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성골수성백혈병 항암치료 거부하고 식이요법으로 완치
*항암제로 살해당하다* 급성골수성백혈병은 감기약[해열제]복용이 원인*
백혈병환자의 투병기입니다.식이요법으로 완치 되었답니다.
마산386 조회 284 추천 0 2003.10.13. 23:03
1990년 12월 18일은 대통령 선거 날이었다. 공설운동장에 가서 투표를 해야 되기 때문에 투표를 하러 가는데 어찌나 숨이 가쁜지 걸음을 걸을 수가 없었다. 우리 집에서 걸어서 10분도 안되는 거리를 무려 일고여덟 번을 쉬면서 걸어야 하였다. "내가 왜 이럴까? 심장이 나빠졌나? 왜 이렇게 기운이 없지?"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몸이 이상했지만 아마 심장이 좀 좋지 않나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다. 잠을 자고 나면 괜찮겠지 하고 청심환을 사다 먹고는 잠을 청했지만 숨은 점점 가빠져 왔다. 저녁을 먹었다. 양치질을 하기 위해 거울을 쳐다보았더니 꽃게를 먹을 때 상처가 났던지 혓바닥이 온통 퍼렇게 멍들어 있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하혈이 시작되는 데 얼마나 많이 쏟아지는지 감당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19일날 밤 극도로 신경을 쓸 일이 생겨났다. 집안 문제였다. 나에겐 큰 타격을 주는 문제라 성질을 있는 대로 내며 난동을 부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 오기 시작하였다. 나는 견딜 수 없는 아픔에 거의 미친 사람처럼 날뛰었다. 머리를 차게 하면 두통이 사라진다는 말을 듣고 추운 겨울인데도 수건을 찬물에 적셔 머리에 동여매고 밖에 나가 동동 뛰었다. 얼마나 뛰었을까? 온몸에 기운이 모조리 빠져나가기 시작하면서 나는 쓰러지고 말았다. 정신을 차려 깨어났을 땐 동이 터 오고 있었다. 올케가 옆에서 근심스런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나는 올케에게 병원으로 데려가 달라고 부탁하였다. 올케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허둥대다가 큰언니 집으로 가야겠다고 일단 결정을 내리고는 나를 차에 태웠다. 큰언니 집을 갔다가 나는 곧바로 강남 성모병원으로 급송되어 응급실에 들어가서 피검사부터 받았다. 건강한 사람의 백혈구 수는 6000-10000인데 나의 백혈구는 1000이며, 건강인의 혈소판은 15만개- 30만개인데 나의 혈소판은 15000개였다. 헤모글로빈도 정상수치인 12-15에 훨씬 모자라는 5.6에 지나지 않았다. 병원에서는 나에게 조금도 움직이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혈소판은 혈액을 응고시키는 성분인데 그 수가 너무 적어서 핏줄이 저절로 터질 수도 있으며 한번 핏줄이 터지면 지혈이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뇌혈관이 터지지 않은 것이라고 하였다. 뇌혈관이 터지면 그 자리에서 죽는데 온몸에 혈관이 터졌는데 머리만 안 터졌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상태대로 두었다가는 혈관이 터질 우려가 많으므로 속히 피를 공급해야 하니까 피를 줄 사람을 구하라고 하였다. 당장에 어디 가서 나와 같은 O형의 피를 구한단 말인가? 같은 형제의 피는 별로 좋지 않다고 하였지만 급한 대로 남동생의 피를 급히 채혈하여 수혈을 하고 났더니 머리의 통증이 씻은 듯이 나았다. 머리에 피가 부족하여 그렇게도 통증이 심했던 것이다. 그러고난 후 곧바로 골수 검사로 들어갔다. 골반 근처의 뼈를 드릴 같은 것으로 뚫을 땐 기분이 무척 나쁘고 아팠지만 병원에서 하자는 대로 검사를 하였다. 의사 선생님께서 "힘내세요, 용기를 잃지 마세요" 하고 격려해 주셨을 땐 얼마나 고맙던지... 그러나 검사 결과는 나를 아연하게 만들었다. 영화에서나 보았던 병, 소설에서나 읽었던 병, 백혈병, 급성 골수성 M3형 백혈병이었다. "스잔나"라는 영화에서 주인공이 머리가 아파 몸부림치다 죽어가던 모습이 뇌리에 선명한데 내가 그와 같은 병이라니!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래 이제는 나의 생을 정리해야겠구나, 때가 되었단 말이지 하고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내 자신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머리에는 아무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머리 속엔 이제 나에게는 하나님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이 가득했다. 