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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희 신앙컬럼

김동호 목사 설교비판 [보이지 않는 교회건축]

by 골동품나라 밴드 리더 2007. 8. 25.
오랜동안 근사한 하나님의 사람들이라는 설교를 시리즈물로 연재하면서 교인들의 가치를 드높여오고 인간 스스로 근사한 하느님의 사람들이 되도록 성화되고 성찰하며 실천 할 수[?] 있는 그릇된 자부심과 심적동기를 부여 해온 김목사가 이번에는 " 보이지 않는 성전을 건축하는 교회"를 주제로 설교를 하였다.

   
먼저 김목사는 높은뜻숭의교회가 너무도 많은 복을 하느님께 받았다는 것을 이야기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 복이 과연 무엇인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교인들이 많이 늘어나서 복을 받았다는 것인지, 교회당 건물이 없는 가운데서도 교회를 이끌어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이 복이라는 것인지, 교인들이 헌금을 많이 해서 자선사업을 많이 하고 교회사업을 여러가지 하였다는 것이 복이라는 것인지, 아님 그 모든 것이 복이라고 하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지내온 모든 것들을 복이라고 일컫는다면,하느님이 복을 주셔서 교회가 풍비박산이 나도 큰 복이 될수있는 것이며, 교인들 모두가 십자가의 고난으로 몰살 당하여도 하느님의 복이 될수도 있는 것이다. 하느님의 복이 세상것이 아님을 안다면 교회의 목사가 너무나 잘된 세상일들을 일컬어 복이라고 말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 하느님의 복을 더욱 받기 위해 하느님의 뜻을 이루어 드려야 한다고 말을 한다. 과연 인간이 하느님을 기쁘게 할 수있는 존재일까? 과연 하느님의 뜻대로 실천할 수있는 존재일까?. 이 사실을 모르다 보니 김목사는 인간의 행위에 큰 의미를 부여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김목사는 교회건축에 대한 자신의 주관을 이야기 한다.이번에도 그 특유의 전법인 이것도 그르고 저것도 옳치 않다 라는 양비론을 이용하여 짬뽕신앙인 물타기 전법을 구사한다. 즉 교회건축에 전념하는 것은 옳치 않은 일이지만, 정당하게 교회를 짓는다면 아무리 크고 화려한 교회를 짓는다 한들 죄가 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한다. 과연 교회당 짓는 일에 전념하지 않고 몇백억 몇천억원의 교회당 건물이 지어 질 수 있을까?.

   
김목사는 왜 이런 말도 안되는 주장을 하게 되는 것일까? 조금만 지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김목사가 얼마나 말도 안되는 궤변을 하는 사람인줄 알게 되지만, 이미 김목사의 설교에 오랜동안 중독된 사람들은 그 저의를 간파하기가 쉽지 않다. 정당하게만 짓는다면 그 어떤 교회당을 지어도 문제가 될수 없다는 주장을 하게 된것은 그가 복음을 전하기 위한 의도에서가 아닌 예전에 자신이 거대한 교회당을 지어 본 적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부정하게 된다면 예전 자신의 모습이 그릇된 목사로 드러나게 될 것이 분명하니,변화가 없었던 주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김목사로서는 어쩔 수없이 교회당 건축이 하느님이 중요하게 인정하는 일이라고 인정해 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어떤 목사도 교회당 짓는 일에만 자신이 전념하였다고 인정하는 목사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대는 혹시 아는가?..

결론은 자신을 변명하기 위해 정당한 행위로 교회당을 짓는 일이라면 그 어떤 교회당 건축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모순된 주장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 말이 모순중의 모순임을 입증하는 이야기를 곧이어하게된다..>>>>"예배당 건축도 물론 하나님과 교회를 위하여 중요한 일임에 틀림이 없지만 아무리 그래도 예배당 건축이 교회와 하나님을 위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았습니다. 무언가 꼭 집어서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틀림없이 예배당 건축 보다 더 중요한 교회와 하나님을 위한 일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하느님이 교회당 짓는 일도 중요하게 생각하시지만, 예배당 건축보다 더욱 중요한 하느님의 일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 말에 무슨 문제점이 있는지 파악해 보라...

