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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희 인생칼럼

김동호[높은뜻숭의교회] 설교비판[그리스도의 권세]

by 골동품나라 밴드 리더 2007. 1. 24.

한 때 청부론이라는 성경에도 없는 단어를 만들어 내며 화제를 집중 시켰던 김동호 목사가 요즘은 보이지 않는 교회라는 것을 가지고 교인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듯하다. 과연 보이지 않는 교회가 가능할 까?. 김동호 목사는 보이지 않는 교회를 세우는 것이 자신이 열성을 다해 기획하고 세웠던 동안교회 보다도 더욱 중요한 일이라고 여긴다.[교회당을 교회라고 하는 것이 잘모된 것임을 지적하는 자들이 있다보니 이제는 예배당이라고 말한다.]  

 

과연 보이지 않는 교회를 인간이 세울 수가 있을까?..보이지 않는데 그것이 세워 졌는지 무엇으로 알 수있을까?.그 보이지도 않는 일을 가지고 교회를 세웠다고 말하기도 하고, 동안교회를 세운 것보다 더욱 중요한 일이라고 말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가?.

 

아래 김동호 목사의 설교를 살펴보자 .베드로와 요한이 앉은뱅이를 일으킨 사건처럼 숭의교회가 추진하고 있는 희년프로젝트가 그와 동일한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그것이 아니라면 보이지 않는 교회라고 주장하거나 하느님이 응답해 주실것이라고 주장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인간의 욕망을 채워 주시는 분이 주님이 아니시니까 말이다.

 

오직 하느님만이 하시는 일을 가지고

 

 >>"혹시 나는 보이지 않은 성전 건축이라고 하는 귀한 사역을 ‘내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는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200억 원의 은과 금으로 일어나 걸으라’는 생각으로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그와 같은 생각을 하다가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오늘 본문의 말씀이 희년 정신으로 보이지 않는 성전을 건축하려고 하는 우리 교회에 주시는 너무 시기적절한 하나님의 계시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

 

이렇게 자신도 노력하면 할 수 있다고 하느님의 말씀을 변질시켜 가면서 자신의 꿈을 이루려고 하는 것이다. 이런 잘못된 행위를 목전에서 듣고 보는 교인들이 왜 할말을 못하고 침묵하는 것일까?.바로 김동호 목사의 가르침을 실천함으로써 자신들의 행위를 청부한 삶으로 인식시켜 주기도 하고, 하느님의 뜻을 실천한 거룩한 백성으로 천국에 갈만한 자격을 얻은 자로 인식시켜  주기 때문이다.

 

김동호 목사가 동안교회를 건축하고자 맘을  먹었을  때 그 꿈을 이루기 위하여 전 교인들에게 기도문을 작성하고 반강제적으로 기도를 하라고 확인표까지 인쇄해서 나누어 주었고, 그 덕분에 천번은 기본이고 만번까지 기도를 하였다는 교인들까지 배출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반강제적이라는 것은 목사의 말에 따라 행할 수밖에 없는 교회여건을 말하는 것이다.강제적이 아니되려면, 목사가 그렇게 하라고 당부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기도를 하라고 하는 말 자체에 많은 헌금을 하라고 강요하는 것보다 더욱 강요로 다가오는 것이 똑똑한 인간들의 심리이다.] ]

 

과연 이런 행위가 그리스도인들이 할 행동일까?.자신과 자손의 행복과 번영을 위해 천배 만배 부처님께 절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열심히 천번만번 기도한 만큼   하느님은 이쁘게 봐주실 수밖에 없을 뿐더러 기도를 응답하지 않고는 못배기는 여건을 만들어 놓고 나서 하느님이 기도를 들어 주셨다고 주장하는  거짓 가르침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어차피 교회를 세운 돈이라는 것은 사실 따지고 보면 인간의 더러운 탐욕으로 가득찬 마음에서 얻어진 것이 아닌가? 따라서 그 더러운 돈을 가지고 교회당을 세운 것을 두고 자랑스러워 하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다. 한마디로 말해 김동호 목사는 복음은 전혀 모르는 바리새인의 의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기도를 책자를 만들어 하니 좋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기도가 몇 % 응답 받았는가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감히 동안교회 건축 하나님께 100% 기도응답을 받은 건축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

