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목사교회신앙

다석 유영모-40년 동안 하루 한끼 식사-모든 병을 없앤다-사람다운 사람들-

by 골동품나라 밴드 리더 2013. 6. 6.

 

다석 유영모-40년 동안 하루 한끼 식사-모든 병을 없앤다-사람다운 사람들-

 

 

사람다운 사람들  -다석 유영모-

 

" 성경의 십계명 보다 더 중요하게 지켜야 할 것이 농사다" 톨스토이 -

 

함석헌 김교신 유영모 철학자 박영호등 삶의 철학적 영향을 끼친 톨스토이

 

40년 동안 일일일식 하루에 한끼 식사만으로 만족한 삶을 살다.

 

하루에 한끼 40년 동안 먹고 살아간 사람이 있다. 하루에 한끼 만으로 만족하였던 것뿐만 아니라 결혼한 아내와의 육체적 관계도 금욕으로 일관 하였다. 그는 금욕의 장단점을 이렇게 말하였다

 

" 남녀 관계는 인격을 빠져 나가게 하고 동물적인 욕정으로 떨어지면 사랑은 악의 근원이 된다. 서로 좋으면 좋지 않느냐는 식으로 나가면 존엄성이 깨져 향락주의의 찌꺼기가 된다. " 욕망을 억누르는 금욕이 참된 나를 찾아가는 길이 될 수 있다 ----

 

그는 술과 담배를 하지 않았으며 아이스크림이나 과자를 먹지 않았고 외식도 하지 않았으며 허름한 옷을 입으며 너무도 먼 거리가 아니면 차를 타고 다니지도 않고  걸어 다녔다.  서울에서 인천까지 걸어 다니면서도 지치지도 않았고 배고픈 줄도 몰랐으며 목마른 줄도 모르는 강철같은 스승 유영모를 지켜 보면서 제자 함석헌은 자신도 일일일식을 하기로 결심한다.

 

버스나 택시를 타본일이 없는 사람 다석 유영모

 

" 안먹으면 죽는다  안먹고는 못사니까 먹는다는 말은 맞다 그러나 너무 많이 먹는다. 적게 먹고 편히 살 수 있는데도 많이 먹고 배탈이 나서 고생을 한다. 사람이 안먹으면 병이 없다"

 

그는 40년 동안 하루 한끼 식사만으로 만족하면서 건강하게 천수를 누리다가 91세에 사망한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농사짓는 사람이 예수다- 

 

 

1890년 서울에서 태어난 유영모는 천자문을 꺼꾸로 외울만큼 암기력과 이해력이 뛰어났다. 그는 산수를 좋아하여 그의 일기장에는 월,일, 요일 옆에 살아온 날을 적기도 하였다. 3.1독립선언의 33인중의 한명인 이승훈 선생의 초빙으로 오산학교 교사로 부임하게 되고 , 오산학교 교장 이였던 이승훈은 처음으로 유영모와의 만남으로 기독교를 알게 되고 오산학교가 기독교 이념에 의해 운영되게 된다.

 

 

타 종교를 절대 배척하지 않고 존중하였던 유영모는 톨스토이와 노자 불경을 읽고  진리가 성경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 했다. 그는 불경이나 공자 노자 맹자 장자 그리고 자연속에서도 진리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 했다.

 

 

유영모는 우주와 물리학을 좋아하여 아들과 직접 망원경을 만들어 천체관측을 즐겼다고도 한다.

 

-자연의 위대함은 곧 신의 위대함이다- 

 

동경에서 물리학교를 다닐 때 우찌무라간조[내촌감삼]를 만나 교회를 다녀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게 된 우리나라 최초의 무교회주의자가 되었다.

 

1921년 조만식의 뒤를 이어 오산학교 교장으로 부임하였으나 일제가 1년이 넘도록 교장 자격을 주지않아 물러났다 그 당시 함석헌이 오산학교 학생으로 공부 하고 있어서 유영모와의 만남으로 오랜 사제지간의 인연이 된다.

 

그리고 유영모는 함석헌을 통하여 <성서조선> 창간자인 김교신을 알게 된다. 김교신은 일제시절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딴 손기정의 스승이다. 성서조선의 계몽지에 유영모는 여러차례  글을 기고한다.

 

유영모는 1946년 " 맨발의 성자" 라고 알려진 이현필이 만든 동광원을 알게 되는데 이 동광원 수녀들은 유영모를 일컬어 "진달래 할아버지" 라고 불렀다. -아름답게 피기 보다는 지는데 보람을 두는 꽃인  진달래를 유영모가 좋아한다고 한  연유에서다

 

 

" 사람이 땅의 농사를 짓는 것은 결국 마음의 농사를 짓기 위함인데 마음의 농사란 진리를 깨달아 참된 아버지를 찾아가는 것이다. "

 

유영모는 특정 종교에 대해 편견을 가져서는 안된다고 말하였다. 종교를 믿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며 특정 개인이 어떤 종교를 믿을 것인가는 전적으로 그 개인에게 달린 문제라고 하였다. 나의 종교를 남에게 강요하지 말라는 것이 그의 종교관이였다.