쉽게 말해 자동차가 달리려면 기름도 중요하지만, 멋지게 꾸미는 악세사리도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이치의 말을 하는 것이다. 당장 기름이 없어 달리지 못하는 자동차를 두고 기름도 아주 중요 하지만 멋지게 꾸밀 수 있는 악세사리도 중요하니 악세사리를 구입하기 위해 애를 써도 된다는 것이다. 하느님이 보시기에 더욱 중요한 일을 내버려두고 그리 중요하지도 않는 일도 열심히 해야 한다고 말하는 어불성설의 주장을 보게 된다. 하느님이 보시기에 더욱 중요한 일은 나중으로 미루고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을 먼저 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당장 굶어 죽어가는 예수님에게 먹을 것을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옷도 필요하다는 이치의 말을 하는 것과 같다.

자신은 예배당 건축보다 더욱 큰 하느님의 일을 해보고 싶다고 말하면서, 남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일은 하지 말고 조금 중요한 교회당 건축에나 힘을 쓰라고 말하는 것이다. 자신이 예전에 했던 일을 부정할 수없는 입장을 대변하느라 이런 얼토당토한 말로 설교를 해나가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이 세운 교회를 성전이라고 지칭하면서 행복해 하는 광경을 연출한다.마치 그 교회당을 자신이 세운 것으로 여기고 흐믓해 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김목사가 이럴진대 하물며 다른 목사들은 자신이 세운 거대하고 웅장한 교회를 보며 바다보다 큰 가슴속 포만감을 느끼며 행복한 마음이 되는 것이 당연지사가 아닐손가?. 인간의 행위를 드높게 여기려는 본성이 십자가에 의해 날마다 파괴되지 않는 자들은 모두가 바벨탑을 쌓는 것을 하느님의 영광으로 여기며 기뻐하게 될 수밖에 없다..

김목사는 이제 시대의 흐름에 따라 교회당 건축에 심혈을 기울이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교회를 건축하겠다고 선언을 하게 되는 것이다. 예전처럼 교회당 짓는 일에 매달린다면 개혁적 목사가 아닌 삯꾼 목사로 비난이 쏟아질것이 분명해지니 눈에 보이지 않는 교회를 건축하여서 하느님을 기쁘게 하고 자신의 행복한 기분도 계속 이어져 나가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십일조와 헌금을 주장하는 목사들의 전매특허인 과부의 두렙돈과 오병이어를 예로 삼는다. 똑똑한 사람들이 많이 모인 교회이니, 굳이 헌금이나 십일조를 예전처럼 강하게 주장하지 아니해도 김목사의 뜻을 충분히 알아 들을 것이란 계산에서 나온 발상으로 보여 진다.

자기 예배당을 짓기전에 개척교회를 건축한 것도 훌륭한 일이지만, 교회건축할 돈으로 자선사업을 하는 것도 근사하고 훌륭한 일이라고 스스로 드높이고 있는 것이다.자신의 행위를 스스로 칭찬하는 이런 유아기적 사고에서 발생하는 설교를 들으면서 아멘을 외치는 광경을 상상해 보니, 기가 막힐 뿐이지만, 훌륭한 목사라고 칭찬해 마지 않는 교인들이 즐비하다는 사실도 더욱 놀라운 일이다. 김목사는 자신이 세운 계획과 꿈을 하느님의 뜻으로 매치시켜 보이지도 않는 교회당을 건축하는 것을 훌륭한 일이라고 단정짓고 열심히 실천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그 자신이 흠모하던 다윗의 소원을 이야기 하면서 결코 포기하지 않을 마음의 자세임을 강조한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세운 성전이 얼마나 헛되고 헛되고 헛된것인 줄 솔로몬의 고백을 통하여 읽고도 깨닫지를 못하니, 김목사도 다윗과 솔로몬의 행악된 길을 답습하려 하는 것이다. 누가 하느님을 위한 성전을 세울 수 있으랴.. 오직 예수 그 한 분 뿐임을 아직도 깨우치지 못한 자이기에 김목사는 자신의 열심으로 헛되고 헛된 가시적 교회를 세워 보겠다고 열심을 내는 것이다.

