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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치료법상식

암은 없다 병은 없다 [1] 펌글

by 골동품나라 밴드 리더 2014. 1. 20.

 

 

  암은 없다 병은 없다 [1]

 

"병은 없다, ‘암은 없다’는 책이 있다. 또 암을 친구로 생각하자는 책도 있다. 또 많은 암 전문가들은 암을 잊고 암이 없는 것처럼 지내야한다고 말한다.

 

옳은 말이다. 나 역시 과거 강연 때나 회진 때 의기소침해 있는 암 환우들에게 그렇게 충고를 했다. 그런데 ‘누군 그러고 싶지 않느냐?’, ‘암에 걸려보지 않고 너무 쉽게 말한다.’ 며 오히려 핀잔 섞인 소리를 들을 때가 종종 있었다.

 

씁쓸하다. 그리고 안타깝다.‘그러면 치유에서 멀어지는데!’그 당시 나는 그들이 왜 긍정적이지 못하고 부정적이며 늘 불안해하는 지 속마음을 깊이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말기 담낭암인 내 어머님의 치유과정을 돕고 지켜보면서 암 환우들의 깊은 내면을 조금씩 더 이해하게 되었다.

 

암이란 죽을병이며 무서운 존재라고 세뇌된 사람이 암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간혹 암과 고통스런 항암치료도 크게 두려워하지 않는 용감한 환우들도 있지만 그것은 타고난 배짱이다.

 

무서운 암에 걸렸다는 전제하에서는 없던 강단이 마구 생겨 두려움을 떨쳐내기 쉽지 않다. 300회 이상의 항암제를 가볍게 받아왔던 대장암 환우도 항암 치료가 거듭될수록 기력이 떨어지는 것을 느끼고 ‘어, 이건 아닌데’하며 두려워지기 시작해서 병원을 뛰쳐나왔다.

 

이렇듯 처음 마음과 달리 통증이 조금만 더 심해져도 기력이 떨어져도 ‘어, 암이 더 커졌나?’하고 덜컥 가슴이 내려앉는 게 보통 사람이다. 세상 모두가 암이 있는데 암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려면 몸과 마음은 더 경직되고 더 피곤하다.

 

암이 정말 없다는 확신 들려면 깊은 깨달음과 경험 그리고 시간이 필요하다.

암의 존재 자체에 대해 무념 무상할 수 있는 단계나 병에 대한 깊은 깨달음과

 경험 그리고 끊임없는 명상과 공부 등 수행이 필요하다.

 

아직 그 단계가 아니라면 암의 존재를 솔직히 받아들이고 어떻게 하면 잠시라도 암을 잊고 살 수 있는 지 자신이 받아들일 수 있는 방편 법을 찾는 게 옳다. 괜히 없는 척, 용감한 척 웃으며 가식적으로 흉내를 내면서 속으로 두려움에 휩싸여 있다면 오히려 안 좋다. 울고 싶으면 웃고 소리치고 싶으면 산에 가서 호소하라! 두렵다고 솔직히 호소하고 우는 게 훨씬 홀가분하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그 자리에 머물러 있으면 암은 곧 앞지른다. 암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조금씩이나마 진보해야 한다. 그 중 하나가 암을 잊고 사는 인생을 찾는 일이다.

 

기존의 삶의 패턴과 습관 그리고 가치관을 벗어던지고 언젠가 꼭 하고 싶었으나 형편상 미루어왔던 일들이나 가장 자신 있고 또 가장 가치 있는 일에 몰두하다보면 암을 쉽게 잊을 수 있다.

 

 죽기 전에 자연을 사진에 담겠다며 산과 들을 누비다가 치유에 이른 사진기자, 다들 말리는 심한 박치라 그동안 포기했지만 암 진단 이후 죽기 전에 해보겠다며 성악을 배우다 암을 극복한 대장암 환자,

 

웃음치료로 다른 환우에게 봉사하며 생을 마감하겠다던 유방암 수술 뒤 재발한 담낭암 여성 환우, 교회에 잘 다니길 바랐던 아내의 소원을 들어주려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다른 환자 상담을 통해 봉사하러 전국 어디나 뛰어다니는 췌장암 환우 등 한 결같이 주어진 하루를 감사한 마음으로 즐기고 봉사하며 삶의 의미를 찾아 치유에 이른 경우들이다. 

 

이런 삶들은 대체로 치유에 도움이 되는 일들이다. 아무리 좋아하고 원했던 일이라도 치유에 별 도움이 안 되는 일이라면 오히려 큰 코 다친다. 예를 들어 스티브 잡스처럼 자신이 이루고자했던 최고의 업적을 위해 회사와 연구실을 뛰어다닌 대가는 애석하지만 치유가 아니다. 자신을 이기고 암 환자에게 희망을 주고자 자전거 전국 일주를 했던 암 환자 역시 완주의 팡파르를 울린 뒤 투병 중 세상을 떴다. 정상인도 어려운 그 일은 치유와 정 반대에 놓여있다. 욕망과 정신력하나로 버티기에는 암 환자 육신은 크게 버겁다.