 

그는 나의 종교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 알긴 무엇을 아는가 . 우리는 아는 것이 없다 .예수교 믿는 사람은 유교를 이단시 하고 불교를 우상숭배라고 한다. 불교에서는 예수를 비난한다. 유교를 나쁘다고 한다.

유교에서는 불교를 욕지거리 하는데 무엇을 안다고들 그러는지 모르겠다.

 

남을 모르면 자기도 모른다. 자기가 그이[군자]가 되려면 다른 그이[군자]도 알아야 한다

 

지금은 참 멍텅구리 시대다"

 

유영모는 종교를 비교할 때 여러종교의 차이점 보다는 공통점을 찾아 내는데 힘을 쏟았다 여러종교가 공통적으로 말하는 하나의 진리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 종교는 자유인데 자기가 어떻게 믿든 자기에게 분명한 것을 믿으면 된다. 남의 말을 듣고 믿으면 그게 무엇인가?...한마리의 개가 의심이 나서 짖는데 다른 개들이 따라 짖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 종교가 귀족적이 되면 남을 짓밟게 된다  에수처럼 내가 십자가를 지겠다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남에게 십자가를 지우겠다는 놈들만 가득 찼다. "

 

" 아무것도 없는 허공이라야 참이다..이 허공이 하나님이다." " 세상에 나타나려고 하지 말고 숨으려고 하라 숨으면 숨을 수록 기쁨이 충만하게 된다. 그것은 더 높이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오르려는 사람은 깊이 숨어야 한다. 숨는 다는 것은 더 깊이 준비하고 훈련하는 것이다. "

 

 

 

" 사람이 태어나면 먹을 것에 대한 탐욕으로 자라고 살아간다. 그러다가 탐욕 때문에 고생을 하게 된다."

 

 

* 다석 유영모의 양생법 *

 

 

1. 먹는 것은 끄니(끊이)로 먹어야 한다. 한참 끊었다가 먹으라고 끄니 또는 끼니라고 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줄곧 이어서 달아 먹으려는 것은 잘못이다. 먹음에 실컷 먹겠다는 생각을 버린 사람은 일부러 금식도 하고 단식도 한다.


먹을 것이 모자라서 먹기를 끊을 때는 (굶을 때는) 오히려 이것을 하느님의 은혜로 알고 감사의 뜻으로 받는다. 말씀을 바로 아는 집안에서는 ??나쁘듯 먹여라??는 말을 한다. 온당한 말이다.(1956)

2. 양생법(養生法), 장생법(長生法)이라는 것이 있는데 한 때는 듣는 것 같아도 다 못쓴다.


그저 줄곧 곧이(貞)의 정신을 가지고 입 다물고 숨쉬어야 한다. 곧이(貞)를 가지면 숨이 잘 쉬어진다. 대부분 먹는 것이 지나치면 식곤(食困)이 생겨서 잠이 많아지고 앉아도 바로 앉지를 못한다. 따라서 바로 숨도 잘 쉬지 못한다.

 

 숨쉴 식(息)자는 코(自)에 염통(心)이 붙어 있는 회의(會意)문자다. 사람이 곧이 곧장 가려면 식(息)이 성해야 한다. 세상 모르고 잠이 들 때도 숨은 더 힘차게 쉬니까 불식(不息)이라 쉬지 않는 것이다. 식(息)이??숨쉬다??와 ??쉰다??는 뜻이 있는 것이 참으로 이상하다. 숨(息은) 처음부터 쉬지 않는 불식(不息)이다. 숨길은 쉬면 안 된다. 건강하려면 식불식(息不息) 해야 한다.(1956)

3. 밥 먹고 자지 말고 밥 먹고 깨어나도록 밥을 먹어야 한다. 밥은 제물(祭物)이다. 바울은 우리의 몸이 하느님께서 머무시는 성전이라고 말했다. 우리의 몸이 하느님의 성전인줄 아는 사람만이 능히 밥을 먹을 수 있다.

 

 밥은 하느님에게 드리는 제사이기 때문이다. 내가 먹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 드리는 것이다. 그러니까 밥을 먹는다는 것은 예배요 미사다. 내가 먹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느님께 드리는 제물을 도적질하는 것이다.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예배드리는 맘으로 밥을 먹는다는 말이다.