 

기도를 계획해서 하고 계획표대로 실천하였더니 하느님이 100프로 들어 주시는 것이 눈에 확연히 들어났으며, 그래서 기분이 더없이 좋다 라고 주장하는 엉터리 설교에 숭의교회교인들은 아멘을 외치고 있으니, 과연 이같은 설교가 복음이라고 할 수 있는가?.  사람이 지은 교회당을 만들어 놓고 나서 스스로  행복에 겨워 하면서 거기다가 하느님이 기도를 들어 주신것이라고 가르치니, 이런 미신적인 신앙이 복음이란 말인가?.

 

이런 황당한 주장은 한국교회안에 가득하다. 그 어떤 교회[교회당]라도 하느님께 기도하지 않고 세운 것이 없다고 교인들과 목사들은 주장한다. 과연 그 말대로 라면  우리나라에서는 거짓교회가 없으며 모든 교회는 하느님이 세운 것이다 라고 주장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허나 성경은 그와 반대로 말세에는 온 세상에 거짓된 교회가 가득찬 다고 이야기 한다. 모든 교회가 하느님의 뜻과 기도로 이루어진 참된 교회라고 주장하지만, 참된 교회는 너무도 적다고 가르치는 것이다. 좁은길은 찾는이가 적다고 하는데 서로 거대한 교회당짓기와 교인 뺏어오기 같은 천박한 일들로 가득찼다. 

 

자신이 수고하고 노력한 것을 스스로 의롭게 여기는 행위, 교인들의 기도와 물질의 희생덕분이라고 인사치례를 하지만, 결국은 인간의 의만 남고 주님의 은혜는 찾아 볼길 없게 되는 것이 교회건축임을 모르는가? 교회건물늘 세워놓고 그 가치를 대단하게 여기고 그 과정을 대단하게 생각하는 것이 그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하느님이 세워놓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창조물을 다 파괴하고 그 자리에 인간의 욕망의 덩어리인 맘몬으로 건물을 세워놓고 스스로 자화자찬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인간의 욕망은 참으로 주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깨우칠 수가 없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무엇을 하던지 집요하게 기도하면서 모든 문제를 풀어 나가자고 하는 말로  설교를 마치는 모습을 보면서 면죄부를 팔던 중세시대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마지막까지 기도의 본질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사람이 김동호 목사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언제까지 하느님을 내 계획과 뜻대로 부려먹는 종으로 만들 생각일까?. 기도란 천번만번 한다고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누가 기도로 하느님의 뜻을 변개 시킬 수 있을까?. 기도란 자신의 죄악을 깨우쳐 주시는 은혜앞에 어쩔 수없이 자복하며 터져 나오는 것이지, 보이는 교회를 건축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거나 보이지 않는 교회라고 말 하면서 보이는 교회를 만들어 보겠다고 간절히 천번만번 기도하고 그 기도를 또한 대단하게 여기며, 하는 기도는  참된 기도가 아니다.

 

