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중엽 당시 세계를 누비던 네덜란드 상인들은 북경에서 이상하게 생긴 마른 풀뿌리가 고가로 거래되는 것을 발견했다. 호기심 많은 이들은 조선에서부터 나온다는 이 풀을 그림으로 그려 미국으로 건너간 뒤 매사추세츠 주에 사는 원주민(인디안)들에게 보여주자 이들이 뒷산에 올라가 순식간에 한아름 캐오는 것이었다. 상선에 인삼다발을 실은 네덜란드인들은 허드슨만으로 내려와서 다시 암스텔담과 런던으로 가서 영국 동인도회사에 5배의 값을 받고 인삼을 팔았다. 이 인삼들은 중국의 광동(廣東)항을 통해 북경으로 운반된 뒤 당시 금값으로 거래되던 인삼시장을 뒤흔들어 놓았다. 이것이 미국 인삼의 중국 상륙이었다.
미국인삼은 그 뒤 오하이오주와 미시시피 게곡에서도 무한정 발견되고 있었다. 미국인들은 인삼을 중국에 수출하고 대신 중국의 차를 사갖고 돌아가는데, 그 중간에 있는 조선왕국에 대한 통상확대에 구미가 당겼다. 한국과 미국의 첫 만남은 이렇게 인삼이 매개했다.
18세기 중엽 상황이 전하는 데서도 보듯 인삼은 한국의 특산품이었다. 일찍이 6세기 초인 중국 남북조시대에 양나라 도홍경(陶弘景, 456~536년)이 쓴 『신농본초경집주(神農本草經集注)』에는
"산삼은 곧 백제[한반도 중부이남지역]의 것이 좋다. 생긴 것은 가늘고 견고하며 희다. 맛은 상당보다 담박하다. 다음에 사용하는 것이 고려삼인데 고려는 즉[ 고구려]의 요동으로서, 생김새는 크고 속이 비었으며 물렁물렁 연해서 백제의 산삼에 미치지 못한다(山蔘乃重百濟者 形細而堅白 氣味薄於上黨 次用 高麗 高麗則是遼東 刑大而虛軟 不及百濟)."
라고 해서 산삼(인삼은 곧 백제의 것이 좋다고 서술하고 있다. 1637년 화란에서 발간된 「조선각서(朝鮮覺書)」에 이 나라에서 얻을 수 있는 색다른 것으로 인삼을 들었으며 대마도 도주(島主)가 네 곱을 남겨 일본에 판다고 했다. 이처럼 초기 유럽에 소개된 한국 견문으로 인삼이 빠진 적이 없고 그래서 "코레아" 하면 인삼이요, 인삼 하면 환상의 영약으로 이미지가 붙어다녔다.
초기에는 주로 야생의 것을 채취해서 중국에 조공으로 보냈으나 물량이 부족해지자 궁여지책으로 가삼(家蔘-일명 장뇌삼)을 재배하여 산삼과 섞어서 중국에 조공으로 공물을 보내다가 조선 중기에 주세붕이 풍기에서 인삼재배를 시작한 이후에는 풍기와 개성 등에서 인삼재배가 시작되어 인삼공급이 크게 늘어나게 된 것이다.[산에서 자연적으로 자란 산삼을 사람을 닮았다 하여 인삼이라고 부르던 것을 이 때 부터 삼을 재배하기 시작하면서 인삼과 산삼으로 둘로 나뉘어 지게 된 것이다.삼을 재배하기 전에는 인삼이 곧 산삼이였다.]
*뇌두마디가 20여개 정도 되는 우수한 산삼입니다. 전통적인 백제삼의 형태를 갖추었습니다.아래 삼의 자삼입니다.*
* 윗 산삼의 모삼으로써 뇌두갈이를 두 번정도 한 것으로 보여지며,아주 단단하여 마치 나뭇가지와 같습니다.30년 이상된 것으로 여겨지는 산삼입니다.*
그런데 중국이 백두산(중국명 창바이산)을 대대적으로 개발하면서 인삼도 중국의 대표적인 브랜드로 삼으려는 계획을 추진중인 것으로 보도돼 우리를 긴장시키고 있다. 홍콩 문회보(文匯報) 보도에 따르면 중국 지린(吉林)성 정부는 백두산 일대에서 생산됐던 인삼의 유구한 역사를 내세우며 향후 3∼5년 안에 '장백산 인삼'을 세계 최고급 브랜드로 육성하기 위해, 장백산인삼의 품질 규격화와 함께 인삼 가공제품의 연구개발을 가속화할 것이라고 한다.
