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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희 인생칼럼

영화 남극일기를 보고..

by 골동품나라 밴드 리더 2007. 2. 24.

 

송강호 주연의 영화 남극일기를 보면,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지독한 것인지가 여실히 나타난다. 남극점을 정복하려는 욕망 때문에 수많은 탐험가들이 죽어갔다고 역사는 증언한다. 영화의 주인공 송강호는 그 남극에서 벌어진 인간의 비정한 죽음의 역사를 누구보다 잘 아는 탐험전문가이지만, 욕망 때문에 죽어간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고, 그가 자식이라고 여기던 사람들을 모두 죽음의 낭떨어지로 떨어뜨린다.

 

그가 세상에서 가장 아끼던 자식을 정복욕 때문에 산에서 죽게 만든 것처럼, 수많은 동료 대원들을 죽음의 골짜기속에 빠뜨리는 것이다.송강호 그도 아주 평범한 사람이였다. 누구보다 이웃을 사랑하고 가족을 사랑하고 주변사람들을 사랑하는 범부였다. 그런 그가 수많은 사람들을 죽에 만든 것은 오직 하나 정복욕 때문이다. 남이 하지 못한 것을 내가 이루어 보려는 욕망, 남보다 잘난 사람으로 행세해 보려는 욕망이 그가 가장 아끼던 사람들조차 값어치 없는 소모품처럼 여기게 된 것이다.   

 

그들이 얻을 것은 오직 하나 자신이 정복한 것을 남들이 인정해 준다는 명예욕 그 하나밖에 달리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 명예를 획득하기 위해 그들은 죽음을 불사하고,남극점을 찾아 길을 떠나는 것이다.무지개를 잡으려는 소년처럼, 대통령이 되는 것도 남극점에 발을 내딛는 것도 우주를 탐험하는 것도 모두 한줌의 흙밖에 남겨질 것이 없는 허상임을 알면서도 모르면서도 마치 마약에 중독된 사람처럼 본능적으로 찾아 떠나는 것이다.

 

이 세상에 아무도 존재하지 않고 홀로 존재 한다면, 과연 남극점을 찾아 떠날까?아무도 인정해 줄존재가 없다면 인간은 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있는 자유인이 될 수있다.  혹자는 인간의 그같은 욕망이 세상을 이토록 발전시키고 번영시켰다고 하면서 정당성을 부여 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이같은 관점은 세상 사람들이 보는 관점이지 그리스도인들에게 올바른 관점은 아니다.

 

인간의 욕망 때문에 이 세상은 바벨탑으로 변하고 머지않아 하느님이 남드신 이 세상은 바벨탑이 무너진 것처럼, 모두 사상 누각처럼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자동차 배 비행기 가전제품 등등 칭찬해 마지 않던 수많은 발명품들 덕분에 인간이 모두 멸망하게 되는 날이 다가오게 되는 것이다.인간들에게 이 세상을 정복하고 인간의 노력으로 하느님의 뜻을 분별하라고  이땅에 보낸 것이 아니다.

 

인간의 욕망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 주는 곳 중에 한곳이 우리나라  정치세계이다. 독재의 욕망에 눈이 먼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가총에 맞아 비명횡사하고, 그 아버지가 독재권력의 욕망 때문에 아끼던 부하에게 총에맞아 운명 하였건만, 그 권력이란 것이 권불십년 헛되고 부질없는 것임을 두 눈으로 목격한 자식이 한줌의 흙으로 변한 아버지처럼 처럼, 부질없는 욕망에 들러리가 되는 것은 바로 그같은 권력의 카타르시스를 조금이라도 맛본 기억 때문이요,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인간의 속되게 탈색시키는지 진정으로 깨우쳐 본 적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르며, 또한 그런 여자를 부추겨서 호가호위하며, 권력의 부산물이라도 맛보려고 달겨드는 부나비 같은 주변 사람들의 사탕발림같은 격려와 칭찬 때문일 것이다..

이런 썩어빠진 정치세계에  복음을 안다고 하는 자들이 이래저래 관여 하면서  복음을 훼방하는 사람들의 권력쟁탈전에 왈가왈부하는 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탐욕심을 불러일으키는 권력이라는 것에 누구나가 침을 흘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일 것이다..

욕망을 채우기 위해 물불을 안가리는 아귀전쟁같은 더러운 일들이 뒤범벅이된 곳이 우리나라 정치현실이다.마치 돼지우리안에서 먹이를 놓도 다투는 광경과 비견될 정도로 너무도 더럽고 역겨운 장소가 정치인들의 선거전이다..그런 곳에 빌붙어서 떨어진 똥이라도 주워 먹을 수 있을까 하여 두리번 거리는 주변인들을 보는 것은 더더욱 구역질 나는 일이 아닐 수 없도다.함석헌 선생의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라는 말이 가슴깊이 느껴지는 때이다
.

사람이 먹고 살만하면, 정치라는 더러운 물에 가서 놀기를 즐겨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왜 주님은 그리스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위해 기도하는 삶을 살라고 하셨는지,그 까닭을 되물어 보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 
내 욕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길 수 있는 존재가 인간이라면, 그런 더러운 존재가 바로 내 자신임을 깨닫고 그같은 욕망의 것들이 모두 배설물임을 깨우쳐 주는 분이 주님이시다.배설물만도 못한 것들에 대해 집착하는 것은 배설물로 여기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