기복주의 신앙에 분노하고 식상해서 개혁적인 교회로 모여들었다는 사람들에게, 현대판 바리새인의 유전을 가르쳐 주는 곳이 김동호 목사의 높은뜻 숭의교회라고 나는 생각한다. 바르게 보이나 바르지 않은것,  그것을 구별할 수있는 일이란 오직 주님의 은혜외에 달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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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김동호 목사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그 권세.
행 3:1-10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우리가 잘 아는 말씀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 가다가 저들에게 구걸하는 앉은뱅이 걸인에게 ‘내게 은과 금은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말하였더니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던 그 걸인이 발과 발목에 힘을 얻고 일어나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였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저는 최근 다시 그 말씀을 읽으면서 지금 우리 교회가 하고 있는 희년프로잭트가 바로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을 일어나 걷게 하는 것과 같은 프로잭트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평생 사회주의 나라에서 그것도 세상에서 가장 실패한 사회주의 국가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자본주의 그것도 아직 제대로 자리 잡히지 않은 그래서 여러모로 불완전하고 불안전한 자본주의 국가에 와서 뿌리를 내리고 생존한다는 것은 마치 앉은뱅이가 일어나 걷는 것과 같은 기적일 것이라는 생각을 성경을 읽으면서 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은 저들에게 구제하는 것이 아니라 발과 발목에 힘을 얻어 일어나 걷게 하는 것 한 걸음 더 나아가 뛰게 하는 것 그리고 정말 한걸음 더 나아가 저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였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그 앉은뱅이에게 ‘내게 은과 금은 없거니와’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앉은뱅이는 실망하였을는지 모릅니다. 은과 금도 없는 사람이 왜 자기에게 ‘우리를 보라’라고 하였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에게는 은과 금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없어도 아무 상관없는 것이었습니다. 어차피 은과 금으로 저들을 일으켜 걷게 할 수는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은과 금으로 할 수 있는 것은 구제이지 기적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깊이 읽고 묵상하면서 혹시 나는 이 귀하고 아름다운 이 사역을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려고 하지 않고 은과 금으로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성경 여백에 이렇게 적어 놓았습니다. “혹시 나는 보이지 않은 성전 건축이라고 하는 귀한 사역을 ‘내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는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200억 원의 은과 금으로 일어나 걸으라’는 생각으로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그와 같은 생각을 하다가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오늘 본문의 말씀이 희년 정신으로 보이지 않는 성전을 건축하려고 하는 우리 교회에 주시는 너무 시기적절한 하나님의 계시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전에 있던 교회에서 예배당을 건축할 때 건축을 위한 기도문을 책자로 만들어 교인들에게 배포하였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약 30분 가까이 걸리는 적지 않은 분량의 기도문이었습니다. 교인들에게 그 기도 책자를 돌려 드리면서 100번씩 기도하자고 말씀드리고, 확인표를 책자 뒤에 인쇄해 드렸습니다. 그리고 100번을 기도한 책자를 교회로 내 주시면 그 기도책자를 예배당 머릿돌 밑에 넣겠다고 하였고 그대로 하였습니다.

많은 교인들이 참여하여 교인들이 100번 기도한 책자를 정말 예배당 머릿돌을 놓을 때 그 책자들을 비닐에 싸서 묻었습니다. 어떤 남자 집사님 한 분은 만 번을 기도하였습니다. 천 번의 기도는 한번 기도에 10분만 잡아도 십만 분을 기도하셨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것은 쉬지 않고 70일 동안을 기도만 하여야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동안교회 건축은 돈으로 지은 건축이 아니라 성도들의 기도로 지은 건축이었습니다. 기도를 책자를 만들어 하니 좋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기도가 몇 % 응답 받았는가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감히 동안교회 건축 하나님께 100% 기도응답을 받은 건축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건축 중에 IMF를 만났지만 약속한 날 공사를 시작하여 하루도 어김없이 꼭 약속한 그 날에 공사를 마쳤습니다. 공사비도 처음 계약한데서 거의 추가 된 것이 없었습니다. 현장 소장이 손가락을 다쳐서 잠시 병원 치료를 받은 것을 제외하면 한 건의 인사사고도 없었습니다. 인부 한 사람이 높은 곳에서 추락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떨어진 높이를 생각하면 다치는 정도가 아니라 즉사할 수도 있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한 곳도 다친 곳이 없었습니다. 손가락 하나 부러지지 않았습니다.