그러면서 내가 가야 할 곳은 오직 기도원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도원에 갈래, 기도원에 갈래, 나 기도원에 갈래...." 거의 무의식적으로 되뇌고 있는 나에게 형제들은 나를 설득하기 시작하였다. "그래도 한 번 치료해 봅시다, 치료해 보고 난 후에 기도원에 가도 늦지 않으니까, 제발 한번만 치료해 봅시다."하고 사정하였다. 그러나 나는 계속 "아니야, 나는 기도원에 가야만 해!" 하고 고집을 부렸다. 동생들과 언니들은 나를 붙들고 애원을 하였다. 한 번만 치료해 보자고... 어떻게 간곡하게 말하던지 나는 마침내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승낙을 하였다. 그래 한번 해보자,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 것이라면, 저렇게 애원을 하는데 못 들어 줄 게 무어람 하면서. 나의 승낙이 떨어지자 강남성모병원에서는 혈액 전문치료 병원인 여의도 성모병원으로 나를 이송하였다. 성모병원 13층은 모두 혈액병으로 입원한 사람들이었다. 주로 백혈병이었다. 모두 까까중머리가 되어 있는 그들을 보니 외계인들이 사는 나라에 온 것처럼 이상하게 보였다. 그 큰 병동에는 소아 백혈병, 성인 백혈병, 재생불량성 빈혈 환자 등 모든 혈액병 환자들이 모여 있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혈액암으로 고통받고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아기, 어른, 할머니, 할아버지들까지 어쩌면 그렇게도 많은 사람들이 암을 앓고 있는 것일까! 병원을 옮긴 12월 31일, 치료를 위해 간병하는 아주머니도 고용을 하였다. 병원에선 항암치료가 시작되면 혈액이 다량으로 필요하니 많은 사람을 확보해서 피검사를 해놓으라고 하였다. 건강한 피라야 내가 맞을 수 있다면서. 큰언니의 시동생이 다니는 교회의 청년들이 모두 동원되었고 남동생의 친구들 또 내가 아는 집사 님의 아들과 그 친구들까지 모두 동원하여 피검사를 하였다. 3일 동안 여러 가지 검사를 거친 후 1월 3일부터 암치료가 시작되었다. 항암제는 굵은 정맥을 뚫고 그곳에 약을 주입하는데 맞는다기보다는 쏟아 붓는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한 병을 가져오면 30분이면 수돗물을 틀어놓은 것처럼 핏줄로 줄줄줄 다 들어가고 말았다. 주사를 맞을 때는 별 생각 없이 맞았는데 주사를 맞고 나니 독방으로 옮겨져 아무도 만나볼 수 없는 면회사절 환자가 되고 말았다. 항암제를 다 맞고 나면 몸의 모든 기능이 떨어지고 면역력이 저하되어 다른 사람들로부터 세균이 감염되면 내가 이겨내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주사를 맞고 나자 그때부터 쉴 새 없는 구토증이 일어났고 입술은 돼지 주둥이처럼 부풀어오르기 시작하였다. 온몸은 항암제의 부작용으로 화상을 입은 것처럼 붉게 부풀어올랐고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찾아오기 시작하였다. 나는 차라리 죽여 달라고 하나님께 하소연하며 어쩔 줄을 몰라했다. "이렇게 고통을 받을 바에얀 차라리 죽고 싶어요, 나를 죽여주세요!" 하고 떼를 쓰기도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날 밤에 꿈에 나타나셔서 나의 머리에 안수해 주시며 진실한 목자가 되라고 말씀하셨다. 꿈을 깨고 난 후에 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감사하다는 기도였으며 순종하겠다는 기도였다. 항암제의 후유증은 너무나 끔찍스런 것이었다. 뼈의 관절이 잘 펴지지 않았고 폐에는 약도 없다는 곰팡이성 폐렴이 생겨 날마다 엑스레이를 찍으러 방사선과에 가야 했다. 열은 너무 올라 체온계 끝까지 치솟았다가 해열제를 투여하면 확 떨어져 정상으로 돌아오는 널뛰기를 반복하였다. 이를 보고 회진하러 오신 의사 선생님은 금강산 일만이천봉이로구먼 하셨다. 열이 오르면 가슴에서부터 머리까지만 헐떡거리고 나머지는 파랗게 거의 죽어있는 상태가 십여 일이 계속되었다. 이런 저런 후유증으로 무척 괴로웠지만 제일 슬프고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탈모였다. 머리의 피부가 조금씩 아프더니 머리카락이 우수수 빠져 버리는 것이었다. 이발사가 와서 듬성듬성 남아있는 머리카락을 다 밀어버릴 때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다른 사람들이 면회하고 싶다고 하여도 부끄러워서 모두 거절해 버렸다. 무어라고 그때의 심정을 표현해야 옳을까. 