알찬 쌀을 쭉정이 같은 내가 먹을 자격이 있단 말인가? 중생인 부족한 우리로서는 떳떳하게 먹을 수는 없다. 참으로 미안하기 그지없으나 그렇다고 안 먹을 수 없으니 먹는 것이다.그러니 먹는 까닭은 구차한 생명을 연장하자고 먹는 것이 아니다. 몸삶을 연장해서는 무엇을 하겠는가? 아까운 밥만 썩일 뿐이다. 그보다는 이제라도 깨서 완전한 사람이 되려고 깨우치는 약으로 먹는 것이다.

 

 사람이 얼나를 깨달은 참사람이 되는 것은 하느님의 뜻이다.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하여 먹는다. 그렇게 되면 조금이나마 쌀에 대하여 덜 미안하게 될 것이 아닌가? 내가 쌀로 하여금 하느님의 뜻을 이루게 하기 위하여 먹는 것이다.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일이니 그곳에 욕심이 붙을 수가 없다.

 

식탐(食貪)의 욕심으로 먹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깨는 약으로 먹는 것이다. 하느님께로 나아갈 길을 바로잡는 것이 인생의 사명이다. 사람은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밥을 먹어야 한다.(1957)

4. 몸성히(건강)를 위해서는 탐욕을 버려야 한다. 자꾸 먹고 싶은 욕심을 경계하고 많이 먹지 않도록 하는 이것을 불교에서는 점심(點心)이라고 한다. 점심을 위해서 석가는 대낮에 한 번 먹었다고 해서 일중식(日中食)이라 했다. 24시간에 한 번 먹는다고 해서 점심이라고 하고 먹는 등 마는 등 마음에 점(點)친다고 해서 점심이라고 하게 되었다. 내가 하루 한 끼를 먹어보니 몸성히의 비결이 점심에 있다 .

 

하루 한 끼니만 먹으면 온갖 병이 없어진다. 모든 병은 입으로 들어간다. 감당 못할 음식을 너무도 집어넣기 때문에 병이 난다, 사람은 안 먹으면 병이 없다. 욕심을 줄여서 한 점을 만드는 것이 점심이다. 그것은 석가가 오랫동안 실천한 건강법이다.(1957)

5. 옛날 사람은 정(精)을 가지고 단(丹)을 만든다고 했다. 아랫배가 단단하게 단(丹)이 박힌 사람이 도인(道人)이다. 그들의 기운은 날듯하고 그들의 신기(神氣)는 상쾌하며 그들의 정신은 고상하다. 이러한 사람을 절대무위한도인(絶對無爲閑道人)이라고 한다. 남녀 관계를 끊고 정신적으로 사는 사람이 도인이요 신인이다. 이들은 정(精)에서 기운이 나오고 기운에서 신(神)이 나온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시행한 것은 정좌(正坐)다. 깊이 숨을 들이쉬면서 배 밑에 마음을 통일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중에는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는 지경에 이른다. 자기의 형해(形骸)를 초월하는 것이다. 이것을 장자(莊子)는 좌망(坐忘)이라고 했는데 불교의 참선과 같다.

 

그리하여 아랫배에 힘이 붙기 시작하면 기해단전(氣海丹田)에서 성단(成丹)이 된다. 마치 나무를 불완전 연소를 시켜서 숯을 굽는 것과 같다. 밥의 알짬(精)으로 단(丹)을 만드는 것이다. 이리하여 아랫배 안에서 숯과 같은 단(丹)이 굳어지면서 거기서 나오는 열이 기운이다. 이 숲이 금강석이 되면 거기서 나오는 지혜가 신(神)이다.


정(精)을 함부로 내어버리지 말고 아끼고 아껴서 그것을 가지고 숯을 구어 석탄 만들고 금강석을 만드는 것이 좌망(坐忘)이다. 이리하여 사람은 없어지고 신선(神仙)이 된다. 사람에게 힘이 있다면 정(精)이라는 기름을 불 때서 기관을 움직이는 것일 것이다. 기름을 아낄 줄 모르고 함부로 하수도에 버리고 만다면 그것이야말로 어리석은 일로 지혜에 병이 든 것이다.(1957)

6. 우리의 숨은 목숨인데 이렇게 할닥할닥 숨을 쉬어야 사는 생명은 참생명은 아니다. 성령을 숨쉬는 얼생명이 참 생명이다. 영원한 참 생명에 들어가면 숨쉬지 않아도 끊기지 않는 얼숨이 있을 거다. 내가 어쩌구 하는 그런 나는 소용이 없다. 석가의 법신(法身)과 예수의 하느님 아들은 같은 말이다.

