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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완치사례

직장암3기 자연식으로 암을 고쳤다[직장암 완치사례]-항암치료거부 자연치유-

by 골동품나라 밴드 리더 2007. 4. 17.

직장암 3기 의사가 항암치료 거부하고 지리산으로 간 까닭은

수술만 받고 곧바로 지리산으로
항암치료 대신 산속 원시인 생활 3년

주변 사람들이 모두 미쳤다고 했다.“ 의사가 쓸데 없는 고집을 피운다”며 화를 내는 사람도,“ 한번만 더 생각해 보라”며 애원하는 사람도 있었다. 김선규(53·가정의학전문의·사진)씨의 생각은 그러나 확고했다.

 

아무리 손익계산을 해도 항암치료는 큰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설혹 항암치료로 몇 개월 더 산다고 해도 치료 과정의 고통과 삶의 질 저하는 어떻게 보상 받을 것인가? 항암제가 자연 수명을 단축시키는 경우도 있다지 않은가? 무절제한 생활습관 때문에 생긴 암이니 생활습관부터 바로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김씨가 직장암 3기 선고를 받은 것은 개인의원을 운영하던 1998년 5월. 진료를 마치고 새벽까지 술을 마시는 일이 예사였던 때였다. 술과 고기와 튀긴 음식을 좋아했고, 당시 몸무게는 100㎏이 넘었다. 설사가 멈추지 않아 동네 병원을 거쳐 모교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 갔더니“다른 장기로는 퍼지지 않았으니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으면 될 것 같다”고 했다. 김씨는 서둘러 1998년 6월 수술을 받았다.

암은 환경 때문이라고 김씨는 생각했다. 오염된 음식과 공기와 정신…. 공해가 없는 자연 속에서 몸과 마음의 흐트러짐을 바로잡고, 자연이 선사한 좋은 먹거리를 섭취하면 면역력이 되살아나 암 세포를 물리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항암치료도 거부하고 찾아간 곳이 지리산 가장 깊숙한 ‘논실마을’이다. 그곳 빈집을 수리해 텃밭을 일구며 ‘산 사람’으로 살기 시작했다.

그러나 불안감까지 버리고 온 것은 아니었다. “항암치료 받으면 나을 텐데 쓸데 없는 짓 하다 죽는 것은 아닐까”라는 회의감이 처음엔 시시때때로 밀려왔다. 그 때마다 김씨는 “아냐, 이것이 옳은 방법이야”라며 스스로를 세뇌시켰다.

긍정적인 생각은 세포의 면역력을 증강시킨다고 하지 않는가? 김씨는 죽음이 떠오를 때마다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그것이 버릇이 돼 요즘도 1주일에 한번씩 혼자 노래방에 가서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노래야 말로 긍정의 힘을 온 몸 세포 세포에 전달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게 김씨의 주장이다.

자연은 자기 품에 찾아 든 김씨에게 풍성함으로 보답했다. 텃밭 두 고랑만 파종해도 다 먹기 힘들만큼 소출이 풍성했고, 산에는 취나물 참나물 같은 무공해 먹거리들이 널려 있었다.

집 근처 고목나무에는 암 환자에게 좋다는 겨우살이가 기생하고 있었다. 김씨는 그것을 직접 채취해 달여 먹었다. 암 환자들이 비싼 값에 사서 먹는 영지버섯도 그 곳에선 공짜였다.

“온실에서 재배된 야채와 달리 자연의 풍상(風霜)을 뚫고 새 순을 낸 자연의 먹거리는 그 자체가 기이한 영양소로 가득 찬 항암식품이다. 그것을 먹으며 의식적으로 암 세포가 내 몸 속에서 사라지는 장면을 상상했다”고 말했다.

의사인 제가 덜컥, 암에 걸렸습니다
오염된 몸과 마음이 병을 부른 것…
항암치료 대신 지리산을 선택했습니다

 

자연은 병든 몸과 마음을 맑게 해주었습니다
산 생활 3년만에 암이 제 곁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무작정 산에 들어가는 것은 반대입니다
도시에서만 살던 사람에겐 오히려 스트레스가 돼
병이 더 악화 될 수도 있기에…


3년 만에 산에서 내려왔다. 몸과 마음이 깨끗해졌다고 스스로 느꼈기 때문이다. 병원 검사 결과도 예상대로였다. 주치의는 ‘암 재발 징후 없음’이라고 차트에 썼다.

암 수술을 한 지 9년, 산에서 내려온 지 6년이 다 돼 가지만 아직도 암 세포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5년이 지나면 완치된 것으로 간주하는 의학계 관행에 따르면 김씨는 암을 이긴 것이다.

자신의 투병 사례가 현대의학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는 것을 김씨는 경계했다. 수술은 할 수 있다면 ‘당연히’ 해야 하며, 항암치료도 충분한 설명을 듣고 하는 것이 이익인지 안 하는 것이 이익인지에 대한 손익계산을 따져 보아야지 무턱대고 거부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또 무작정 산에 들어가는 것도 반대했다. 그가 논실마을에 들어간 뒤 정확히 6개월 뒤 사촌동생이 꼭 같은 직장암 3기로 들어와 함께 생활했으나 동생은 암이 전이돼 3년 만에 사망했다.

김씨는 “나는 촌 사람이라 산 생활이 오히려 재미있었지만 도시에만 살던 사람은 산에 들어오면 심심해서 1주일도 견디지 못한다. 그런 사람은 산에 있는 것이 오히려 스트레스가 돼서 병이 더 나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암 환자마다 성격, 취향, 생활습관, 병의 경중이 다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어떤 방법이 옳다고 말할 수 없다. 의사로부터 충분한 설명을 듣고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투병 방법을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2001년부터 한국암환자협회 회장을 맡아 일하고 있다. 병원(연세가정의원)을 운영하는 틈틈이 전화와 인터넷으로 암 환자 상담을 진행한다.

직접 병원까지 찾아오는 암 환자에겐 몇 시간씩 얘기를 듣고 해 주기도 한다.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시간만 뺏기고 체력도 축나는 이 일을 하는 이유는 암 환자들의 말과 처지에 공감이 가기 때문이다.

김 씨는 “대부분의 암 환자들이 어떻게 투병해야 할 지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으며, 대체의학적 치료법을 시도하느라 쓸데 없이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의료계는 수술과 항암치료 등 필요한 치료만 끝낸 뒤 나머지는 ‘내 일이 아니다’고 한다. 불안해 하는 환자들에게 정부가 믿음과 해법을 제시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 글=임호준기자 hjlim@chosun.com
/ 사진=김보배 객원기자 (블로그)iperr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