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내 자신도 김기동 목사가 참된 목사라는 생각을 가진 때가 있었다. 타락한 한국교회에서 보기드물게 청지기적 삶을 살아가는 목회자라고 생각하게 된 것은 그의 저서 시무언 이라는 것을 보고 난 후였다. 수많은 사람들의 비방과 비판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입에 재갈을 물려 놓고 시무언 하는 모습을 책으로 나마 연상 하면서 참으로 자기성찰과 절제를 잘하는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 한 것이다. 또한 김목사의 자기고백적 묵상집을 통해 그의 겸손함과 희생적 신앙관을 엿볼 수잇었다.
그런데 나의 두 눈에 들보가 가득차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을 때 부터 인간이 생각하는 관점과 예수님이 생각하는 관점은 천양지차 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 때부터 김목사가 한국교회를 타락의 낭떠러지 로 떨어뜨린 수많은 목사들과 별반 차이없는 사람임을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 가장 큰 교회를 지었다고 자랑하는 기복주의 한국대표 목사들과 다를바없이 김목사 또한 교회성장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사람일 뿐이였다. 김목사는 오직 성경이라는 말씀을 가지고 성락교회를 키워왔다. 분명한 사실은 그는 교회성장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던지 마다하지 않는 타락한 한국교회 목사들과는 윤리적인 면으로 볼 때 훨씬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김목사는 한 때 침례교회 총회장 선거에 나섰다가 뇌물이 오고가는 온갓 불법과 비리가 판치는 광경을 목격하고는 다시는 총회장 선거에 나서지 않을 것임을 각오하였다는 것을 스스로 고백할 정도로 윤리적인 면이나 도덕적인 면으로 볼때 깨끗한 신앙관을 고백하는 사람이다. 이런 고백만을 놓고 본다면 한마디도 그를 흠잡을 수가 없을것이다. 그러나 그의 설교를 자세히 들어보면 예수님은 없고 오직 성경이라는 것만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설교나 성전건축이라는 것이 오직성경이라는 구호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김목사는 전혀 모르는 듯하다.]
즉 복음은 온데간데 없고 성경대로만 실천하고 행하여서 이적과 권능을 소유하려 하고 구원을 받으려는 목적만을 위해 잘못된 복음을 외치는 것이 보인다. 김기동 목사의 설교를 한마디로 정의 하자면, 귀신론에 집착하여 이적과 권능에 온정신을 쏟고 있다는 것이다 성경을 이적과 권능의 행위적 술수를 정당화 하기 위해 변명하는 책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이제부터 김기동 목사의 설교를 진단해 보기로 한다.
먼저 김목사는 하느님은 선하시고 완전하시고 생명이 충만하신 분이라고 묘사하면서 그러므로 모든 것을 하느님이 선하신 뜻대로 역사하시고 그 뜻대로 이루신다고 말을 한다. 그런데 곧 이에 반하는 이야기를 해나가기 시작한다. 인간편에서 하느님의 뜻을 거부할 수도 받아 들일 수도 있다는 식으로 말을 한다. 은혜를 받을 때에 은혜를 받고 구원을 얻을 때에 구원을 얻어야지 그 때를 놓치면 되돌릴 수가 없다고 말한다. 과연 인간이 원하는 바대로 하느님이 들어 주실까? 하느님의 뜻대로 하신다면서 인간이 원하는 대로 해줄것처럼 말을 하는 것이다.
완악한 자세를 보이면 지옥으로 보내고 순종하면 천국으로 보낸다고 말을 한다. 과연 그럴까? 바울이 자신이 자원해서 예수님을 알게 된 것일까? 요나는 자신이 원해서 선지자가 된 것일까?. 수많은 선지자들이 자신이 원해서 하느님의 뜻대로 살게 된 것일까?. 이런 기본적인 것 마져 오인하다 보니 잘못 끼워진 단추처럼 모든 것이 잘못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설교의 말미로 갈수록 김목사는 성령을 이야기한다. 하느님 말씀을 듣고 깨달으면 영이 되고 깨닫지 못하면 영이 되지 못한다고 말하면서 성령을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마치 내가 원하면 받고 원치 않으면 받지 못한다는 듯이 말한다. 육신이 영을 따라 살아가게 되면 귀신을 내쫓을 수 있다고 말한다. 과연 육신이 영을 따라 살까? 바울은 육신으로는 죄밖에 나올것이 없다는 고백을 하였다.
