로 규정하던 그 말씀을, 위로의 말씀으로 바꾸어 놓는 계기"가 된다. 설령, 그의 인생 가운데 잘 풀리지 않는 일들이 있을지라도 그것은 어떤 큰 섭리와 뜻이 있기 때문이며, 결국은 그를 그가 알지 못하는 형통한 길로 이끌 것이라 주장하며 하나님의 당신을 향한 섭리와 큰 뜻을 믿고 참아내라 한다.

교회의 목회자들은 때론, 기복주의를 비판하기도 하면서 성도를 위로하며 성화의 길을 부지런히 걸어가라고 당부한다. 이제는 제도 교회에 가입되었으므로 남은 것은 성화의 길을 부지런히 걸어가는 것 뿐이며, 그 가운데 하나님의 위로와 동행하심이 있다고 말한다.

더 이상, 더 이상 그는 "자신을 죄인으로 규정하며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선언하였던 십자가에 대한 말씀"을 듣지 못한다. 단지, 그의 삶엔 부활과 성령의 위로와 동행이 있을 뿐...

그러나, 과연 그런가? 십자가는 거듭난 이후 사라져 버렸는가? 또한 예수를 믿노라고 고백한 그 믿음, 이제는 부활과 성령의 위로와 동행을 경험하면서 성화의 길을 부지런히 걸어가도록 목사들로부터 당부받는 그 사람은 과연 십자가를 알고 믿는 자인 것일까?

그는 십자가를 모른다. 그토록 그에게 부활 이후의 성령의 위로와 동행을 강조하면서 성화의 길을 부지런히 걸어가도록 당부하는 그 목사도 십자가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 십자가는 인간의 노리개감이 아니다. 인간을 죄인에서 의인으로 변화시키는 데 사용되는 그 정도의 십자가가 아니다.

십자가는 우주의 중심점이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통일시키는 데 의의가 있다. "나"라는 이름이 죽고 "주의 이름" 곧 "예수의 이름"으로 살게 하는 데 의의가 있다. 그것은 위력이며, 폭탄이다. 인간 죄성을 모두 박살내는 폭탄이다.

참된 성도는 "그 십자가의 사건이 날마다 현재화" 되는 가운데서 자기를 부인하는 방식으로 살아가게 된다. 거듭난 이후에도 여전히 그는 십자가의 위력을 경험한다.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라고 고백하게 만드는 그 십자가를 경험하게 된다. 성도는 부단히 십자가로부터 도망쳐 보려 하지만 도망칠 수 없다는 사실을 곧 고백하게 된다. 날마다 죽는다. 날마다 얻어 터진다. 십자가에서 날마다 그 폭탄의 위력을 경험하면서 자신의 죄성이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음을 알게 된다.

십자가로 드러나지 않는 인간의 종교성이 또한 그토록 자신에게 성화의 길을 부단히 걸어가라고 당부했던 그 교회가 얼마나 인간의 종교성과 세속적 가치관으로 가득한지를 바라보고 경악하고 탄식한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교회들이 하나님을 자기의 하나님으로, 교회를 위한 하나님으로 전락시켜 버렸으며, 그 안에서 곧 그 제도 교회 안에서 자신 또한 예외가 아니었음을, 즉 자신 또한 하나님을 우상으로 섬겨왔던 사실을 실감하기 때문이다. 썩어질 수 없는 영광을 썩어질 것으로 바꾸어 놓으며, 하나님을 믿노라 하였으나 하나님을 상실한 자신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십자가는 거듭난 이전까지만 유효한 것인가? 거듭난 이후에는 사라져 버렸고, 이제는 부활과 성령의 위로와 감동과 동행과 성화의 길을 부단히 걸어가는 것만 남았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성령께선 오늘도 여전히 십자가를 통하여 자신의 백성들을 그리스도 안으로, 십자가 앞으로 모으신다. 그리고, 이 세상 가운데서 예수의 이름과 자신의 이름을 적절히 섞어서 사용하는 그런 사람들이 아닌, 오로지 예수의 이름에만 의미를 두는 자들을 모아 서로를 위로하게 하신다. 자신이 어떻게 구원 받았으며, 교회가 무엇인지를 알게 하신다. 그것을 아는 자는 자신의 삶 속에 자신의 죄를 발견하고 그리스도의 의를 발견하는 가운데 예수의 이름에만 의미를 두는 삶으로, 자기를 부인하는 방식으로 날마다 고백하며 살아가게 된다.

이제 그에게는 이전에 알지 못했던 그리스도로 인한 새로운 의가 주어진다. 그러나, 그렇다고 자신을 의인이라고 고백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예수의 이름에만 의미를 두기에 자신을 "죄인 중의 괴수"로 고백하는 가운데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