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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심수봉의 눈물과 아픔-눈물의 술- 박정희의 희생양-

by 골동품나라 밴드 리더 2014. 9. 3.

심수봉의 눈물과 아픔-눈물의 술- 박정희의 희생양-

 

심수봉의 얼굴을 보노라면.....그녀의 아픔이 얼굴에 가득 묻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순진한 소녀 같은 대학생이 대학가요제에서  직접 피아노 반주로 " 그때 그사람" 이라는 노래를 불러 대상을 차지하고 히트 시키면서  전국민적 노래가 되었다..

 

어릴 때부터 가난한 가정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심수봉은 드럼을 치면서 밤무대에서 활약하였다고 한다..

 

 

심수봉의 목소리는 여성미가 흠뻑 묻어 있다... 강한 모성애를 불러 일으킬 정도로 누구라도 들으면 그 노래와 목소리에 빠져 들어가게 만든다..

 

 

노래 이외에는 아무것도 모르던 앳된 처녀였던 심수봉을 독재자 박정희는 옆에 앉혀 두고  노래를 부르게 하고 다른 어린 대학생들에게  술을 따르게 하면서  주지육림의 광란의 밤을 보내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김재규 정보부장이 총으로 독재자 박정희를 쏴 죽였고, 가수 심수봉은 그 끔찍한 장면을 생생히 지켜 볼 수 밖에 없었다....

 

지금은 그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이 되어 있으니.. 인생은 참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참혹한 광경을 지켜 볼 수 밖에 없었던 심수봉에게 전두환 독재자는 가수로서의 할동을 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심수봉이 방송에 나오면, 박정희의 일이 떠오른 다는 이유 때문이였다..

 

 

심수봉은 10.26 사태의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불면과 고통의 밤을 보내게 되자, 10.26 사건을 예언한 심령술사를 찾아가게 되었고, 그 남자를 만나 동거를 하였지만, 아이를 낳은지 보름만에 헤어지게 된다....

 

 

 아이를 전남편에게  빼앗기다시피  보낸  심수봉은  외로움과 슬픔이 곁에서 떠나지를 못하고 있었고, 눈물의 술을 마시면서 슬픔의 나날을 보내게 된다....  밤무대에서 외롭게 노래를 부르던 심수봉은 유흥업소 사장과 만나 정식으로 결혼을 하게 된다...  그 유흥업소 사장과의 사이에서 딸이 태어나고, 사랑하던 딸과 얼마 못가 헤어지게 된다..

 

 

딸아이와의 슬픈 이별을 가슴에 담아 노래를 만든 것이 " 아이야" 라는 노래이다  . 이 노래속에서 심수봉의 마음이 얼마나 괴롭고 아팠던 것인지 절로 느끼게 된다....

 

 

 

 

 


아이야 - 심수봉

긴 머리 나풀거리며 공항에서 헤어졌네
웃으며 두 손 흔들며 떠났네 찾아갈 수 없는 곳으로
내 젊음이 통곡한 곳이야 흐느끼는 모정 알랴만은
아이야 다시 만날 때까지 건강하려무나 아이야

울음대신 웃음으로 남모르는 세월이었네
검은머리 끌어안고 쓰다듬으며 꿈 속에서도 헤맸네
악연으로만 남겨진 사람들 이제와 무엇을 원망하련만
아이야 너만은 알겠지 사랑한다 내 아이야
마음으로만 불러 주는 자장가
올겨울 쌍파도 없겠지만은
아이야 용서해 주겠니 보고싶은 아이야

 

공항에서 딸아이와의 이별을 하는 모습을 떠올리면서 용서를 비는 엄마의 심정을 노래에 담았다... 

 

 

그리고  사랑하는 자식과 어쩔 수 없이 오랜동안 헤어져 있어야 했던 심수봉은 마음의 아픔을 술로 달래며 하루하루 눈물로 보내게 되었고, 그 고통스런 마음을 또다시 노래로 만든 것이 "눈물의 술" 이라는 노래였다...