어딘가 훌쩍 도망치고 싶고 쥐구멍이 있으면 들어가 버리고 싶고 이대로 사라져 버리고 싶었던 그때의 그 심경은 한마디로 괴로움 그 자체였다. 어느날 심장 검사를 하고 올 때였다. 어떤 남자 분들이 여러 명 서 있다가 "춘자씨 아닙니까?"하고 물어 왔다. 머리를 들고 쳐다보니 교회 모임의 동료들이 면회를 온 것이었다. 난 너무 창피해서 말을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남자 분들도 모두들 나를 쳐다보고는 고개를 돌리고 눈물을 훔치는 것이었다. 병실에 돌아와서 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아마 지구가 멸망해도 그렇게 울지는 않았으리라. 머리카락이 뿌리까지 빠져버려 유난히도 하얗던 두상과 화상을 입은 환자처럼 부풀어올라 더러워진 살갗을 보며 "내 몰골이 이게 뭐야, 내가 왜 이렇게 되었어!" 하고 중얼거리며 울고 또 울었다. 눈물은 쉴새없이 흘렀고 그렇지 않아도 부어 있던 얼굴이 더욱더 부어 올랐다. 내가 백혈병환자라는 사실에 몸과 마음으로 적응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요구되었다. 스님들이 텔레비전에 나오면 "우리 동료들이 나왔네!" 하고 웃기까지 하는 환자들을 보면서 그들이 겪어 나왔던 고통의 세월을 읽을 수 있었다. 하루는 내 앞에 있는 병상에 어떤 여자 분이 입원하였다. 병원 측에서는 정오까지 수혈을 해야 하니까 수혈해줄 사람을 구해 놓으라고 하였다. 환자의 남편 되는 분이 환자와 같은 혈액형을 가진 사람을 구하려 사방을 수소문하였다. 그러나 갑작스런 일이라 오후 2시가 되어도 사람을 구하지 못하여 수혈을 하지 못하자 갑자기 환자는 "아이구, 머리야! 아이구, 머리야!" 하면서 외마디 비명을 지르더니 순식간에 의식불명이 되어버렸다. 옆에서 간호하고 있던 여동생이 "언니, 어떻게 해!" 하고 울면서 간호사에게 뛰어가 연락을 하였고 연락을 받은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들이 쫓아와 중환자 실로 이송해 갔는데 그 후로 그 환자는 깨어나지 못하고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혈소판이 부족하여 뇌에서 혈관이 터져 버린 것이었다. 어떤 환자는 항암제를 맞다가 죽기도 하였다. "어? 주사약이 들어가질 않네요?" 하면서 환자를 보면 환자는 이미 숨을 거두고 만 후였다. 어떤 아주머니는 피를 쏟고 쏟다가 결국에는 혼수상태가 되어 중환자 실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거의 같은 시기에 들어온 사람들이 하나 둘씩 죽어 가는 것을 바라보면서 이미 나도 죽음을 초월하고 담담히 죽음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병을 얻은 것이었다. 항암제를 다 맞고 난 후 나는 한 달을 죽음과 싸우며 사선을 넘나들었다. 배는 너무 아파 오고 설사는 끊이지 않았으며 웬 구토는 그렇게 심하게 나오는지 한 달에 만오천 원이나 하는 알약을 사다 먹고야 구토가 가라앉았다. 화장실 가다가도 몇 번이나 쓰러졌다. 그때마다 간병사 아주머니는 "우리 환자 큰일 났어요!" 라고 소리치며 간호사에게 뛰어갔었고 그러면 간호사들이 뛰어와서 부축하여 침대에 뉘어주곤 하였다. 잠은 왜 또 그렇게 들지 못했던지 밤새 뒤척이다가 간호사에게 잠좀 잘 수 있게 해달하고 사정하여 약을 타 가지고 와서 먹고야 겨우 한숨 자기도 하였다. 한 달쯤 지나니 몸이 조금 회복이 되어 퇴원하였으나 두 달 후에는 또 입원하여 항암제를 맞으라고 하였다. 이런 식으로 1차, 2차, 3차, 4차까지 하여야 치료가 완료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렇게 1차 치료를 정신없이 넘기고 2차 치료를 받게 되었다. 2차 치료가 그런 대로 수월하게 넘어간다고 할 때였다. 다리에 주사를 맞고는 화장실에 가려고 발을 내딛는 순간 마치 다리를 바늘로 찌르는 둣한 통증이 일어나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는 주저앉아 버렸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퇴원하여 몸을 추스리고 있는데 주사 맞은 자리가 부풀어올라 걸음마저 제대로 걸을 수 없었다. 통증은 또 얼마나 큰지 급기야 119 구급차를 불러 타고 여의도 성모병원으로 실려가게 되었다. 응급실에 가서 보니 누울 침대도 없었다. 땅바닥에 타월을 깔고 있으면서 통증을 호소했으나 의사의 손길이 부족하여 아침에 갔는데 오후 늦게서야 외래에 가서 진료 신청을 하고 의사선생님께 문의해 보라는 지시를 해주는 것이었다. 외래 진찰을 받고 나는 곧바로 다시 입원을 하여 다리의 치료를 받게 되었다. 입원해 있던 보름 동안 나는 곰팡이성 폐렴 때문에 혈담까지 쏟게 되었다. 항암제의 부작용은 맞아 본 사람이나 알지 그 누가 죽음보다 더 고통스런 상태를 정말로 알 수가 있겠는가! 