 

 숨 안 쉬면 끊기는 이 목숨은 가짜 생명이다. 숨에 짓(行)을 맞춰 주어야만 쉬는 숨이 바로 쉬어진다. 숨은 쉬지 않고 끊임없이 쉬듯 짓도 따라서 끊임없어야 한다. 이승에서는 목숨처럼 짓을 끊임없이 맞춰야 한다. 낮잠이나 자서는 안 된다.(1960)

 

 

한국 기독교 역사에서 다석 유영모(1890~1981)는 손꼽히는 ‘기인’이다. 160㎝의 단구의 몸으로 서울 구기동에서 농사를 짓고 벌을 치며 전깃불도 없이 살던 다석은 쉰둘이 되자 간디처럼 아내와 해혼(부부 성관계를 그만둠)을 선언한 뒤 늘 무릎을 꿇고 앉고, 하루에 한 끼만 먹고, 널빤지에서 잠을 자면서 철저히 고행했다.

 

다석은 서울에서 맏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서당에 다니며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을 배웠다. 다석이 처음 교회에 나간 것은 열다섯 살 때였다. 다석은 정식 학교로는 요즘 중학교 2학년밖에 마치지 않았지만 사물의 이치를 통찰하는 데 일찍부터 천재적이었다. 짧은 ‘가방 끈’으로 평북 정주 오산학교에서 스무 살부터 2년간 교사를 했던 그를 10년 뒤 오산학교 설립자 남강 이승훈이 교장으로 초빙한 것도 다석의 탁월성을 간파한 때문이었다. 향교를 교실로 사용했던 오산학교는 다석이 스물에 부임하기 전까지 기독교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유교적 학풍이었다.

 

그런 오산학교에 기독교의 씨앗을 심은 이가 바로 다석이었다. 약관 다석의 기독교 강의를 40대의 남강이 경청했고, 마침내 오산학교를 기독교 사학으로 탈바꿈시켰다. 그때까지 다석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흘린 보혈로써 속죄 받는다는 십자가 신앙’에 충실했다

 

. 그러나 스물둘에 두살 아래 동생 영묵이 죽고, 도쿄에서 1년 동안 유학하는 사이 다양한 학문 세계를 접하고 강연을 들으면서 관점이 근본적으로 변화되기 시작했다. 단재 신채호의 권유로 노자와 불경을 섭렵했고, 춘원 이광수가 가져다준 톨스토이를 읽으면서 동서양을 넘어선 진리의 세계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당시 ‘조선의 3대 천재’로 꼽히던 다석은 2000년 동안 형성된 교리와 신학은 물론 ‘기독교’라는 종교의 틀조차 벗어버린 눈으로 성경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그때 다석은 사도신경에 입각한 교의신학을 벗고 순수한 ‘예수의 가르침의 정수’로 귀환하고자 했다. 동서양의 경전을 꿰뚫어보며 수도를 쉬지 않은 다석은 마침내 쉰둘에 육체와 욕망에 붙잡혀 살아온 제나(몸과 마음을 나로 믿는 개체)가 아니라 우주에 가득 찬 허공과 하나님의 참 얼이 바로 자신임을 깨달았다. 그 뒤 다석은 예수를 ‘참 하나님’이 아니라 ‘참 사람’으로 보았다.

 

 

 예수 혼자만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얼의 씨를 키워 로고스의 성령이 참나라는 것을 깨달아 아는 사람은 누구나 얼의 씨로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다. 사람이 이를 깨달으면 이 세상 그대로가 하늘나라이며, 몸이 죽고 안 죽고에 상관 없이 영생한다는 것이었다. 다석은 스님들보다 불경에 달통하고, 도교인보다 노자 장자에 도통했지만, 개종하지 않았다.

 

동서양을 모두 회통한 뒤에도 다석은 예수를 자신이 본받을 궁극의 선생이자 가장 큰 스승으로 모셨다. 그는 세속적 성공과 욕망을 실현하려는 세속심을 부추기고 야합하는 그런 기독교인이 아니라 죽어버린 성령을 깨워 참사람으로 거듭나게 한 호랑이였다.

 

그가 3·1운동 기독교 대표 남강과 오산학교를 깨우지 않았다면, 불과 인구 1% 정도의 비율에 불과하던 ‘외래 종교’ 기독(개신)교가 3·1운동을 주도함으로써 단시일에 ‘한국인의 종교’가 되기는 어려웠다.

 

또 상당수 기독교인들이 일제 땐 신사참배와 친일로 민족을 배신하고, 광복 뒤엔 친독재로 민초를 배신했을 때 그가 길러낸 ‘민주화의 대부’ 함석헌 등이 있어서 한국 기독교는 그나마 시대의 역사적 소명에 가장 잘 부응한 종교로 떳떳해졌다.