 

 

또 다른 방법으로 나는 주로 먹고 입고 쓰는 일, 즉 일상생활 중에 누구나 할 수 있고 또 치유를 위해 반드시 해야 할 그 시간동안에 찾아보길 권한다. 자신과 가족이 먹을 채소 텃밭 일에 몰두하다보면 병을 잊는 것은 물론 보람과 적당한 땀과 태양의 축복을 누릴 수 있다.

 

건강 요리에 관심을 갖고 재료를 구하러 시장에 다니고 요리에 푹 빠져 사는 동안 가족에 대한 사랑과 건강한 음식으로 내 몸이 채워진다. 숲을 그냥 오르락내리락 하지말고 꽃 한 송이, 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마다 날마다 어떻게 변해 가는지 주의 깊게 관찰하고 무엇이 약초이고 독초인지 살피다보면 자연에 대한 경이로움과 함께 피톤치드와 음이온이 내 몸을 감싸고 한 낮이

 훌쩍 지나간다.

 

이런 일들은 소비적 도시 생활과 달리 자연과 이웃을 살리는 생산적 일이기에 더욱 큰 순한 기운을 얻는다. 이렇게 새로운 삶의 가치를 감사히 받아들이고 통증이 오나 마나 구애받지 않고 살아 숨 쉬는 현재에 만족하며 하루하루 지내다보면 어느덧 치유는 곁에 머문다.

 

대부분 치유는 이 단계에서 완성된다. 어떻게 해서 암이 사라졌는지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제 각각 경험은 다르다. 그러나 공통점 하나는 암과 암은 죽음이라는 등식을 내려놓고 하루를 감사하게 즐기면서 자신을 사랑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문득 몸속에 자리했던 암에 대해 궁금해지고 정기적인 검사를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빠져 검사를 받으러 향하는 발걸음은 기대 반 걱정 반 상태에 놓인다.

 

 

검사 결과가 좋아졌다면 다행이지만 적지 않은 환자들이 좋아진 몸의 컨디션과 달리 암 수치상 크게 진전이 없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암에 대해 올바른 이해가 부족하여 새로 선택한 삶은 아직도 많이 불완전하고 늘 한편에 암의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검사의 유혹을 거부하지 못한다.

 

 

바람과 달리 반대의 결과 앞에 대부분은 허탈해하고 ‘암 치유가 쉽지 않구나!’ 하는 불안감과 두려움이 엄습해오면서 일부는 다시 옛 생활로 병원으로 돌아가곤 한다. 내 어머님과 함께 죽염단식 수련을 했던 캐나다 교포의 남편은 병원에서 더 이상 해줄 게 없다던 말기 췌장암 진단을 받았지만 부부가 합심해서 올바른 치유에 길로 들어서 3년 넘게 생존하여 미라클 맨이라는 별명 까지 얻었다고 한다.

 

 

그런데 진단을 했던 의사들조차 신기해서 정말 암이었는지 다시 조직 검사해보자 말에 동의하고 병원 입원 1달 만에 사망했다. 명확히 사망 이유는 따질 수 없지만 검사 준비와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두려움이 엄습했을 것이고 병원에서 주는 밥과 환경을 암이 좋아했을 것이며 또 침습적 조직 검사로

잠자고 있던 암을 건드렸을 것이다.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리듯이. 따라서 무조건 그냥 암을 아예 잊고 병원조차 얼씬 거리지 않는 게 상책이다.

 

 

그런데 이 세상은 결코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는다. 전문가라고 이름 붙여놓은 의사, 한의사, 자연요법가는 물론 정부, 진보의료활동가들은 신문방송의 언론매체를 통해서, 거기다 이런 세상 풍토에 세뇌된 사랑하는 가족 까지 합심해서 ‘검사받아라’, ‘수술 할 수 있을 때 수술하라’ ‘이런 치료가 좋다더라’ ‘이것 먹고 나았더라’는 말을 아마도 죽을 때까지 듣고 살 것이다.

 

 

그래서 암을 잊고 사는 것이 마냥 쉽지만 않다. 이런 유혹의 손길을 과감히 뿌리칠 수 있는힘을 갖고 있는 이가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결국 모두 피리 소리를 따라 안타깝게도 모두사라진다. 그렇기에 자연과 병에 대한 지혜를 넓혀가고 그리고 우리 내면의 힘에 대해 집중하고 명상하는 일이 필요하다.

 

병도 사람도 자연의 일부이다. 자연 속에는 절대 악은 없다. 무등산 자락에서 만난 20년도 더 된 말기 췌장암 환자였던 한 스님은 ‘암이 내게 왔으면 가는 길도 분명히 있게 마련’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환우들에게 던졌다. 그 말을 얼마나 이해하느냐에 따라 치유는 결정된다. 암? 없다? 병? 물론 없다!

 

 

농부의사 강정 임동규(생명채식하고 곶감 농사 짓는 가정의학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