치료 후에 퇴원하여 집으로 왔으나 마냥 쇠진하여 누워만 있었다. 그렇게 두 달쯤 지내다가 3차 치료를 받기 위하여 다시 입원하게 되었다. 이때의 주사는 얼마나 아픈지 혈관이 찢어지는 듯하였다. 3차 치료 때도 열이 몹시 올라 수은주가 체온계 끝까지 오르락내리락 하였다. 이마에는 얼음주머니를 올려놓고 사시나무 떨 듯이 덜덜덜 떨고 있었다. 고열로 인해서 거의 사경을 헤맸기 때문에 나의 생각에 더 이상 항암제를 맞다가는 오히려 일찍 죽어버릴 것 같았다. 두려움이 엄습하였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다, 항암제 맞고 고통받다가 이 세상을 하직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고통을 받지 않고 죽는 것이 더 낫겠다. 나는 4차 치료를 포기하고 말았다. 의사 선생님은 병원에서 지나다 만나면 왜 4차 치료를 받지 않느냐고 나무라셨지만 난 못들은 척 해버리고 고통을 받지 않는 편을 택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간병하시는 아주머니를 집에 데려와서는 나의 시중을 들게 하였다. 그때부터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약들을 먹기 시작하였다. 병은 한가지인데 약은 200 가지라더니 민간요법엔 약들이 많기도 참 많았다. 민들레를 뿌리까지 캐서 즙을 짜먹기도 하고 다슬기를 먹거나 돌미나리를 100번 이상 씻어 즙을 짜서 먹기도 하였다. 그리고 소뼈를 고아서 먹기도 하고 호박에다가 감초, 꿀, 민물 뱀장어를 넣고 푹 고아 그 물을 먹기도 하였다. 운지, 영지, 상황 버섯도 다려서 먹고 한약재를 소개받으면 서울 경동시장에 가서 사서 다려 먹기도 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기운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일어날 기운이 없어 나날을 보내고 있는데 여동생이 자라 큰 것 일곱 마리에다가 민물 뱀장어 20 킬로그램에 마늘 한 되, 대추 한 되, 생강 약간을 넣어서 건강원에 가서 고아왔다. 그리고 돌미나리는 백혈구가 많이 생긴다 하여 계속하여 녹즙기로 짜서 그 즙을 먹었다. 예전에 있던 녹즙기로 짜려니 너무나 더디고 잘 짜지지 않아 동생에게 녹즙기를 새로 사야겠다고 말했더니 큰언니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금 녹즙기가 춘자에게는 생명을 이어주는 귀중한 물건이니 빨리 사주어야 한다고. 남동생과 같이 나가 여기저기 돌아보고 제일 맘에 드는 녹즙기를 사들였다. 그 무렵 녹즙기에서 중금속이 나온다고 언론에 대서특필되던 시절이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녹즙을 먹는 것을 포기하였던 때였다. 가정에서 녹즙기는 애물단지가 되고 녹즙기 회사들은 망해 가던 그런 시절이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녹즙기 회사도 이 무렵 망해 버렸다. 텔레비전에서 나는 어느 불치병 환자가 나와서 "녹즙기가 해롭다고 하나 나는 그래도 녹즙을 먹고 나의 병을 고쳤습니다." 하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정말 그렇다. 죽을병에 걸려 있는 나에겐 중금속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사느냐 죽느냐 갈림길에 서 있는 환자들에게는 중금속 타령은 사치인 것처럼 들렸다. 날마다 시장에 나가 비싸건 싸건 무조건 돈을 달라는 대로 주고 돌미나리를 사서 짜 먹었으며 자라와 민물장어 탕을 날마다 하루 세 번씩 먹었다. 미나리 즙을 부지런히 짜서 먹었다. 풋내가 난다든지 맛이 이상하다든지 하는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초봄에는 미나리가 얼마나 비싼지 2-3만 원어치는 사야 겨우 몇 컵이라도 짜먹을 수 있었다. 다슬기도 피가 많이 생기고 간에도 좋다 하여 시장에 나가면 미나리에다 다슬기까지 사 가지고 와서 된장을 풀고 푹푹 삶아 국물은 국물대로 먹고 알맹이는 알맹이대로 일일이 가위 뒤로 꼬리를 따 가지고 알맹이를 빼먹었다. 병원에 정기적으로 진찰을 하러 가보면 같이 입원했던 사람들은 하나씩 둘씩 보이지 않았다. 모두 이 세상을 하직하고 만 것이었다. 귀부인처럼 생겼던 방씨 아줌마, 탤런트보다 더 예뻤던 김양, 부잣집 맏며느리처럼 생기셨던 오씨 아줌마, 남편이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될 때까지만 살아다오 라고 날마다 부탁하던 권씨 아줌마, 제주에서 왔던 이쁜이 학생.... 갈 때마다 안 보이는 그들을 생각하며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되겠지 하고 생각했었다. 