솔로몬은 성경을 통하여 마지막으로 진실을 고백한다.자신이 세운 성전도 하느님을 위한 그 어떤 열성도 헛되고 헛된 것임을.. 솔로몬의 고백을 통하여 역시 오직 예수 그 하나 밖에는 아무것도 의가 될수 없구나 하느님이 원하시는 성전을 건축하는 것은 예수님이 택하시고 원하시는 자들로 이루어 나가시는 것이지, 인간의 노력으로는 세울 수가 없구나 하고 깨닫게 해주시는 것이다. 솔로몬의 하느님에 대한 열심과 행위가 길가의 들풀만도 못하고 배설물만도 못한 것이라고 성경은 이야기 하고 있지만, 성화론과 은혜론을 반반씩 섞어 놓은 인간점 관점으로 성경을 대하는 김목사에게는 더이상의 말씀의 이해는 알수가 없기에 그리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의 유전을 조심하라. 그것은 누룩과 같으니 ...

   
▲ 숭의여전 강당에서 드리는 높은뜻숭의교회
   
2006.10.1 김동호목사 설교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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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성전을 건축하는 교회.
대상 28:1-10.


오늘은 우리 교회가 이곳 숭의학원에 높은 뜻 숭의교회를 세운 지 꼭 만 5년이 되는 주일입니다. 지난 5년 동안 하나님은 우리 교회에 감당할 수 없는 복을 쏟아 부어 주셨습니다. 그 복은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잘해서 받은 복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그 보다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남다른 기대를 하고 계시는 것이 있으셔서 그 기대를 이루시기 위하여 우리에게 이와 같이 감당할 수 없는 복을 주셨다고 믿습니다.

저는 압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그냥 앉아서 누리지만 않고 그것을 통하여 이루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과 기대를 이루어드린다면 지금 우리가 받은 복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정말 큰 복을 누리게 되리라는 것을 말입니다.

우리 교회가 숭의학원 강당을 빌려 교회를 하면서 많은 메스컴들이 교회를 건축하지 않는 훌륭한 교회라고 부추 켰습니다. 저는 물론 교회가 예배당 건축에만 너무 몰두하는 것이 별로 건강하지 못 하다는 데는 동의합니다. 그러나 무조건 예배당을 건축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며 바람직하지 못한 것으로 매도하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저희 교회가 자체의 예배당이 없다는 것을 특별한 일인 것처럼 자랑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지나쳐서 정당하게 예배당을 건축하는 교회들을 함부로 매도하는 일에 이용당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이 아시다시피 저는 전에 제법 적지 않은 예배당을 건축해 본 경험이 있습니다. IMF때 3,400평이라고 하는 적지 않은 예배당을 건축하였습니다. 쉽지 않았지만, 쉽지 않은 것이 아니라 정말 힘들고 벅찼지만 예배당 건축은 참 재미있었습니다. 저는 그래도 제가 목회하는 동안 예배당 건축을 한 번이라고 할 수 있었다는 것이 특별한 하나님의 복이었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때 예배당 건축을 하면서 그것이 너무 재미있어서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한 번 더 건축을 해 봤으면 좋겠다는 겁 없는 소원을 가져 보기도 하였습니다. 예배당 건축을 소원하면서 조금 엉뚱하지만 다음에 건축을 한다면 눈에 보이는 건축이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건축을 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예배당 건축도 물론 하나님과 교회를 위하여 중요한 일임에 틀림이 없지만 아무리 그래도 예배당 건축이 교회와 하나님을 위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았습니다. 무언가 꼭 집어서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틀림없이 예배당 건축 보다 더 중요한 교회와 하나님을 위한 일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교회들이 마치 예배당 건축이 교회의 제일가는 사명인 것처럼 교회의 최선을 예배당 건축에만 쏟아 붓는 것에 대하여 늘 큰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한번의 기회를 더 주신다면 예배당 건축보다 더 중요한 일을 위하여 예배당 건축보다 큰 헌신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저는 우리 높은 뜻 숭의교회 창립 5주년을 맞이하면서 그때 그 기도의 소원을 생각했습니다. 우리 교회는 좀 불편하지만,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좀 많이 불편합니다, 그 불편을 감수하고 눈에 보이는 교회를 건축하는 것은 포기하고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보다 더 근사한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면 좋겠다는 강한 소원을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저는 솔직히 예배당은 예배당이지 그것이 곧 성전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예배당 자체도 경홀히 여기는 것은 아니지만 저는 예배당 자체를 성전과 동일시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성전은 눈에 보이는 예배당 보다 더 크고 중요한 개념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우리 높은 뜻 숭의 교회가 예배당 보다 더 크고 중요한 정말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해 보았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눈에 보이는 성전이 아닌 보다 중요한 눈에 보이지 않는 성전을 한 번 건축해 보면 좋겠습니다.

