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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교회신앙

능력없는 목사와 개같은 내인생.

by 골동품나라 밴드 리더 2007. 6. 14.

                                                                            정낙원목사

 

분주하게 이사를 마치고 우편물 때문에 전에 거하였던 장소에 가니 한창 리모델링을 한다고 북새통이다.

십여년을 있었던 곳이라 어떻게 리모델링을 하는지 궁금하여 잠시 둘러 보는데 공사장 인부가 말을 건넨다.

 

누구십니까? 

 

아! 예!  전에 이 곳 2층에 있던 교회 목사입니다.

 

우편물을 찾으러 왔다가 공사중이라 궁금하여서 잠시 둘러 보는 중입니다.

 

아! 그렇군요. 목사님이시라고요.

 

위 아래로 훑어 보는 눈빛이 예사롭지가 않고 어찌보면 취조를 하듯 하는 느낌이 든다.

그러면서 시비를 거는투로 천정에 물이 샌 흔적들을 가리키면서 하는 말이 이런 곳에서 어떻게 계셨습니까?

그 말에 천정을 쳐다 보면서 아! 그렇군요. 우리는 이층이라서 몰랐는데 좀 심하군요.

그래도 이곳에 십여년을 있었는데 예배 드리는데는 전혀 불편함 없이 잘 있었습니다 라고 하자.

이 양반 눈이 휘둥그래지면서 하는 말이 가관이다.

아니! 목사님 이런 곳에서 십년을 있었단 말입니까?

그러면서 대뜸 망설임도 없이 하는 말이 목사님 능력이 없습니다.

이런 곳에서 어떻게 십여년을 있었습니까?

한 2,3년 정도하면 교회를 지어서 나가야지요. 이런데 오래 있으면 쪽팔리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은근히 신앙적인 말을 한다.

느닷없이 하는 말에 순간적으로 당황이 된다.

이 양반 말하는 폼새가 어느정도 규모를 가진 교회의 안수 집사 정도 되는가 싶은 낌새가 느껴진다.

그래서 내가 그 말을 받아서 내 딴엔 복음에 대하여 가르치려고 하는 말이

아니! 목사가 교회를 지으면 능력이 있고 교회를 못짓고 이런 임대 교회에 있으면 능력이 없습니까?

교회 건물을 짓는 것이 목사의 능력이라면 건축 업자가 목사를 하면 되지요.

목사의 능력이란? 복음 전하는데 있는 것이고,

그리고 교회의 존재 의미도 예수님의 십자가 도를 증거하는데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는 그 말의 여진에 부아가 치밀어 교인이라는 것을 감지 하였지만 일부러

아저씨!  목사가 왜? 능력이 있어야 합니까?

그러자 이 아저씨! 하는 말,

아니 목사님! 목사님이 능력이 있어야 교인들이 모이고 교회가 부흥될 것이 아닙니까?

그래야 교인들도 목사를 믿고 열심을 내고 복도 받고 헌금해서 빨리 빨리 교회도 크게 짓고 할 것 아닙니까?

그 말에 또 다시 은근히 화가 난다.

아니! 왜? 목사를 믿습니까?  예수님을 믿어야지 왜? 목사를 믿어야 됩니까?

그리고 교회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증거하는 것이지 건물 크게 짓는게 아닙니다.

에이! 목사님은 몰라도 한 참 모르시네요.

요즘 교인들이 능력 있는 목사를 믿지, 능력 없는 목사를 믿고자 합니까?

목사가 능력이 있어야 교인들도 복을 받고 교회도 부흥이 되지요.

그런데 어이! 김씨! 저 쪽에서 이 아저씨를 부르는 소리가 난다.

인부가 이 아저씨를 부르는 바람에 둘의 대화는 여기서 단절 되고 말았다.  

공사장으로 향하는 그 아저씨 뒷통수를 보면서 왠지 가련하고 불쌍한 생각이 든다.

아마도 공사장으로 가는 그 아저씨도 나를 보고 가련하고 불쌍하다고 생각을 하겠지!

아! 이를 어쩌나!

 

차를 타고 돌아 오면서 혼자 중얼거려 본다.

그래 맞아! 난 참 능력 없는 목사야! 

예수님도 나 같은 목사 때문에 엄청 쪽 팔릴거야!

예수님 이 능력 없는 목사를 언제까지 쪽 팔리게 이 세상에 둘 것입니까?

갑자기 스데반 집사가 부러워진다.

 

복(伏)날의 추억] http://www.woorich.net/ 글쓴이 이가노

아니 부부동반 모임인데
애당초 그 계곡으로 산 개 한 마리 몰고 간 자체가 잘못되었다

노련을 자랑하던 동료가
괭이 뒷 몽치부분으로
꼬리 흔들며 아부하는 개 대가리 뒷통수를 몇 방 후려치니
개 거품 물며 눈이 뒤집히며 퍼졌다

철사로 개 목을 묶은 후 나무에 매달기 위해 질질 끌어가니
그 개, 다시 부활(?)하여 눈에 피를 흘리며 살려달라고 깨갱거린다
살아있다는 이유로 괭이몽치로 더 잔인하게 몇 방 후려치고......

피 범벅된 개 대가리.......
다시 단단히 철사 줄로 묶어 가마니 거적대기 씌워 나무에 매단 후
불을 붙인 것 까지는 좋았는데......

뜨거움에 화들짝 재 부활한 똥개, 심하게 버둥거리니
철사 줄이 느슨해져 떨어지면서
불붙은 채로 연기를 날리며 줄행랑이다......