제주도에서 왔던 아줌마는 남편이 죽어 장례식을 치르고 곧 백혈병에 걸려 입원하였는데 불행히도 아들 둘을 남겨놓고 이 세상을 떠나셨다는 말을 들었다. 철없이 아픈 엄마의 발치에서 노래를 들으며 발을 흔들어대던 아들의 모습이 떠오르며 이제 어찌 살아나갈 것인가 하고 걱정이 되었다. 다들 이렇게 죽어갔었다. 그러나 나는 이상스럽게 날이 갈수록 몸에 생기가 돌았다. 나는 기운이 나서 교회에도 가고 기도원에도 가고 친척집에도 갈 수 있을 만큼 건강이 좋아졌다. 나의 여동생은 쑥을 뜯어다가 말려서 미숫가루를 만들어 먹어보라며 보내 주었다. 쑥도 피를 만들고 위를 치료하고 장을 치료하는 데 특효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중에는 손수 쑥을 뜯어다가 그 즙을 짜 먹을 때는 얼마나 쓰던지... 그래도 그게 약이 된다 하니 무엇이든지 먹어대는 것이었다. 피검사하여 헤모글로빈 수치가 떨어지면 얼른 쑥을 뜯어다가 그 즙을 먹었다. 그러면 헤모글로빈 수치가 올라갔다. 백혈구 수치가 떨어지면 미나리 즙을 더욱더 많이 먹었고 피곤하면 자라탕을 먹었다. 그러면 백혈구 수치도 올라가고 피곤이 싹 가시는 것이었다. 당근 안에 들어 있는 베타카로틴이 암을 치유하는 성분이라고 하여 당근도 한 보따리씩 사다가 날마다 얼마나 짜 먹었는지 이루 헤아릴 수도 없었다. 이렇게 열심히 녹즙을 짜먹고 자라탕, 다슬기를 먹고 있는 동안에 피의 수치는 정상으로 회복되었다. 처음엔 일주일에 한 번 진찰을 받으러 갔으나 몸이 좋아질수록 병원에 가는 일이 줄어들었다. 한달 만에 가다가 삼개월마다 가게 되고 다시 육 개월 만에 가게 되었다. 그리고는 육 개월마다 한 번씩 가는 것으로 고정되었는데 피검사를 하여 재발이 되었는지 안되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피검사 결과 피의 수치가 많이 떨어지면 백혈병의 재발로 보고 다시 골수검사에 들어가야 한다. 검사 결과가 재발로 판정이 날 경우에는 다시 처음 치료할 때처럼 1차부터 4차까지 치료하게 되는데 재발하면 거의 모두가 죽는다고 한다. 3년이 지나면서 이제 죽지 않으려나 보다라고 생각하다가도 아냐 아직은 안심해선 안돼 하고 혼자 중얼거리며 다시 녹즙과 다슬기 자라를 열심히 먹었다. 어느날 병원에 정기 진찰을 받으러 갔더니 환자 아저씨들끼리 얘기를 하고 있었다. 한 아저씨가 단정적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백혈병은 결코 오래 살지 못해. 기한이 3년이야. 아무리 발버둥쳐도 소용없어. 어느 의사가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어." 라고. 아직 나는 살았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이르구나 하는 생각에 한숨이 나왔다. 의사 선생님은 5년이 되어야 완치라고 본다며 계속 병원에 다니라고 하셨다. 5년이 되던 마지막날, 의사 선생님은 날짜 계산을 열심히 하시더니 "이제 만 5년이 되었군요. 이제는 오실 필요가 없습니다."라고 말하며 치료일지에다가 한자로 '완(完)'이라고 큰 글씨로 쓰시더니 나에게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하는 것이었다. 불치병이라는 혈액 암인 백혈병에서 완전히 치료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안수해 주셨고 또한 돌미나리와 당근과 다슬기와 자라, 민물 뱀장어 탕에서 많은 효과를 본 것이었다. 지금은 만 6년 6개월 정도가 되었다. 현재의 나는 누구 못지 않게 건강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정상인들보다도 더욱 기운이 좋고 힘이 넘쳐난다. 그러나 나는 지금까지도 간혹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면 미나리 녹즙에다가 당근 즙을 먹고 자라탕을 먹는다. 평소에 건강을 지켜야한다는 것을 절실히 체험했기 때문이다. ************************
참고사항
"항암제 자체가 가장 강력한 발암물질입니다." 어느 양심있는 의사의 고백 -
참고사항
유방암의 겨우 수술은 할지언정 항암치료나 방사선치료를 절대 하면 안됩니다. 뼈나 뇌속 폐속에서 암이 재발합니다. 국소 재발은 생존율이 높지만 뇌와 뼈 폐는 생존율이 희박합니다.
유방암치료 후 뼈속이나 뇌로 전이 재발되는 이유..
많은 유방암 환자나 그 보호자 분들과 상담을 해 본 결과 한결같이 유방암이 다시 재발한 경우였다. 특히나 이들 유방암 환자들의 경우 대부분이 뼈로 전이가 되었다, 다른 암환자 분들중에도 뼈로 전이가 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특히나 유방암 환자들은 거의 대부분이라고 할 만큼 뼈속으로 암이 전이된 경우가 많았다.