귀신을 내쫓는 이야기가 설교에서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유는 김기동 목사가 귀신론에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귀신을 내쫓고 수많은 병을 고친다 해도 울리는 괭과리일 뿐이라고 성경은 증거 하고 있건만, 거대한 교회당을 성전이라고 여기고 그 성전이 모두 주님의 은혜 덕분에 세워진 것이라고 말하는 자들처럼 김목사도 귀신을 내쫓는 것을 예수님의 능력이라고 말한다.
세상에서의 이적과 기적 신유가 기껏해야 인간의 육신을 좀더 생명연장을 시킬뿐 그들이 복음을 사모하게 하는데에 별 효용가치가 없다는 사실을 성경을 보고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귀신론에 중독된 상태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거대한 교회당을 짓는 것에 중독된 목사나 개혁적 마인드에 중독되어 청부론에 중독된 사람이나 제비뽑기라는 성경귀절에 빠져 제비뽑기만을 주장하는 모 목사나 부흥회에 중독되어 그것을 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목사들이나 수많은 이단들이 별 이상한 짓을 하고 병을 고치고 하는 것처럼 김기동 목사도 이제는 너무 오래 귀신론에 빠져 마치 마약에 중독된 사람처럼 여겨진다.
수천만명의 죽어가는 환자를 예수이름으로 고친다해도 그들이 참된 주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 수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치시고 기적을 보이시고 죽어버린 나사로마저 살렸지만, 이런 수많은 기적과 이적을 직접 보고 느낀 사람들이 예수님을 제대로 믿은 사람은 찾아 볼 수가 없엇다. 하룻밤 꿈으로 여겨질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 되어 버리는 것이 현실세계이다. 아무리 놀라운 물리적 현상을 구경 하였다 해도 그것은 뇌속에 자리잡은 스쳐지나가는 기억일뿐 그것이 내 의지를 좌지우지 하지 못하는 것이다. 때문에 예수님을 버리고 제자들이 모두 도망을 간 것이다.
마찬가지로 김목사의 수많은 기적과 귀신내쫓는 것을 목격한 사람들이 일시적으로 교회에 발을 들여 놓았어도 그들이 참된 그리스도인이라고 여길 수는 없는 것이다. 즉 김목사 말대로 오직 성령이 임하여야 만이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도 김목사는 자꾸 이적과 신유같은 것에 집착을 한다. 성령이 아니고는 누구도 주의 이름을 부를 수없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더이상 이런 허탄한 설교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교회를 건축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보이는 교회를 건축하는 일도 중요하다고 말하는 숭의교회 김동호 목사의 주관처럼, 오직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귀신을 내쫓는 능력도 중요하다고 말하는 김기동 목사의 모습이 너무도 닮은 꼴이란 생각이 든다.세계에서 가장 큰 침례교회 성전을 건축하겠다고 말하는 김목사나 가장 큰 감리교회를 세웠다고 자랑하는 김홍도 목사나 너무도 똑같은데 서로 아니라고 금란교회 교인들이나 성락교회교인들은 소리친다.. 누가 제 눈에 들보를 스스로 볼 수있으랴!...
열심있는 간구 [행4:23-31] 2004년 8월 15일 주일 서울성락교회 제1부 예배 설교 설교 : 김기동 목사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시다. 그는 선하심으로 완전하고 생명이 충만하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모든 것 하나님께서 선하신 뜻대로 역사하시고 그 모든 것을 이루신다. 여러분과 내가 꼭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이 선하시기 때문에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아버지라 할 수 있는 은혜가 있는 것이다. 감히 우리가 어찌 하나님을 아버지라 하는가? 그러나 하나님은 선하시므로 우리는 그러한 은총을 입었다. 우리는 종교인이 되지 말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한다. 오늘 사람들은 기독교 종교인이 되어 교회에 나와서 교리적으로 아버지 아버지 한다. 그저 교리적 행습으로 하다가 혹 무슨 일로 시험이 들면 아버지고 하나님이고 다 떠나버리고 만다. 우리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밝히 보시고 우리 마음의 생각까지도 다 기억해 두었다가 심판 날에 다 심판한다고 말씀하고 있다. 여러분 하나님을 무시하지 말라. 하나님은 두려운 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금 은혜 받을 만한 때에 은혜를 받고 구원 얻을 때에 받아야지, 지금 무시하고 있다가는 다시 은혜가 없다. 우리가 육신이 있는 동안 회개, 중생, 영생을 얻지 않으면 일단 육신을 떠난 이후에는 기회가 없다. 하나님은 죽은 자에게 약속한 적이 없다. 그 뿐 아니라 우리가 마음이 완악해 지면 하나님이 유혹을 역사하셔서 심판을 받도록 하신다는 것이다(살후2:12). 하나님은 한 두 번 기다리고 달래고 부탁했다가 안되면 하나님이 마음을 정하신다는 것이다. 그 때는 다시는 돌이킬 수 없다. 다시는 회개케 할 수도 없다. 