 

광주의 ‘맨발의 성자’ 이현필과 동광원 수도자들은 매년 며칠씩 다석을 초청한 사경회에서 집중적으로 설교를 들었다. 동광원은 잃어버린 한국 기독교의 영성을 회복시켜줄 등불로 주목받고 있다. <성서조선〉을 통해 조선 민중의 정신을 깨운 김교신과 유달영, 박영호, 주규식, 안병무, 서영훈 등도 그를 받들었다. 다석은 한국인과 ‘한국 기독교’를 깨운 최대의 숨은 공로자였다.

 

 그는 지도자가 아니라 ‘지도자의 스승’이었다. 김흥호는 “다석이 일일 일식을 하고, 널빤지에서 잔 것은 절대자를 직접 체험한 쉰두 살부터였다”

一日 一食만 하면 건강할까요?

‘예기’의 소식(小食) 예찬 주간동아 | 안영배 기자 |

 

 

요즘 하루 한 끼로 건강을 챙기자는 게 유행인가 보다. '일일(一日) 일식(一食)'을 권하는 책이 독자의 호응을 이끌어낸 것만 봐도 그렇다. '1日1食' 저자(나구모 요시노리)는 지구상에서 오로지 사람만 음식을 양껏 먹고 또 살을 빼려고 안간힘을 쓰는 짐승일 것이라며 개탄한다. 그는 이렇게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면서 건강을 해칠 게 아니라, 하루 한 끼만 먹을 것을 권한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는 공복 때가 바로 우리 몸에서 호르몬이 분비되고 뇌세포가 살아나는 시간인데, 이때 음식을 먹으면 살이 안찌고 몸도 젊어진다고 덧붙인다.





↑ 일일 일식을 실천해온 다석 유영모(가운데)와 함석헌 선생(오른쪽).

고전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중국을 통일한 진(秦) 이전 시기까지의 의례(儀禮)를 정리한 '대대례기(大戴禮記)' 역본명(易本命)편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고기를 먹는 사람은 용감하나 사납게 되고, 오곡을 먹는 자는 지혜로우나 작은 꾀로 약삭빠르게 되며, 기(氣)를 먹는 자는 정신이 맑아 장수하고, 아무것도 먹지 않는 자는 죽지 않아 신(神)과 같은 존재가 된다."

육식주의자나 채식주의자 모두 장단점을 가지는 데 비해 곡식은 먹지 않고 솔잎, 대추, 밤 따위만 날로 조금씩 먹는 벽곡이나 소식을 하는 사람은 장수한다는 주장이다. 이와 흡사한 내용의 글이 전한(前漢) 시대 작품 '회남자'에서도 발견된다.

춘추시대 인물인 공자와 그 제자들이 하·은·주 3대(三代) 이래 문물제도와 의례 등을 정리한 것이 '대대례기'(쉽게 말해 '예기'와 같은 종류)이고 보면, 벽곡 역사는 2500여 년 전 이상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셈이다. 벽곡법에는 하루나 사흘 정도 금식하거나, 수십 일 혹은 수 개월에 걸친 단식, 더 나아가 수년 혹은 수십 년 동안 음식물을 일절 먹지 않고 기로만 사는 고도의 신선술 등 다양한 방법이 있다고 전한다.

그런데 벽곡법의 원조는 공자의 유가(儒家)가 아니라 노자와 장자 등으로 대표되는 도가(道家) 계열이다. 도가 경전인 '태평경(太平經)'에서는 "소식을 근본으로 삼으면 진실로 정신이 맑고 깨끗해지지만 똥과 같은 쓰레기는 기를 탁하게 한다"고 설파했다.

이는 현대인의 과식 문제를 겨냥한 듯해서 마음이 좀 '뜨끔한' 대목이기도 하다. 우리 몸은 음식이 필요 이상 들어오면 장내에서 제대로 소화하지 못해 유해물질인 독소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독소가 호흡이나 땀, 배변 등을 통해 원활하게 배출되지 않으면 여러 질병을 만들어낸다고 현대의학에서도 말한다. 바로 '기를 혼탁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때 몸속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일정 기간 음식을 먹지 않는 단식이나 소식이라는 것.

문제는 누구나 '일일 일식'을 실천하거나 '소식'을 하면 건강해지는가 하는 점이다. 자신의 몸 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무리하게 단식하거나 소량의 특정 음식물만 지속적으로 섭취할 경우 영양소 결핍으로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충고다.

이 때문에 옛날 도가 계열 사람들이 벽곡하면서 병행한 것이 복기법(服氣法)이다. 벽곡법과 쌍둥이처럼 따라다니는 복기법의 핵심은 만물의 근본이자 생명 에너지인 기(氣)를 코로 들이마시고 묵은 기운은 입으로 토해내는 토고납신(吐故納新)이다. 복기법은 수련 전문가로부터 약간의 요령만 전해들으면 언제 어디서든 돈 들이지 않고 할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습게 볼 일은 아닌데, 꾸준히 하다 보면 벽곡하면서 생길 수 있는 몸의 부작용이나 부실한 부분을 메꿀 수 있다. 그러니까 벽곡만 해서는 건강 효과를 100% 누리기 힘들다는 뜻이기도 하다.