91년도 동안교회 부임했을 때 예배당이 좁아 예배당 건축에 대한 기도와 소원이 가득 했었습니다. 주일 장년 1,300명 정도 출석하는 교회였는데 예배당은 600석 정도였으니 공간이 많이 부족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제게 예배당 건축보다 더 먼저 해야 할 일을 마음에 주셨습니다. 그것은 교회를 개척하는 것이었습니다. 큰 교회가 밤낮 자기 교회만 생각하고 자기 땅만 사고, 자기 예배당만 짓는다는 것이 건강치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회원들과 교인들이 그와 같은 생각을 이해해 주어서 순서를 바꾸어 준비된 건축헌금으로 일산에 땅을 사서 일산동안교회를 건축하고 개척 하였었습니다. 그것이 벌써 12년 전 일입니다. 일산동안교회는 지금 현재 주일 장년 출석이 1,500 명가량 되는 아주 크고 건강한 교회가 되었습니다. 물론 일산동안교회 예배당 건축도 보이는 성전 건축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동안교회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일종의 보이지 않는 성전의 건축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와 같은 건축을 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동안교회에 보이는 성전의 건축도 허락해 주셨습니다. 본래 동안교회가 지으려고 생각했던 규모 보다 꼭 두 배가 되는 좋은 예배당을 건축하게 해 주셨습니다. 일산동안교회의 개척과 동안교회의 건축은 제 평생의 간증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보이지 않는 성전은 동안교회가 건축하였고, 동안교회를 위한 보이는 성전은 하나님이 친히 지어 주셨다고 저는 지금도 믿고 있습니다. 저는 똑같은 식의 역사가 우리 높은 뜻 숭의 교회에도 일어나리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성전을 우리가 건축하고 우리에게 필요한 보이는 성전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친히 건축해 주시는 그런 역사가 반드시 우리 교회에도 나타나리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지금 우리 높은 뜻 숭의교회는 그 어느 교회보다도 예배당 건축에 대한 소원과 필요가 큰 교회입니다. 주일 출석이 4천 명이 넘는 교회가 자기 예배당 없이 교회를 꾸려 나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불편한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모를 겁니다. 그리고 실제로 주일 출석이 4천 명이 넘는 교회가 자기 예배당을 갖지 않은 경우는 몇 교회가 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필요한 예배당 건축보다 더 중요한 일에 헌신하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006년을 시작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주신 단어 중에 하나는 ‘All in이었습니다. 2006년을 마감해야만 하는 때에, 창립 5주년을 맞는 때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비젼은 보이지 않는 성전의 건축’입니다. 그 둘을 합하면 우리교회가 All in 하여야 할 것은 보이지 않는 성전의 건축이라는 것이 됩니다.

