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들이 지옥에 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예수님은 부자들이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고 말씀 하셨다. 이같은 주님의 말씀 앞에 너무도 놀라고 당황한 주님의 제자들은 " 그렇다면 누가 천국에 갈 수있나이까? " 라고 질문을 한다. 마치 예수님에게 따지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이같은 질문에 대해 예수님은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없으되 하느님의 뜻으로는 다 할 수있느니라" 라고 말씀 하신다.[마태복음19장25-26] 이 말씀의 가장 핵심적은 뜻은 무엇일까? 즉 인간은 누구라도 자신이 천국에 가는지 지옥에 떨어질지 알 수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리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바늘귀를 통과할 만큼이나 천국가기가 어려운 부자들은 누구인지 그 적용점은 어디서 부터 정해야 하는지 찾아보자 과연 천국을 가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운 부자들은 누구일까? 1억원을 가진 자들은 부자일까? 10억원을 가진 자들은 부자일까? 100억원을 가진 자들은 부자들일까?.부자들의 기준이란 언제나 상대성을 유지하고 있다.
쉽게 말해 한국에서 1억원을 가진 자들이 동남아의 빈국으로 가면 엄청난 부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결론은 나보다 가난한 사람들이 있다면 나는 부자이고 나보다 부자가 없다면 나는 가난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천국에 가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운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이라고 봐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부자는 왜 천국에 갈 수없을까?.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주님이 누구인지 전혀 알지 못했던 제자들과 다름없는 자들이며, 주님이 말씀 하신 천국 갈 수없는 부자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 부분에서 더욱 포괄적인 안목으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확대해보면, 나는 부자가 아니라서 천국에 갈 수있다 라고 하는 자들이나, 나는 주님의 가르침에 따라서 올바로 신앙생활하고 교회생활을 잘하고 전도를 많이 하였으므로 천국에 갈 수있는 대상자라고 스스로 여기는 자들은 모두 주님이 말씀 하신 천국과는 거리가 먼 자들이다.
거의 모든 인간들이 그러한 것처럼, 부자들도 언제나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 시킨다. 즉 예수님이 말씀 하신 " 하느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 라는 가르침을 자신의 부귀에 대한 정당성으로 이용하려 한다. 부자로 살아가면서, " 나는 하느님이 선택한 부자이기에 부자로 살아도 괜찮다 라고 자위하는 자라면, 이들은 성경을 이용하여 자신의 부귀를 합당화하고 구원을 얻기위한 방책으로 삼는 주님의 자녀들이 아닌 것이다.
부자가 되는 것을 합리화 하는 것 그리하여, 하느님의 자리에 올라서서 스스로 구원을 확정하고 살아가는 것 이같은 일들은 불신자들도 하는 어리섞고 수준낮은 인간의 행동일 뿐이다. 인간의 한계는 언제나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고 의로운 것으로 변형시키는 일에 대단한 능력을 발휘한다.마치 아담과 이브 가인이 자신의 죄악을 합리화 하려 했던 것처럼 말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예수님 자체라고 말씀 하시는데, 그들을 방관한 채 죽어가게 내버려 두면서, 내 부귀는 하느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굶어 죽던지 말던지 개의치 아니해도 죄가 되지 아니한다 라고 스스로 변명을 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과연 이런 인식을 하고 살아가는 자들이 천국을 갈 수있을까?
최소한 이런 저급한 행동앞에 " 나는 예수님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라는 고백을 해야 그나마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는 것일진대, 나는 구원받았고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자부하는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 너무도 많다. 세상것을 추구하면서 하늘의 것도 탐을 내는 욕망덩어리가 바로 부자들이라고 주님이 일침을 놓으신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부자들은 그리스도인이 될 수없을까?.예수님의 가르침이 무엇을 뜻하는지 몰라서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 하는 자들이 아닌 자신들의 죄악을 주님의 은혜로 깨달은 자들은 그 부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아는 자들이다.
나의 부귀를 합리화 시키는 일을 하는 자들이 아니라 하느님의 창조역사가 무엇인지 그 의미를 알고 그에 합당하게 부를 사용하는 자들이다. 교회당을 짓고 전도를 하고 교회일에 헌신하는 방식에 돈을 사용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에 따라 올바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순리를 따라 하느님의 뜻이 전개되도록 돈을 사용하는 것이 옳은 것이다.
한치앞을 보면서 순간의 손익계산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주적 사랑과 관점으로 사물을 대하고 그에 순응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인 것이다.
잘먹고 잘사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아니라,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그 가르침만을 받기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부하던지 가난하던지 그런 알에 대해 눈길이 갈 수가 없는 것이다. 오직 예수 그 한분만이 진리가 되며 소경인 우리들 인생길을 비쳐주시는 광명의 빛이라는 것이다.
하느님이 창조하신 자연이라는 교회당을 모두 헐어버리고 인간이 만든 교회당을 세우는 일에 헌신하는 것은 부자의 도리를 하지 못하고 천국에 갈 일념으로 행하는 지옥가야 마땅한 부자의 삶인 것이다. 이같은 바벨탑을 짓는 자들과 상반되게 자연을 보존하고 지켜내는 일을 하는 자들이 올바로 부를 사용하는 자들이다.
나를 위해 살아가는 인생이 아니라 주님을 위해 인생을 살아가는 자들이라면, 부귀가 왜 부끄러운 일인지 느낄 것이다.나를 위해 하느님이 주신 돈이 아닐진대 어찌 내 부를 합리화 할 수 있단 말인가? 그 돈을 하느님을 위해 사용치 않고 내 자식 내 몸을 위해 사용한다면,지옥자식이나 할 짓이였구나 하고 회개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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