최상용(철학박사) 인문기학연구소장은 수년째 '일일 일식'과 주기적인 단식, 복기법을 병행해 실천하는데 "몸이 가벼워지고 생활에 활력이 넘친다"면서 기자에게도 권했다. 더불어 여성의 경우 탁월한 미용 효과와 체중 감소 같은 보너스도 곁들여진다고 귀띔한다.

  
▲ 다석 유영모 ‘맨발의 성자’ 로 알려진 이현필 선생이 활동한 광주 동광원에서 설교를 하고 있는 다석 유영모 선생.
ⓒ 씨알재단
 

기독교, 예수에 대한 존경이 지나쳐 신격화

 

"사람을 숭배해서는 하여서는 안 된다. 그 앞에 절을 할 분은 참되신 한아님(하나님)뿐이다. 종교는 사람 숭배하는 것이 아니다. 한아님을 바로 한아님으로 깨닫지 못하니까 사람더러 한아님 돼달라는 게 사람을 숭배하는 이유다. 예수를 한아님 자리에 올려놓은 것도 이 때문이고 가톨릭이 마리아를 숭배하는 것도 이 까닭이다." (<씨알의 메아리 예수어록>,  278쪽)

 

"그런데 예수만 '외아들'입니까? 하나님의 씨를 타고나(요한 1서 3장 9절), 로고스 성령이 '나'라는 것을 깨닫고 아는 사람은 다 하느님의 독생자(獨生子)입니다…내가 독생자, 로고스, 하느님의 씨라는 것을 알면, 그러니까 이것에 매달려 줄곧 위로 올라가면, 내가 하늘로 가는지 하늘이 나에게 오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하늘나라가 가까워집니다. 영생을 얻는 것이 됩니다. 사람마다 이것을 깨달으면 이 세상은 영원히 멸망하지 않습니다. 영원을 영(靈)으로 보면 참 사랑이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다석일지 848-849쪽)

 

정통기독교인들이 들으면 당장 이단이라고 비난할 이 글들은 다석 유명모 선생(1890 ~ 1981)이 <다석일지>(홍익제, 1990년), <다석일기>(현암사, 2006년) 등에 남긴 것인데 그의 예수 그리스도론(기독론)을 잘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다석 유영모의 '기독론'에 대해 정양모 신부(다석학회 회장, 전 서강대 종교신학 교수)는 지난 11일(일) 씨알재단 월례강좌에서 "(다석은) 서방의 지극히 사변적인 예수 신성교리·예수가 (신이자 인간이라는) 양성교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를 너무도 존경하고 사랑한 나머지 그를 신으로 추대했겠지만 다석은 지나친 공경은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했다"면서 "그리스도인 절대 다수는 다석의 이처럼 대담한 예수 이해를 받아들이지 않겠지만 앞으로 세계 신학계와 종교학계는 그에게 주목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리스도에 대한 혁명적 해석을 시도한 다석 유영모 선생은 그의 제자 함석헌이나 유달영에 비해 대중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서양철학의 식민지인 한국 철학 계에 우리말과 글로 철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선각자 중에 한 사람이다. 유불선(儒彿仙)에 기반을 두고 서구 기독교사상을 독자적으로 해석한 그의 철학적 업적은 2008년 7월말 서울대에서 열린 세계철학대회에서 주목을 받았고 한국철학회도 별도의 분과를 두고 연구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예수의 인성에 주목한 역사적 예수 연구 활발

 

근래 들어 서구 신학계도 다석 유영모의 기독론과 유사하게 인간 예수(역사적 예수)에 주목하는 연구들이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다. '역사적 예수' 연구는 자유주의 신학이 유행하던 19세기말 20세기 초 활발하게 진행되었다가 1990년대 중반 미국을 중심으로 부활하기 시작했다. 역사적 예수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예수는 거룩한 곳에 앉아 사람을 심판하는 냉혹한 신에서 인간과 삶을 같이 나누는 따뜻한 심장을 가진 인간으로 복권되는 시대에 접어든 것이다.  

 

역사적 예수연구를 통해 현대인들은 예수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예수와 제국>의 저자 리차드 호슬리는 예수를 이스라엘 북부 갈릴리를 주 무대로 당시 사회모순을 극복하려고 했던 농민출신 메시야 운동가이자 새로운 사회비전을 제시하려 했던 예언자로 살다 정치범으로 십자가에서 처형된 것으로 그리고 있다.