좀 더 기도하면서, 그리고 당회와 의논하면서 확정해야 하겠지만 하나님이 제 마음에 주시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성전에 대한 윤곽은 대략 다음과 같은 것들입니다. 그것은 요즘 갑자기 생각난 것들이 아닙니다. 제 목회 평생을 통하여 조금씩, 조금씩 구체화 되어 온 것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구제 사역입니다. 둘째는 탈북자들을 섬기는 일로부터 시작되는 통일사역입니다. 셋째는 나라와 민족을 하나님의 뜻대로 이끌어가는 지도자를 키우는 사역입니다. 그리고 하나를 더 보태라면 이 땅에 기독교적인 문화를 건설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은 하나같이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그와 같은 일은 우리 같은 개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좋기는 하지만 너무 허황된 꿈을 꾸는 것이 아닌가?’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만만한 일은 아니지만 절대로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저도 물론 그와 같은 정도의 일들을 우리 같은 개 교회가 다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실 어떻게 보면 그런 일은 나라도 잘 감당하지 못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교회가 나라보다 더 힘이 있는 조직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나라는 무슨 일을 할 때 하나님을 염두에 두지 못하고 일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는 무슨 일을 하든 하나님을 염두에 두고 합니다. 교회가 나라보다 더 힘이 있는 조직이 될 수 있는 근거와 까닭은 하나님 때문입니다. 교회는 나라보다 작지만 하나님은 나라보다 크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우리가 하면 할 수 없는 일이지만, 하나님이 하시면 능히 하실 수 있는 일들입니다. 그리고 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그와 같은 일들을 하시고 싶어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 일을 우리와 함께 하시고 싶어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통하여 하시고 싶어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와 같은 일에 헌신할 교회와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이때에 우리 교회가 이사야처럼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 주소서’라고 대답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주 어떤 분이 찾아와 이야기를 하면서 평화통일을 준비하기 위하여 기독교 전문인들로 구성된 연구소를 만들려고 한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전문적인 연구를 하되 그 결과물을 정부가 정책에까지 인용할 수 있을만한 수준이 되게 하려고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뜻이 매우 좋은 일이라고 마음으로 동의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분으로부터 이제껏 잘 들어보지 못한 근사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것은 그와 같은 연구에 참여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먼저 자기 한 달 월급을 내놓고 시작하자고 이야기를 하였다는 것입니다. 저는 사람들이 그런 정신으로 그 일에 헌신하려고 한다면 그 일은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뜻이 깊고 또 성공할 일에는 할 수 있는 대로 지원하고 투자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하나님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와 같은 하나님의 마음을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하여 잘 알 수 있습니다. 광야에서 굶주린 오천 명을 먹이시려고 결심하신 것은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와 같은 일을 어린 아이가 자기의 점심을 내어 놓을 때까지 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린 아이가 자기의 점심을 예수님께 내어 놓자 그때 당신의 능력을 발휘하사 오천 명을 먹이시는 일을 행하셨던 것입니다.

오병이어는 오천 명을 먹이기에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작은 것이었지만, 그것을 드린 아이의 입장에서 보면 절대로 작은 헌신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그와 같은 것을 귀하게 보십니다. 과부의 엽전 두 푼을 귀히 보시는 것도 같은 일입니다. 여기에 우리의 희망이 있습니다.

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이 중요합니다. 어린 아이가 자기의 오병이어를 예수님께 드린 그 마음, 과부가 엽전 두 푼을 하나님께 드리고 싶어 했던 그 마음을 우리 모두가 가지고 이 일에 참여한다면 오병이어의 기적은 지금도 반드시 일어난다고 저는 믿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기적인 우리들의 믿음을 통하여 다시 재현되는 것을 본다는 것을 얼마나 근사한 일일까요?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집을 샀습니다. 이사를 간 날 얼마나 좋았는지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방바닥도 손으로 만져 보고 바람벽도 손으로 쓸어 보았습니다. 끝내 잠을 이루지 못하면서 ‘평생 셋방살이를 하다가 자기 집 사서 이사한 날 첫날부터 쿨쿨 자는 것은 사람도 아니다’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작았지만 처음으로 우리 집을 장만했을 때의 기쁨은 제 평생에 기억이 날만한 일이었습니다. 철이 들면서 좀 더 큰 욕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집보다 큰일에 대한 욕심이었습니다. 그렇게 좋았던 집을 팔아먹을 만큼 좋은 일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와 같은 일을 우리 높은 숭의교회를 개척하고 사역을 하면서 찾은 것 같습니다. 보이지 않는 성전을 건축하는 일은 제가 그렇게 귀히 여기는 그 집을 팔아먹어도 좋을만한 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도 보이는 집을 팔아 보다 크고 아름다운 보이지 않는 집을 건축하는 것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예배당을 건축하고 입당했을 때 참 기뻤습니다. 3,400평 작지 않은 큰 예배당을 건축했을 때 정말 행복했습니다. 지금도 교회 출퇴근을 할 때마다 그 교회 앞을 늘 지나 다닙니다. 그 건물을 볼 때마다 마음이 흐믓합니다. 그 예배당을 짓고 난 후 저는 똑같은 마음을 가졌었습니다. <이 예배당을 팔아먹을 만한 일이 있었으면 좋겠다. designtimesp=17406>