동안교회 건축은 동네 한 복판에서 한 건축이었습니다. 기초를 위하여 땅을 10m 이상을 파야만 했습니다. 땅을 파는 중 돌이 나왔습니다. 할 수 없이 포크레인으로 돌을 깰 수 밖에 없었는데 그 소리가 보통 큰 공해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두 달 가까이 돌을 깼던 것 같습니다. 어느 날 교회 사무실로 술에 취한 택시 기사 한 분이 찾아 오셨습니다. 밤에 운전을 한 날은 낮에 집에서 잠을 자고 쉬어야 하는데 그 돌 깨는 소리에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어서 여관을 얻어서 잠을 자고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술이 취한 김에 행패를 부리고 공사를 하지 못하게 방해하셔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여관비라도 드려서 문제를 해결하여야 하겠다고 생각하였는데 그 분은 그냥 ‘그런 줄이나 아시오’하고 돌아가셨습니다.

15톤 덤프 트럭으로 돌과 흙을 운반할 때 그 트럭이 지나가는 골목의 집들은 정말 집이 흔들거릴 정도였습니다. 그래도 2년을 공사하는 동안 하루도 공사가 중단된 일이 없었습니다. 공사는 이랜드에서 맡아서 해 주었는데 소장을 비롯하여 직원들은 자기 집을 짓는 것보다 더 열심히 일을 해 주었습니다. 나중에 소장과 친해져서 ‘내가 목사냐 당신이 목사냐?’라고 농담을 할만큼 되었습니다. 저는 이 모든 것이 그 건축을 돈으로 하지 아니하고 기도로 했기 때문이라고 지금도 확신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읽으면 그때 그 생각이 다시 나게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번 우리교회 보이지 않은 성전 건축도 기도책자를 만들어 꼭 그렇게 기도하여 기도로 지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그 기도 책자를 제가 혼자서 만들었지만 이번에는 그것을 우리 교역자들에게 맡겼습니다. 빠르면 다음 주일에라도 만들어 여러분들에게 나누어 드릴 것입니다. 우리 교인들이 100번씩 기도하여 높은 뜻 숭의교회의 보이지 않는 성전 건축은 200억 원이라고 하는 은과 금으로 한 것이 아니라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한 것이라고 간증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정말 앉은뱅이가 일어나 걷는 것 만큼이나 불가능해 보이는 탈북자 사역과 인재양성 사역이 우리 교회에 나타난 이 시대의 기사와 표적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와 같은 생각을 하다가 이와 같은 사역은 보이지 않는 성전 건축 뿐만 아니라 평상시의 교회 목회에도 그대로 적용되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사도행전을 읽다가 전에 놓쳤던 말씀을 새롭게 읽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초대교회에 사도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났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도 사도로 인하여 나타난 대표적인 기사와 표적 중 하나였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아시다시피 기사와 표적에 별로 큰 관심이 없는 목회자입니다. 저의 관심은 높은 뜻에 있고 그 뜻을 이 땅에 이루는 사역에 있지 기사와 표적에 있지 않습니다. 저는 그것을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는 수준의 사역보다 낮은 수준의 사역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사와 표적을 강조하는 사역을 경시하는 영적 교만함까지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보니 초대교회에는 제가 솔직히 말씀드려서 별로 수준 높게 보지 않는 기사와 표적이 절대로 수준 낮아 보이지 않는 사도들로 인하여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많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도들로 인하여만 나타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와 같은 기사와 표적은 사실 예수님의 사역 중에 상당부분을 차지한다고 하리만큼 많은 사역이었습니다. 문둥병자가 깨끗해지고,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귀신들린 자가 온전해 지고, 소경이 눈을 뜨고 심지어는 죽은 나사로가 살아나기도 하였습니다.