왜 이처럼 유방암 환자들은 암이 뼈로 전이 되는 것일까?. 현대의학이 암의 원인이 무엇인지 밝혀지지 않아서 암치료제를 만들수 없노라고 주장하듯이 왜 하필이면 치료가 더욱 어려운 인체의 뼈속으로 까지 암세포가 숨어들어가서 자라는지 정확한 이유는 단정 할 수가 없다.
그러나 암의 원인은 환경오염과 스트레스 오염된 음식과 깊은 연관이 있다고 알려진 것처럼, 유방암 환자들이 뼈로 암이 전이되는 이유에 대해 나는 독한 항암제치료와 수술 ,방사선 치료에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유방암 환자들은 거의 대부분이 젊은 여자들에게서도 많이 발생하는 편이다. 젊다는 것은 다른 장기들은 건강하다는 뜻이며, 깨끗하고 건강한 장기속에서 암세포는 생존해 나갈 수가 없다 . 따라서 유방암 환자들에게 독한 항암치료나 수술,방사선을 조사하면, 암세포들은 놀라서 다른 곳으로 숨어 들어갈 곳을 찾게 되고 여기저기 헤메이다, 마땅히 숨어 살곳이 없다보니, 뼈속으로 찾아 들어 가는 것이라고 본다.
다른 장기가 너무 단단하고 강해서 암세포가 숨어 들수가 없고, 할 수없이 세포들이 별로 없는 뼈속으로 들어가 숨게 된다는 것이다. 생명력이 강한 암세포는 뼈속에서도 살아 남아 세력을 키워 나가는 것이다.
이렇듯 뼈속으로 숨어든 암은 치료가 상당히 어렵다고 한다. 사실 뼈속으로 전이 된 암은 현대의학적으로는 거의 치료불가능 하다는 것이 정설일 것이다. 그 이유는 현대의학적으로 암을 치료 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이 암을 일시적으로 축소시키는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밖에 없는데, 뼈속까지 항암치료나 방사선 치료가 그 효과가 미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땅속으로 숨어 들어간 두더쥐를 잡겠다고 쉴새없이 땅을 파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파고 들어가면 갈수록 숨어 들어가는 두더지를 잡지도 못하면서 땅속만 쑥대밭으로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 항암치료나 방사선 치료를 하면 할 수록 암환자의 몸은 회복불능으로 산산조각이 나게 될 뿐이라는 것이다.
일본의 소몬하치오치병원의 원장인 마가라 준이치[암전문의사]씨는 자신의 병원에 입원한 암환자들을 대상으로 항암치료와 수술치료,방사선 치료 그리고 아무 치료도 받지 않고 자연요법치료를 받은 4부류의 암환들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를 발표 하였다. 이 4부류의 치료법으로 몇백명의 암환자들을 치료해 본 결과 가장 치료효과가 나쁜 그룹은 방사선 치료를 받은 암환자들이였으며, 다음이 항암치료, 그 다음이 수술치료, 그리고 가장 치료 효과가 좋은 암환자들은 아무것도 치료하지 않고 자연치료를 받은 사람들이였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일부분이기기는 하지만 대체의학이나 자연식이요법치료도 건강보험이 적용된디고 한다. 그런 이유로 소몬하치오치병원에서는 항암치료와 방사선 수술 그리고 자연치료법으로 암을 치료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그 치료효과를 검증 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소몬하치오치 병원의 원장인 암전문의 마가라준이치씨는 이런 말로 결론을 내리며 암환자들에게 간곡하게 호소 하였다. " 암은 아무 치료도 받지 않는 것이 가장 낫기가 쉽다. 이 사실을 이해 하는 사람이 늘어 나기를 나는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라고 말이다. 실제로 임상실험과 검증을 한 암전문의사이자 병원장인 사람이 병원의 수익에 반할 수 있는 말을 하는 이유는 자신의 양심을 속이는 것을 스스로 용납 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환자의 건강보다는 재물에 눈이 멀어 집단 이기주의로 뇌물수수와 집단파업을 일삼는 잘못된 교육의 희생자들인 우리나라 의료진들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것은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나라에서도 양심선언을 하는 암전문의사를 살아 생전 만나 볼 수 있으려나...
유방암수술하면 암이 전신으로 퍼져나가는 이유 밝혀지다 *미국 일리노이 주립대학 워렌 콜박사 발표*
1950년대에 미국 일리노이 주립대학의 워렌 콜 박사는 수많은 임상실험결과와 조사를 바탕으로
" 암수술을 시행 한 후 , 환자의 말초신경 부분의 혈액을 검사함으로써 암수술이 원인이 되어 암세포가 전신으로 퍼져 나간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입증해 내었다
그런데 이런 과학적이로 합리적인 의학상식 마져 거부하고 반대하는 의사들은
" 비록 암세포가 암수술로 인하여 다른 곳으로 전이는 할 수 있으나 아직 침범 당하지 않은 부분은 암세포를 억제 할 수 있다 라는 반론을 펼쳤다..