성령에 참예한 후에 다시 타락하면 다시는 기회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성령을 거역하지 말고 조심하여 순종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기독교 종교인이 된 사람들은 자기의 영혼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 하나님은 선하시기에 기회를 주셨으니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그것을 구해야 한다. 내가 목사로서 이런 말을 반복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보처럼 늘 이런 말씀을 반복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설 날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영적 생활을 과소평가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받고 모르는 것을 많이 깨닫게 된다. 설교를 통해 성경을 통해 우리는 과거에 몰랐던 세계까지 깊이 깊이 이해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종교 강의를 듣는 것이 아니다. 예수를 믿는 것이다. 예수라는 자체가 구원이다. 인간과 짐승이 다른 점은 인간에게 언어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린 아이가 태어나면 ‘응애’ 하고 울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볼기를 때려서라도 울린다. 집회 할 때 보면 이런 사람이 있다. “목사님 애가 말을 못해요. 어렸을 때는 애가 하도 순해서 좋아했는데요 나중에 알고 보니까 말을 못해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분이시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그 말씀은 태초에 만물보다 먼저 계셨다. 그 말씀은 우리가 읽을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언어를 또 우리에게 주셨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다. 오늘 우리가 세상에 태어날 때 말을 할 수 있는 권능을 가지고 태어났다. 우리가 말로써 산다. 그런데 인간의 이러한 언어는 하나님과 사귈 수 있도록 본래 주신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언어가 하나님과 사귈 수 있는 거룩한 언어가 되지 못하고 그만 그 언어를 남용했다. 그 언어를 가지고 뱀과 속삭이는 바람에 죄악이 인간에게 들어온 것이다. 예수께서 17:5-17에서 말씀하시기를 아버지의 말씀은 거룩한 말씀이라고 하셨다. 우리는 거룩한 언어를 가진 사람들이다. 그래서 성경은 너희가 복을 받는 방법은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가지라는 것이다. 거룩한 말씀이 없어서 복을 받지 못한다. 거룩한 말씀을 싫어하기 때문에 너희가 복을 받지 못한다고 잠언에도 말씀하고 있다. 우리는 거룩한 말씀을 사모해야 한다. 본래 인간의 구음이 하나라는 것은 사투리가 없다는 것이다. 합창을 할 때 조화가 되는 것은 음이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어가 하나였다. 사람들이 구음도 하나이고 언어가 하나였을 때에는 얼마나 조화로운가? 그러나 노아의 홍수 때에 천하의 사람들이 다 멸망했다. 그것이 신화가 아니다. 지구를 보면 동그랗지 않고 타원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남극과 북극의 두께는 한 8킬로미터 정도 된다. 만일 그것이 다 녹아 지구가 완전한 원형이 되면 지구는 다 물에 잠길 것이다. 하나님께서 물을 다 양극 쪽으로 몰아붙이신 것이라 생각된다. 노아의 자손들이 번성하면서 흩어짐을 면하자고 계획하였다. 그들은 아라랏 산과 방주를 연상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미 언약하셨다. 무지개를 통해서 다시는 물로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약속했는데도 그들은 그 말씀을 믿지 않는다. 방주마냥 탑을 높게 쌓고, 그 안에서 안전하게 살고자 했던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이 지면에 충만하기를 원하셨는데 그들은 한 곳에 모여서 이러한 일을 도모하였다. 그 탑의 연고로 인해서 하나님이 언어를 깨어 버리니까 그 때부터 언어는 수 만가지로 나뉘어졌다. 그러나 지금 현재 성경이 번역된 언어만 해도 3천 여 종이 된다고 한다. 그러니까 아직도 번역을 하려면 몇 천종을 번역해야 할지 모를 만큼 언어가 많다. 이렇게 전 세계 언어가 수천 가지가 있는데 하나님과 통할 수 있는 언어가 어떤 것이냐? 영어냐, 중국어냐, 한국어냐? 하나님이 들을 수 있는 언어가 어떤 것인지 하나님이 가르쳐 주셨다. “아이구 아퍼, 아이구 아퍼” 하신다고 듣는 것이 아니다. 요4:24에는 하나님은 영이시라고 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예배 하는 자는 영적이어야 한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도 영적이어야 한다. 영적 언어가 아니면 하나님 앞에 상달이 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진리를 무시한다. 성경은 내 말이 영이라고 말씀한다. 요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육은 무익하다. 즉 육신에서 나오는 소리도 무익하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으로 예배해야 한다. 육은 하나님께 상달 되지 않으므로 무익하다. 영만이 상달 된다. 