사도들과 예수님의 그와 같은 사역의 중심은 측은지심(惻隱至心) 즉 불쌍히 여김이었습니다. 저는 이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저에게 교인들에 대한 그와 같은 마음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참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여러 교인들에게 죄스러웠습니다. 제게 선한목자의 마음이 많이 부족하였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가난하지 않기 때문에 가난하여 물질 때문에 고생하는 교인들의 마음을 몰랐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사업과 물질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을 수준 낮은 것으로 폄하하였습니다. 제게는 많은 병이 있습니다. 당뇨병, 천식, 갑상선등등. 매일 정말 한 웅큼이라고 할 만큼 약을 먹습니다. 그렇지만 아직 한번도 그 병 때문에 병원에 입원하여 심각한 치료를 받아 본 일이 없어서 정말 심각하게 병으로 고생하는 성도들의 심정도 잘 모릅니다. 그리하여 예수 믿으면 어떤 병에 걸렸든지 다 나을 수 있다는 말을 못 믿거나 안 믿는 것은 아니지만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제가 볼 때 예수님도 마찬가지셨고, 사도들도 마찬가지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사도들이 저와 달랐던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과 사도들은 당신들 때문이 아니라 그와 같은 기사와 표적이 아니고는 세상의 희망이 없는 사람들의 아픔과 절망 때문에 많은 기사와 표적을 나타내셨다는 것이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성전을 건축하는 것도 중요하고 희년의 정신을 실천하는 것도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타나는 기사와 표적 외에는 세상에 희망이 없는 교인들을 중히 여기고 저들의 아픔과 절망에 더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저들을 위하여 눈물 뿌려 기도하고 하나님께 매달려 앉은뱅이가 일어서고, 굶주린 사람들이 배부름을 얻고, 모든 삶의 문제들이 하나, 하나 구체적으로 해결되는 그런 교회를 세워 나가는 것도 또 하나의 중요한 보이지 않는 성전 건축이라는 것을 오늘 본문의 말씀을 읽다가 깨달았습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저희 교회는 초대교회처럼 가난하지 않습니다. 초대교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좋은 것들은 그것도 아주 많이 가지고 있는 교회입니다. 초대교회보다 많은 은과 금, 아주 부요하고 유능한 교인들, 그리고 아주 합리적이고 좋은 시스템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만나면 은근히 그것을 자랑합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것들이 우리 교회의 힘이 되면 그냥 가난한 걸인에게 은과 금으로 몇 푼 구제하는 일 정도는 할 수 있겠지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의 권세로만 할 수 있는 일은 할 수 없습니다. 오천 명을 먹이고 (인재양성 프로잭트),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우는 (탈북자 자활 사역)일은 할 수 없습니다.

돈은 힘없습니다. 사람도 힘 없습니다. 훌륭한 시스템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인 힘은 없습니다. 돈과 사람과 시스템은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와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에게 은과 금은 없었지만 저들에게는 그와 같은 것들이 없어도 아무 문제없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가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에는 은과 금이 있습니다. 있는 것이 아니라 많습니다. 사람도 많습니다. 초대교회는 물론이고 요즘 그 어떤 교회보다도 좋은 자원이 많습니다. 바울의 로마시민권과 같이 주를 위하여 쓰면 좋은 것이기 때문에 구태여 부인하거나 버릴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자랑과 힘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경건의 능력, 영적 권세가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오늘부터 높으신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는 일을 위해서도 열심히 기도하고 노력하겠지만, 그 동안 별로 크게 관심이 없었던 기사와 표적인 우리 교회 안에서 여러분들에게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일을 위해서도 열심히 기도하고 노력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믿고 신뢰하는 은과 금에는 권세가 없습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에게 권세가 있습니다. 은과 금은 걸인과 같은 우리들을 하루, 하루 연명 시킬 수는 있지만 일어나 걷게 하여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은 없습니다. 그 능력과 권세가 우리 하나님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모든 문제를 기도로 해결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 문제가 보이지 않는 성전을 건축하는 것과 같이 큰 문제이든 아니면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일이든 아니면 육체의 질병을 치유하는 일이든 가리지 아니하고 다 기도함으로, 집요하게 기도함으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해결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기사와 표적이 유난히 많았던 초대교회와 같이 기사와 표적이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역사들이 많이 나타나는 우리 높은 뜻 숭의교회와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