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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나는 얼마나 많은 생명을 더 죽여야 하는 것인가?..

by 골동품나라 밴드 리더 2010. 10. 7.

 

 

미국의 여행객이 인도의 한 식당에 식사를 하러 들어 갔다. 주인이 주문한 음식을 가지고 와서  테이블에 내려 놓자 마침 파리 한마리가 음식위에 앉았다. 여행객은  잽싸게 파리를 잡아 손으로 눌러 죽였다. 그것을 본 식당 주인이 말하였다.

 

"" 그 파리가 음식을 먹으면 얼마나 먹는다고 그렇게 죽이는 것입니까?.."

 

 

자연에 순응하면서 살아온 인도인의 삶의 철학이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산과 강 바다를 돌아 다니기 위하여 자동차가 빠르게 달려간다. 그런 와중에 수많은 생명체들이 나의

자동차에 치여 죽는 것을 목격한다. 잠자리 날벌레 벌 나비 개구리 등등 수많은 생명들이 달리는 내 차에 치여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그나마 미리 발견한 동물이나 곤충들을 피하겠다고 핸들을 돌리거나 속도를 늦추어 보지만 그들이 죽음을 모면하는 것은 극소수에 달하는 것 같다. 내 차에 치여 죽이는 동물들이 그렇게 많은데 전국에서 하루에 죽는 곤충과 동물들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나비나 벌이 멸종하게 되면 인간도 멸종을 피할 수 없다는데 우리 인간의 편리함을 위해 만들어진 자동차가 인간멸망의 주요 원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나마 세심한 성격의 소유자가 아니라면 수없이 많은 생명들이 자동차에 치어 죽는 다는 것을 알 수 없으니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할 수도 없을 것이다.

 

 

억겁의 시간동안 만들어진 이 세상을 우리는 찰나의 시간속에 모두 파괴시키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볼 일이다.

 

불교에서는 옷깃만 스치는 인연조차도 전생에서 수만번 만났어야할 인연이라고 가르치는데 그렇다면 내 차에 치여 죽는 동물들은 도대체 나와 얼마나 많은 만남의 인연을 가지고 태어나서 차에 치여 죽는 것일까?.

 

 

 

 

그렇다면 억겁이란게 도대체 얼마의 시간을 말하는 것일까?..
 
겁(Kalpa)이란
 
 
사방 10리가 되는 바위에 천년에 한번씩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오는데
천사의 옷자락이 바위에 스쳐서 바위가 닳아 없어지는데 까지 걸리는 시간이겁이란다.
 
여기에 억을 곱하면 억겁(億劫)이 되는구나.
 
억겁의 인연이란인간의 능력으로 헤아릴 수 없는
절대자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우리는 순간 순간의 미사여구(美辭麗句)로 억겁의 인연을 재단(裁斷)하고그 끝을 알 수 없는 심연(深淵)의 깊은 나락(奈落)으로 밀어버린다.
 
하지만 억겁의 인연이 우리의 의식속에서 사라져도 무의식의 세계에서는 찰라의 시간속에 수시로 우리를 일깨운다.
 
 
 
 찰라의 시간은 얼마나 되는 걸까?
 
찰라는
 
불교에서 이야기 하는 가장 최소의 단위로
75분의 1초라고 이야기 한다.
 
75분의 1초가 도대체 얼마나 된다는 것인지
감이 오지 않는다.
 
캐나다 동계올림픽에서 우리나라는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이승훈 선수가 날차기 기법을 선보였다.
 
쇼트트랙에서 날 들이밀기를 통해 새로운 기록을 갱신하였는데
이 날차기 기법을 했을 때 0.04초 정도의 기록이 단축된다고 한다.
 
그래서 계산기를 가져와서 두들겨 보았다.
1초 나누기 75는 0.013초였다.
 
정말로 찰라는 짧은 시간이었다.
 
사람이 눈을 한번 깜박거리는데 소요되는 시간이 0.013초라고 한다.
 
정말 우리는 모순된 시간을 살고 있는 것 같다.
억겁의 인연을 지니고 살아가면서
찰라의 의식으로 모든 것을
의식속에서 날려버린다.
 
조용히 나를 관조(觀照)하면서
내면의 무의식에 잠재하는 억겁의 인연을
소중한 나의 또다른 모습으로 살려내자.
 
나와 소통(疏通)하고 나의 인연과 만날때
에밀레 종소리 처럼 우리를 울려줄 것이다.
 
 
 
 

            

              

 

도대체 나는 얼마나 더 많은 생명을 죽여야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일까?... 내가 살기 위하여 다른 피조물들을 죽여야 하는 세상속에서 살아가는 내 자신이 밉다....할 수만 있다면 다시 옛날로 돌아가 우마차를 타고 말을 타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우마차는 느긋하니 나비와 벌이 죽을 수도 없고 말은 빠르지만 발이 작으니 개구리가 밟혀죽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가난할 지언정  요즘처럼 풍족하게 먹지 못할 지언정 마음만큼은 풍성하고 넉넉하리라.. 한세상 삼십년을 살던지 백년을 살던지 좀 더 오래살면 그게 그렇게 큰 의미가 있을 손가?.. 어차피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것,,,,사는 동안 하루하루 값어치 있게 살면 설령 얼마 살지 못할지언정 그것이 간사하고 비열하게 세상 눈치보면서 백년을 사는 사람보다 더 가치 있는 사람이 아니던가?.. 살고자 애쓴다고 천년을 사는 것도 아니고 죽고 싶다고 당장 죽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살고 죽는 것에 개의치 말고 그져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를 사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리라..

 

그러나 그것을 알면서도 몸이 생각을 따르지 않기도 하니.. 참으로 삶은 고해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그러하더라도 마음 하나 만큼은 온 세상을 사랑하고자 하는 초심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래야만 그것을 기억하는 동안일지언정 천천히 달리는 자동차에 생명들이 살아 남을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찰라에 생각에 따라 생명이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하는 것이니... 

 

잡아 먹기 위하여 키우는 소나 돼지가  날아 다니는 모기와 벌과 나비보다 더 귀한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몸을 살찌우고 병들게 하는 고기보다 자연속에서 살아가는 식물들에게 과일과 씨앗을 만들어 자자손손 푸르른 야채와 열매를 먹게 하는 것이 귀한 것인지 , 알게 될 날이 올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