요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즉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고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우리의 말이 영적인 말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구하라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을 들어서 깨닫고 기도하는 것은 영이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면 영이 되지 못한다. 전기가 들어와도 퓨즈가 나가 있으면 불이 들어오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 말씀을 듣고 깨닫지 않으면 영이 되지 않는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깨달을 때 그 말씀이 영이 된다. 그리고 그 말에 거하는 사람이 영적인 사람이 된다. 요8:31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육신이 잘났다고 해도 예수의 제자가 될 수 없다. 오직 그의 말씀에 거하여야만 그의 제자가 될 수 있다. 그 말씀이 영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에도 우리가 영으로 드려야 한다. 그래서 성령을 받으라는 것이다. 성령을 받을 때 내 자신이 영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성령 받은 사람은 성령으로 말하고 성령으로 예배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영이시니까 영은 영으로서 만나야 한다. 대통령은 태통령끼리 만나고 장관은 장관끼리 만나는 것과 같이, 하나님은 영이시니 우리는 영으로 나와야 한다.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는 자격은 내가 영적이 되어야 한다. 말씀은 곧 영이시니, 내가 그 말에 거하면 영적 존재가 되는 것이다. 내가 과거 예수 안 믿을 때는 영이 죽어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거듭나서 영이 살았다. 이제는 육신 따라 영이 가는 것이 아니라 육신이 영을 따라 와야 한다. 육을 따라 영이 가니 성공하지 못한다. 하나님은 육신을 부른 것이 아니라 영을 부른 것이다. 왜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으라고 하는가? 사도행전 19장에 보면 바울이 귀신 쫓는 것을 보고 스게와 제사장의 아들들이 “내가 바울이 빙자하는 예수이름으로 명하노니 나가라” 하였다. 그 때 귀신이 그들을 잡고 옷을 벗겨 망신을 시켰다. 왜 그 이름이 안 들을까? 예수 이름으로 사용하는 언어는 영이다. 같은 전깃줄이되 눈으로는 전기가 있는 것과 아닌 것을 구별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언어가 사람들의 귀에 들릴 때는 다 똑같다. 영적인 언어나 일반 언어나 같다. 그러나 하나님이 들으실 수 있는 언어와 듣기 싫어하시는 언어가 다르다. “나는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말을 하든 일을 하든 예수 이름으로 하라고 했는데 이는 영적으로 하라는 것이다. 그것을 하나님이 들으시고 관심을 가지신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할 때 예수의 이름으로 하라는 것이다. 요14:13에도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라 하셨다. 완전히 예수 이름을 의지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평소에 내가 그 말씀 속에 거하고 있느냐? 배 위에 올라 타듯 내 위에 타라는 것이다. 그러면 그 언어가 영이 된다는 것이다. 베드로가 주님을 향해 내게 물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순종하자 물 위로 걸었다. 이와 같이 예수 이름을 의지할 때 하나님이 들으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말을 하든 일을 하든 영적으로 하라는 것이다. 그러한 기도를 들으신다는 것이다. 소리지르고 악을 썼다고 해서 더 들어주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힘쓰고 애쓰고 간절히 하되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여 기도하자는 것이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즉 내 이름으로 구하면 네 기도가 영이 된다는 것이다. 전선이 있어도 전류가 없으면 아무 소용 없듯, 네 기도가 영이 되게 하라는 것이다. 내 영혼아 영으로 기도하자. 당신의 언어가 영이 될 수 있도록. 당신이 육체를 의지해보아야 당신의 기도는 영적 기도가 될 수 없다. 당신이 말씀을 의지하고 예수 이름을 의지할 때 영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설교를 무슨 맛보듯 들어서는 안 된다. 듣는 설교가 우리 몸에 배어 버려야 한다. 하나님도 인간과 언어를 가지고 싸움을 하시지 않았는가? 세계 어느 나라 언어든지 예수 이름으로 하면 하나님이 다 들으신다. 예수 이름을 의지하면 영이다. 하나님은 영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 |
성락교회 주장입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한국교회에서 이단이 아닌 목사를 칮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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