살견임무를 맡은 동료가 낫을 들고
‘도옥꾸! 독꾸!’하면서 따라가니
도망가던 그 개, 멀리서 고개를 돌려 우리 일행을 쳐다본다.

피로 물든 붉은 눈망울로 연기 피우며 물끄러미 바라보다 주저 않는다......
개 썅~이다,

우리 일행은 그 똥개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접근한 후
탈진해 쓰러져있는 그 개에게 거적대기를 덮었다
그리고 낫으로......(이하 상상에 맡기겠....)

우여곡절 끝에 계곡에 걸어놓은 큰 가마솥 안으로
무사히(?) 시체를 몇 등분하여 집어넣어 불을 지펴놓고
둘러앉아 예배를 드렸다.
난 속으로 제발 찬송가만은 ‘참 아름다와라, 주님의 세계는....’을
안 불렀으면 하고 내심 바랐으나,
아뿔싸 사회자가 ‘새찬송가 100장 부르겠십니더~’라고 하지 않는가,
내 인생의 머피의 법칙이 또 전개되는구나 싶었다.

‘주 찬송 하는 듯...’ 부분을 부를 때 아까 그 개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돌쩌귀 위, 피로 물든 곳을 쳐다보니 더 이상 목이 메어 .......
기도시간에는 우리 단체가 지원하는 선교처를 위해 통성기도를 했다.
난 불에 타며 버둥거리는 개 모습이 떠올라 침묵기도로 일관했다.
설교자는 ‘하나님 만드신 자연의 아름다움을 찬양하자고 했고,
똥개는 때려가며 잡아야 독이 올라 맛이 좋으니
먹을 수 있는 건강과 환경 허락하신 것도 하나님의 은혜’라고 설교했다.

설교자의 축도로 예배를 마친 후 환담을 나누다가
개가 다 삶겼는지를 확인하자며 동료가 솥두껑을 열었는데
피로 물든 개 눈 주위가 검게 변한 개 대가리가 부웅 끓어 떠오르며
나를 응시하는 듯 했다.

아내는 개 대가리 부분을 끄집어내어 능숙한 솜씨로 칼질을 한 후
‘원래 똥개 삶은 고기는 왕소금에 찍어 먹어야 제 맛이 난다’며
한 지름 잘라 소금에 찍어 우적 우적 씹어댄다.
조금 덜 익은 것이 고기 맛이 구수하다나~
속으로 난 저게 인간인가 짐승인가 싶었다.
제발 나한테 만은 권하지 말았으면 했으나 또 머피의 법칙이다.

피, 피, 피눈망울이 생각나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배탈이 잘 난다는 핑계를 대며 피하려고 했으나
또 아내 특유의 버릇이 나온다.
그 버릇이란 ‘여러 사람들 앞에서 남편 핀잔주기’라는 아주 못된 버릇이다.
(이 버릇은 평소 빙모님이 빙자어른을 자주 핀잔주는 것을 목격한 바, 잘못된 가정교육의 결과라고 생각됨)
심약해서 큰일을 잘 못한다느니, 쪼잔하다느니, 대범하지 못하다느니 식으로 쪼아댄다.
안 그런 척, 태연한 척 하다가 홧김에 아내가 권하는 고기 한 점을 받아 씹었다.
순간 욱 하며 토할 것 같은 느낌을 꾸욱 참으며(아내의 재 핀잔이 �이 나서)
억지로 억지로 억지로오 .......

비위 약함 때문에 소금을 많이 찍어 먹어서인지 목이 말랐다.
수박을 좀 많이 먹었더니 배가 싸르르 좋지 않다.
평소 과민성 대장염이 있는 나로서 이 난국을 어떻게 극복해야할지 걱정이었는데
소낙비가 내려 우리 일행은 근처 원두막으로 몸을 피했다.

설사증세를 참으니 얼굴이 노랗게 변하며 식은땀이 흘렀다.
그 때 좀 가만있으면 내가 알아서 하겠는데, 아내의 솔직대범한 직언(정말 싫다!)이 나에게 꽂힌다.
‘또 설사할라카제, 저 숲속으로 뛰어가서 똥 누고 오소 고마........’
우리 일행은 웃음 바탕이 되고......
아우 개 썅~이다.

아까 불탄 개가 도망가듯 뛰어가서, 소낙비를 맞으며 숲 속의 빈터에 자리를 잡았다.
카타라시스의 쾌감과 더불어 흠뻑 젖은 몰골로 앉아 있으니
정신만은 또렷해온다.

아까 그 개.......
도망가다 독꾸 도옥꾸 부르니까 피로 물든 눈망울로 돌아보던 그 개가 환영으로 다가온다.
우유부단한 성격으로 세상과 또 타협하려고 기웃거리다가 늘 후회하는 내 모습....
바로 그 개가 나였다.
인간의 죄성, 내 힘으로는 내 자아로는 내 능력으로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개 같은 내 인생’이 아니던가?

실패뿐인 내 인생.......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자가 사랑만이 가장 고귀하다는 사실이 믿어짐이 기적일 수밖에 없으니.......
오늘도 ‘기적의 증인’으로 살아가야할 이유를 날마다 발견한다.



&&아닌 것들아 물러가거라

눈물 아닌 것 아픔 아닌 것 절망 아닌 것
모든 허섭스레기들아 모든 거짓들아
당장 물러들 가거라

온 강산이 한바탕 큰 울음 터뜨리게

-늦봄 작 ‘전태일’ 중에서-

 

 

** 십자가마을 에서 옮겨온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