 

마커스 보그는 그의 책 <예수의 의미>를 통해 예수는 세례요한의 영향을 받아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 속에 당시의 인습적인 관습에 도전하는 지혜를 가르쳤고 구약의 예언자처럼 사회정의를 외친 예언가로 묘사하고 있다. 그는 또 예수가 당시사회를 넘어서는 새로운 유대사회 회복을 추구했던 선구자라고 말하고 있다.

 

<역사적 예수>를 쓴 도미니크 크로산은 문화인류학, 그리스·로마 역사와 유대역사, 문서비평, 본문비평 등 다양한 학제간 연구를 통해 역사적 예수의 실체를 복원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예수가 농민출신 견유철학자로 묵시적 예언자였던 요한과는 달리 현실 속에서 하나님나라를 건설하려고 노력했다면서 예수는 당시 성결법체계에서 벗어난 병자, 세리, 창녀, 장애인들과 식탁에서 함께 어울린 평등 주의자였지만 사회 혁명가는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이보다 앞서 1970년대 박정희 유신체제를 경험했던 민중신학자 안병무는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철저히 압박당하고 소외된 계층이었고 예수는 당시의 정치사회적 현실을 변혁하고자 했다고 말한다. 예수의 제자들 역시 예수를 자신들과 별개의 존재로 여기지 않고 그의 운동에 역동적으로 동참했으며 기독교는 예수와 예수의 제자들이 함께 이룬 사회변혁운동으로부터 출발했다고 말한다.

 

325년 니케아공의회, 예수의 신성과 인성문제로 교회분열

 

  
▲ 다석 유영모 만년의 유영모 선생이 구기동 자택을 거닐며 사색하고 있다.
ⓒ 씨알재단
 

 

 

 

 

 

 

 

 

 

 

 

 

 

 

 

 

 

 

 

 

 

 

 

 

 

 

 

 

 

 

역사적 예수연구와 더불어 예수가 어떻게 신이 되었으며 그것이 가진 의미는 무엇인지를 규명한 책도 출간되었다. 리차드 루벤슈타인은 <예수는 어떻게 하나님이 되셨는가>(한국기독교연구소, 2004년)에서 324년 니케아 공회의에서 황제였던 콘스탄티누스가 회의에 참석한 250여명의 주교들에게 압력을 넣어 강제로 신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당시 공의회에서 예수의 신성문제와 관련해 두 개의 안이 올라왔는데 예수가 신과 동일본질이라는 알렉산더의 주장과 예수는 위대한 존재이기는 하지만 신은 아니라는 아리우스의 주장이 대립했다.

 

아리우스는 예수가 하나님의 뜻을 철저하게 따른 인간으로 가장 높은 경지에 오른 존재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를 자신의 아들로 입양해 속죄양으로 삼았다는 이른바 '양자론'을 펼쳤다. 그는 예수가 하나님보다는 낮은 존재이지만 그의 사명과 도덕적 자질로 볼 때 인간의 구원자이자 위대한 존재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 다른 인간도 인간예수를 따르면 동일한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아리우스는 하나님은 태어남도 시작도 없이 존재하시는 유일한 분이시지만 예수는 탁월하기는 해도 피조물 중 하나이지 결코 하나님과 같지는 않다는 주장을 했다. 예수에게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호칭을 쓰는 것도 성부와 성자가 동일한 존재나 지위를 공유한다는 뜻이 아니라 단지 은유로서, 그를 공경하기 위한 일종의 문학적 수사로 생각했다. 결국 아리우스는 결국 예수는 단지 하나님이 아니고 피조물이며 "성자가 존재하지 않은 때가 있었다"는 입장에 도달했다.

 

이에 대해 알렉산더는 예수는 우주의 창조자인 하나님이 인간이 되는 것은 굴욕적이지만 그것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에 이를 선택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유혹에 빠지기 쉽고 불완전한 인간이 인간을 구원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의 논쟁은 콘스탄티누스의 지원을 받은 알렉산더의 승리로 끝났고 이때부터 기독교는 예수의 신성을 공식화했고 아리우스는 콘스탄티누스에 의해 유배당했다.

 

로마제국, 인간 예수를 섬기는 것은 정치·종교적 위험하다고 판단

 

루벤슈타인은 콘스탄티누스가 예수를 신으로 만든 것은 인간예수를 섬기는 것이 정치적으로 위험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사람들이 예수의 인성을 강조하면 예수는 단순히 예배대상이 아니라 삶의 모범으로서 스승이자 친구가 될 수 있고 궁극적으로 자신의 노력여하에 따라 같은 경지에 오를 수도 있는 것이다. 역으로 로마제국의 입장에서 정치범이었던 예수가 사람들의 모범이 된다면 큰 위협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반대로 예수를 신으로 격상시키면 신앙의 대상, 예배의 대상이 되면서 인간은 아무리 노력해도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없는 무능한 존재가 된다. 결과적으로 일상에서는 황제(권력자)에게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고 종교적으로는 신의 대리자 역할을 자처하는 성직자들에게 의존하게 된다. 일반 신도들 역시 하늘 보좌에 오른 예수가 대신 십자가에서 죽었기 때문에 자신들은 용서받았고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얻는 것이기에 예수처럼 살 필요가 없다고 주장할 수 있다.