앞에서도 말씀을 드렸지만 동안교회도 보이는 성전을 건축하기 이전에 보이지 않는 성전을 먼저 건축하였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보이지 않는 성전은 동안교회가 건축하였고, 동안교회의 보이는 성전은 하나님이 건축해 주셨습니다. 저는 똑같은 식의 일이 우리 높은 뜻 숭의교회에서 재현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보다 더 발전된 일 다시 말해서 더 큰 일이 일어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자기 예배당을 짓기 전에 먼저 개척교회부터 건축한 것도 훌륭한 일이지만, 자기 예배당을 지을 돈으로 열매나눔 재단을 세우고 그 재단을 통하여 가난한 이들의 구제와 자활을 도모하고 특히 탈북자들을 집중적으로 지원함으로 그것을 통하여 통일을 준비하고, 청어람 아카데미와 더 발전된 어떤 일을 통하여 좀더 구체적으로 나라를 이끌어 갈만한 인재를 양성하는 일을 할 수 있다면 (저는 이 모든 일들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정말 근사한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떤 모양으로든지 우리에게 필요한 눈에 보이는 성전도 허락해 주시리라 저는 믿습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는 생존을 위한 교회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교회를 위한 교회가 되어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교회의 목적과 소명이 교회를 이끌어가고 있지 못하고 그냥 교회 자체가 목적이 되어 교회를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소명을 잃어버린 교회, 생존을 위한 교회는 생존하지 못합니다. 성장하지 못합니다. 발전하지 못합니다.

이 시대에 이 땅에 우리 교회를 세워주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목적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볼 수 있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 시대적인 소명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성전으로 인식하고 보이는 예배당 건축보다 그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기 위하여 헌신하여야 합니다.

그래야만 건강한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야만 세상을 축복하고 세상을 하나님의 뜻대로 이끌어가는 영향력 있고 능력 있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제가 섬기고 있는 교회가 그런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한국에 있는 교회가 눈에 보이는 자기 예배당에만 연연하지 않고 보다 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데도 열심인 교회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오늘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인간적으로 막막함을 느낍니다. 오늘의 설교는 사람의 힘으로 이룰 수 있는 수준의 일이 아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역설적으로 그 인간적인 막막함과 답답함에서 오히려 희망을 느낍니다. 이제껏 목회의 경험을 통하여 볼 때 그와 같은 한계를 느낀 일은 언제나 성공하였기 때문입니다. 인간적으로 자신감이 있었던 일은 오히려 실패하였습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한계를 느낀 일은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래서 어떤 일을 할 때 인간적인 막막함과 답답함을 느낄 때 오히려 흥분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눈으로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일을 하나님께 부탁하려고 합니다. 세상적인 욕심으로 완악해져 돌같이 굳어져 있는 저와 여러분들의 마음을 성령님께서 감화 감동시켜 주시기를 기도하려고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려고 하는 마음의 소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으셨음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아니면 자기 아들 솔로몬 때에라도 건축하기 위하여 포기하지 아니하고 성전건축을 준비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들 솔로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 아들 솔로몬아너는 네 아비의 하나님을 알고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길지어다.(중략) 여호와께서 너를 택하여 성소의 전을 건축하게 하셨으니 힘써행할지니라.> (대상 28:9-10)아멘.

이 말씀은 오늘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주시는 말씀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보이는 성전보다 중요한 보이지 않는 성전 건축에 대한 소명을 주셨으니 힘써 행하여 정말 근사하고 아름다운 성전을 건축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