지린성은 현재 백두산 일대에서 생산되는 인삼을 '장백산 인삼'이라는 품질증명상표로 통일시키고 인삼 재배 및 생산의 규격화와 표준화를 실시중인데, 푸쑹(撫松), 징위(靖宇), 장백 등 3개 현에서 생산되는 '장백산 인삼'이 고산 청정지대에서만 재배돼 한국 고려인삼보다 농약 함유량이 60∼70분의 1에 불과하다는 점을 내세워 세계시장을 공략하겠다는 것이다.
*일체의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자연에서 30년동안 자란 토종 자연산 산삼*
단순히 상품개발에만 머문다면 긴장할 필요가 없겠으나 인삼이 중국의 고유 브랜드라고 중국측이 주장하고 있어서 문제가 되고 있다. 중국측은 한의약 약제로 인삼이 사용됐다는 기록이 나오는 1천700년 전으로 장백산 인삼의 역사가 거슬러 올라간다는 점을 인용하면서 특히 중국의 '변방정권'이었던 발해가 705년 당 중종부터 926년 당 명종에 이르기까지 220년동안 당나라에 94차례 조공을 오면서 산삼을 주요 공물로 보내왔고 청나라 시기엔 건륭제가 동북지방 인삼의 효능을 칭송하는 시를 짓기도 했다는 것으로 인삼이 중국의 고유브랜드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전제가 되는 것은 발해를 중국의 변방정권으로 규정하면서 고구려와 발해로 이어지는 동북지방의 역사를 중국사에 '당연히' 포함시키고 있고, 그런 역사왜곡에 인삼을 다시 끌어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인삼은 그 생산량이 어떻다고 해도 한국의 고유브랜드이다. 중국측 통계에 따르면 국제 인삼시장의 전체 규모는(미국 화기삼을 제외한다면) 6천∼6천500t으로 중국이 연간 4천t을 생산, 85% 가량을 차지하고 있고 나머지 15%를 한국, 북한, 일본이 나누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 고려인삼이 홍콩시장에서 1㎏에 미화 168달러로 중국산 인삼보다 10배 가량 비싸게 팔리며 매년 8천400만 달러 상당의 수출고를 올리는 것은, 그만큼 한국 인삼의 효능에 중국 인삼이 접근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이다. 잘 알다시피 인삼의 주성분인 사포닌은 고려인삼[한국인삼]의 경우 34종이나 있지만 중국삼은 15종, 미국삼도 14종 밖에 되지 않는다. 또 폐암이나 자궁암세포에 인삼을 투여했을 때에도 고려인삼[한국인삼]은 70%의 치유효과가 있었지만 중국삼은 30%에 머물고 있어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인삼이 우수하다는 뜻이다.[인삼이 이렇듯 효능이 좋은데 자연에서 자란 산삼의 효능은 농약재배로 키운 인삼보다 얼마나 몸에 좋을까요?]
*뇌두의 모양이나 약통의 생김새로 보아 천종산삼으로 여겨지는 산삼입니다.*
거대한 나라 중국의 공세가 워낙 다방면이다 보니 무엇부터 먼저 막아야 할지 정신을 못차리는 지경이지만 이 중국 장백산 인삼의 대대적인 선전공세가 우리의 역사왜곡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들의 공세를 이길 전략 또한 세우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국제 인삼시장에서의 고급화 등 브랜드 전략뿐 아니라 대중적인 제품의 개발, 그리고 나아가서는 한국의 고려인삼에 대한 보다 정확한 정보를 시장에 띄우는 일이다. 나아가서는 중국의 역사왜곡의 실상을 알리는 작업을 더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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