 

물론 예수를 신격화하면서 얻는 장점도 있다. 예수가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었다가 부활함으로써 원죄와 죽음의 불안으로부터 해방되고 부와 영생, 건강을 기원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같은 신앙은 로마의 다른 신이었던 미트라나 주피터를 통해서도 얻을 수 있는 것이기에 결국 정치와 종교적 이유로 예수를 다른 신들과 맞바꾼 것이나 다름없다.  

 

알렉산더 등이 예수를 신격화한 것은 서기 1세기말에서 2세기 초에 작성된 요한계 문서(요한복음, 요한 1,2,3서)를 참조한 것이다. 역사적 예수에 근접했던 공관복음서(마가, 마태, 누가)와 복음서 이전의 바울서신에서는 예수를 하나님과 동일 인격체로 묘사하지 않았다.

 

요한계 문서가 예수를 신으로 묘사한 것은 기독교가 지중해세계로 영역을 넓혀가면서 아우구스투스이후 신으로 승격된 로마황제, 제국 내 다른 유력신들, 이미 예수를 신격화시켰던 그노시즘(영지주의)과 경쟁해야하는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다석, 예수처럼 살면 누구나 작은 그리스도가 될 수 있다고 설파

 

다석 유영모는 특별한 역사적 예수연구나 특별한 신학공부도 하지 않았음에도 이 같은 정통신학의 맹점을 간파하고 인간 예수처럼 누구나 자기의 천직에 매달려 살다 가면 그가 예수라고 말한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는 천직에 매달린 분입니다. 천직에 매달린 모범을 통해, 우리를 위한 대속을 보여주었습니다. 줄기로 천직을 다한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 세상에서 어떤 사람이건 어딘가에 매달려 가야한 하는 것 같습니다. 자기의 천직에 임무를 다하는 것이,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와 같은 독생자가 되는 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는 하나밖에 없는데 그렇게 될 리가 없다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이 늘 말하듯이 그리스도교에서의 예수는 우리를 대표합니다. 천직에 순직한 자는 장소 여하를 불문하고 교리가 있건 없건 독생자로서 십자가를 진 사람입니다. 결코 편협한 예수 그리스도가 아닙니다"(다석강의 732-733쪽)

 

정양모 신부 역시 예수가 온 인류의 죄를 뒤집어쓰고 대신 속죄하기위해 예수가 죽임을 당했다는 신앙은 고대의 집단인격사상 때문이라면서 아담의 원죄이나 예수의 십자가 대속이 일종의 연좌제처럼 모든 인류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은 개성과 자기 책임을 주장하는 오늘날에는 맞지 않는다고 말한다.

 

예수처럼 살면 누구나 그리스도가 될 수 있다는 다석 유영모의 기독론은 예수가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을 받아 부자유친의 삶을 살았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으며 이는 하나님의 뜻을 실천한 예수가 신의 양자가 되었다는 아리우스의 기독론과 일면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다석의 기독론은 곧 그의 신관과도 연결된다. 다석은 모든 존재는 없이 계시는 하나님에게서 비롯되고 그분께로 돌아간다는 귀일신관(歸一神觀)을 믿었으며 이는 오늘날 '신 중심 다원주의'와 맥을 같이한다고 할 수 있다.  

 

다석의 귀일신관은 세계화시대에 종교 간의 대화와 협력에도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예수가 신이 아닌 가장 모범적인 인간이자 스승이 된다면 다른 유일신 신앙을 가진 이슬람교나 유대교, 또한 불교 등 모든 종교와 대화가 가능하다. 과거 정통교회로부터 축출당한 아리우스파 일부가 이슬람신앙이 자기들의 입장과 유사하다고 생각해 개종하거나 협력관계를 맺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정양모 신부는 다석의 신론·기독론이 과거 신앙을 답습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단시되겠지만 우리 신학을 추구하는 그리스도이라면 다석의 가르침에 감읍하고 감사할 것이라고 말한다. 미래의 어느 날 다석의 사상이 다수의 기독교인들에게 인정받는 날이 온다면 한국교회는 '개독교'에서 '기독교'로 복원되고 한국신학은 당당히 세계 신학계는 물론 사상계와 자웅을 겨룰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