하지만 이것은 너무도 어리석은 반론이다. 만일 암환자가 암세포의 전이를 억제할 수 있다면, 그는 처음부터 암에 걸리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암의 전이를 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이 오염되어 있는 것이 암환자의 상태이므로 암수술이 암을 전신으로 퍼져 나가게 되는 주요 원인이 되느 것은 당연한 이치라고 할 것이다. *" 나는 현대의학을 믿지 않는다"참조 서적 -105페이지 -문예출판사-로버트 S 멘델존 의학박사 [미국 시카고 마이클 리세 병원장 소아과의사]*
이런 잘못된 의학상식이 현대의학 상식으로 정착하면서 현대의학으로는 암치료법은 암을 고칠 수 없으며 오히려 '암을 발생 시키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제약회사와 의사들의 자본주의와 이기주의 때문에 진실의학이 감춰지고 거짓의학이 자리잡아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아 가는 것은 아닐까?..
항암제가 효과가 있다는 말은 악마적 속임수*
암환자나 가족들이 진정으로 알고 싶어 하는 것은 암환자에게 "투여되는 항암제가 정말 효과가 있는 있는가?"라는 것이다. 요컨대 "그것으로 암이 낫는지 어떤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알고 싶어 한다. 그리하여 의사에게 물어 보면 의사는 "괜찮습니다 유효율은 확인되었습니다"[*유효율*일시적으로나마 암의 크기가 줄어드는 것]
그러면 환자와 그 가족들은 "다행이다 효과가 있다니,이제 살수 있어" 라며 서로 손을 맞잡고 눈물을 글썽인다. 하지만 여기에는 절망적인 속임수가 존재한다 취재과정에서 그 현실을 알게된 나는 눈이 뒤집히는 줄 알았다. 현재 항암제의 유효성 판정은 항암제 투여후 4주 이내에 암의 크기가 아주 조금이라도 축소되기만 하면, "효과 있음" 으로 판정된다. 즉 항암제를 투여하면 암환자가 얼마나 더 오래살 수 있는가 아니면 더 빨리 죽을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무조건 암의 크기만 줄어들면 무조건 항암제를 제조하여 판매하도록 허가를 내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4주동안만 효과가 보이면 유효율을 인정하여 시판을 허락 하는 것일까? 그 수수께끼는 손쉽게 풀렸다. 항암제는 명백한 "독약"이다. 생체에 "맹독"을 투여하면 그 독성으로 인하여 손상을 입는다 암세포중에서도 어떤 것은 독성에 놀라서 꿈틀하고 움추려 드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이것을 효과가 있다고 판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암세포의 축소효과는 대략 환자 10명 가운데 1명에게만 나타난다 그래서 항암제의 유효율이 10%인 것이다. 90%의 암환자는 암이 움찔하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정부[일본 중앙 약사심의회]는 항암제를 의약품으로 승인해 왔다. 암이 정말 낫는지 어떤지 조차 모르는 채 말이다. 이것만으로도 심의회 의원들이 제약회사의 노예라는 사실을 논할 필요조차 없다.
*10명중 1명이 암의 크기가 줄어 들 뿐이다. *
이러한 진실을 안다면 암환자나 가족들은 놀라서 쓰러질 수 밖에 없다. 의사의 "효과있다" 라는 말은 환자나 가족에게는 "나을 것이다" 라는 뜻으로 들린다. 그러나 사실 이 말은 투여 후 4주 이내라면 " 아주 조금 줄어든다 라는 의미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도 10명중 1명일 뿐이다. 하지만 항암제의 맹독성은 100% 모든 환자를 덮쳐 지옥의 고통을 안겨준다. 그러나 항암제를 투여할 때 환자나 가족들에게 " 효과가 있다" 라는 이 말의 진짜 의미를 세심하게 설명하는 의사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의사나 제약회사가 말하는 항암제가 " 효과가 있다" 라는 말은 속임수의 극치라고 하겠다.
*봉인된 반항암제 유전자의 실체*
겨우 10명중에 1명이기는 하나 어쨋든 간신히 크기가 줄어든 암도 4주가 지나면 다시 증식하기 시작한다. 마지막 희망도 사라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진실 즉 항암제가 참으로 무력하다는 사실은 암치료의 어둠속에 깊숙이 은폐되어 왔다. 미국국립 암연구소의[NCI] 테비타 소장이 미의회 증언석에서 ''항암치료는 암치료에 효과가 없다. 우리는 깊은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다" 라고 증언했다. "암제로 암의 크기를 줄여도 암세포는 다시 내성이 생겨 반항암제를 만들어 내서 항암제를 무력화 시킨다,이는 농약을 살포하면 곤충이 내성이 생기는 것과 마찬가지이다"라고 솔직하게 털어 놓았다. 따라서 항암제를 아무리 많이 투여해도 깨진 독에 물 붓기 " 일 뿐이다.
*4주일 동안의 유효율 판정 수수께끼가 풀리다. *
밑빠진 독에 물붓기 뿐만이 아니라 암의 증식및 증대를 시작한다. 암이 재발하는 리바운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자연치료와 기공치료로 암을 치료하는데 커다란 실적을 올려 전국적으로 유명한 야먀마 의사는 "항암제를 사용하면 흉포한 놈만 살아남는다" 라고 말한다. 농약에 대한 해충구제와 마찬가지이다. 농약에 대한 내성을 획득한 극도로 생명력이 강한 해충이 반격해 오듯이 항암제 투여로 강한 암세포만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암은 때리면 때릴수록 흉포해 진다. 이것은 생명체의 기본 성질이다. 생명은 반듯이 살아남으려고 한다" 라고 야야마 의사는 설명한다.
여기서 불가사의한"4주일"의 수수께끼가 풀린다,. 부자연스럽게도 단기간을 판정범위로 정한 이유는 그들이 반항암제 유전자의 존재를 옛날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항암제 투여후 반년 혹은 1년 동안의 경과를 관찰하면 한 때 조금이나마 줄어든 암이 반발해서 증식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런 사실이 들키게 되면 곤란하므로 그들은 4주일이라는 극히 짧은 기간으로 항암제의 유효성을 판정하는 반칙을 쓴 것이다. 참으로 악마의 속임수가 따로 없는 것이다. 돈을 많이 벌기 위하여 수많은 암환자들은 죽음에 빠뜨리는 짓을 자행하는 것이다.
암환자들은 항암치료를 받은 후 " 좋아 졌어요 " 라며 퇴원 인사를 하러 온다 혈색도 좋아져서 직장에도 복귀한다. 그런데 반년 정도 지나면 그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재발했다고 하네" 라는 주변의 속삭임 그리고 머지않아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그렇게 건강했는데 어째서?.... 이 수수께끼가 반항암제 유전자의 존재로 명쾌하게 풀렸다.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인 약 10% 전후의 암환자들에게 효과가 있다고 해도 이시적일뿐 결국 반항암제 유전자로 인하여 항암제는 무력해 진다.
항암제로 공격을 당한 암세포는 더욱 힘을 기르고 흉포함을 증가시켜 반격한다. 하지만 암환자는 항암제로 인하여 중요한 면역력이 산산이 파괴된다.이미 승패는 분명하다. 야야마 의사는[암전문의] "항암제를 투여 하지 않은 경우에는 고칠 방법이 있지만, 항암제 투여로 면역력이 떨어져 있으면 면역요법도 거의 효과가 없다"고 탄식한다
*항암제는 증암제이다*미국의회증언
미국 국립암 연구소 테비타 소장의 " 항암제는 반 항암제 유전자로 인하여 암치료에 효과가 없다" 라는 중언으로 인하여 일본 암학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당황한 암학계는 "이 사실을 환자에게는 절대로 알리지 않는다" 라는 함구령을 내렸다. 이 때문에 반항암제 유전자의 존재는 일본의학계에서 어둠속에 봉인되어 버린 것이다.
충격은 이어졌다. 미국국립암연구소는 다시 " 항암제에는 강한 발암성이 있어서 다른 장기에 새로운 암을 발생시킨다" 고 발표 하였다 환자 가족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항암제가 강력한 발암물질이였던 다니..!!그것도 세계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미국 국립암연구소의 보고서에 " 항암제는 발암제이며, 증암제이다" 라고 공식적인 선언을 한 것이다.
일본의 암학계는 다시 떠들썩 해졌다. 그리고 항암제가 " 증암제" 라는 사실은 절대 비밀이라며 관계자들의 입을 떠 막았다. 그리고 그들의 공범자는 언론이다. 이런 엄청난 뉴스에 대하여 모든 언론은 완전히 침묵함으로 일관했다. 대형 제약회사로 부터 거액의 광고비를 받고 있는 메스컴에게 있어서 대기업은 "주인님"이다. 주인님의 뜻을 거스르다니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항암제는 철저히 세포를 파괴한다. 모근세포 정자 생식세포 등등 가장 분열이 활발한 것이 혈구 세포인데 항암제는 적혈구 백혈구를 만드는 혈구세포를 집중공격한다. 이로인하여 불임이나 선천성기형은 물론이며,악성빈혈과 혈전이 다발로 발생하여 다양한 장기장애를 일으킨다. 온갓 세균을 잡아먹는 과립구세포는 완전히 전멸하여 체내에 수많은 곰팡이와 세균들이 몰려 들어도 방어 할 수가 없게 된다. 항암제투여로 암환자들이 금방 폐렴이나 구내염 신장염 등의 합병증에 걸려 암환자들이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암환자들의 80% 는 암자체로 죽는 것이 아니라 항암치료의 부작용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생명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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