 

 

눈물의 술 - 심수봉

인적없는 밤이 오면 휘청거리는 내마음
외롭고 춥던 날들은 이젠 다 지났다지만
이루지 못한 사랑도 운명으로 돌린 이별도
취해서 울던 날들이 오늘 왜 다시 떠오르는가
헤어졌지만 헤어졌지만 아무 말 하지 말자
차갑고 냉정한 마지막 그대 눈물로 가슴 적셔도
용서할수 없는 사람 용서하려 또 마시고
취하면 무너지지만 눈물의 술로 나를 달래네

사랑했지만 사랑했지만 헤어지면 끝이더라
아름답던 이야긴 사라지고 상처만 남겨지더라
추억도 미련따위도 버리고 갈수 있지만
남겨진 아니 얼굴이 마시면 마실수록 떠올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만난 현재의 사랑하는 남편을 만나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면서 결혼을 하게 된다... 사랑하는 현재의 남편마져 행여 떠날까 하는 마음과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기를 염원하는 마음으로 만든 노래가  " 비나리" 이다...또다시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지 않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사랑을 지키려는 염원을 담은 노래로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심수봉의 노래속에는 심수봉의 간절한 마음이 녹아 들어 있다.....  노래를 만들기 위해 가사를 붙인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노래로 표현한 것이기에 구슬프고,... 애절하다... 그래서 심수봉의 노래는 가슴을 적시고 심금을 울린다......

 

심수봉을 생각하면..... 그녀에게 아픔을 안겨준.... 권력자들의 욕망과 잘못된 행동,,.....인생살이의 기구함을 느끼게 된다.... 하루살이 같은 인생속에서  그렇게 많은 아픔을 겪어야만 하는 것인지..... 그녀를 아프게 만든 자들 또한 속절없이 떠나거나 떠나가게 될 것을........

 

헛되고 헛된 것이 인생인 것을.....................

 

 

 

수많은 질곡의 아픔을 겪고 고난을 헤치며 살아온 가스 심수봉의 모습이 너무도 아름답다는 생각이 요사이 자주 들게 된다...

 

아픔 만큼 아름 답다고..................................

 

 

 
 
 

 

심수봉노래듣기 심수봉노래모음 심수봉노래듣기 심수봉노래모음
 
심수봉의 본관은 청송이며 증조부, 조부, 백부, 숙부, 부친, 고모 등이 모두 음악가였던 당대 최고의 음악 명문가에서 1950년 8월 24일(음력 7월 11일)에 태어나(1955년은 호적이 5년 늦게 올라갔다). 음악적 재능을 발휘하여 피아노를 전문적으로 배웠고 재즈 음악을 공부하여 로큰롤을 주로 연주했던 보컬 그룹 <논스톱>의 드럼 주자로 미8군 부대 전용 클럽 무대에 섰다. 이 때 같은 그룹은 아니었지만 같은 부대에서 함께 활동하던 김수희와 친분을 쌓게 되었다. 워낙 음악적 재능이 뛰어나 여러 악기를 다루는데 능통하였으며 음악을 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든 참여하여 일당을 받았다.
 
 
 
일용직으로 일하던 심수봉은 1975년에 처음으로 청와대 연회에 초청받아 대통령 박정희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당대 최고의 가수 나훈아 앞에서 그의 노래를 멋지게 불러 그녀의 노래에 감탄한 나훈아의 주선으로 1976년 신세기 레코드와 50만원에 음반취입 계약을 맺고 녹음에 들어 갔다.
 
 
하지만 음반사와의 분쟁으로 음반발매가 취소되었다. 그후 명지대학교 경영학과에 재학 중이던 1978년, 대학생의 자격으로 제2회 MBC 대학가요제에 참가한 심수봉은 자신이 직접 작곡과 작사를 한〈그 때 그 사람〉으로 당시 배철수, 노사연, 임백천 등 쟁쟁한 참가자들과 경쟁하였다. 심수봉은 참가했던 가요제에서 입상을 하지는 못했지만, 대학가요제에서 최초로 트로트 장르로 출전한 이색적인 경력으로 대중들에게 주목받았고 자신이 공부했던 재즈 음악이 아닌 트로트로 처음 가요계에 발을 디뎠다.
 
 
데뷔와 동시에〈그 때 그 사람〉으로 전국적으로 인기를 얻게 된 심수봉은 데뷔 전 청와대에 초청되었던 인연으로 대통령 박정희는 연회 때마다 심수봉을 초청하여 한동안 청와대 연회가 주무대가 되었다. 하지만 1979년에 궁정동 연회장에 초청되어 노래를 부르던 심수봉은 10.26 이라는 역사의 회오리에 휘말렸다. 수사 진행에 참석하면서 무죄로 판결이 났지만 시대적 상황 때문에 방송금지조치를 당하고 정신병원에 끌려가는 등 갖은 핍박을 당해야만 하였다. 가수로 활동할 수 없었던 심수봉은 1980년에는 처음으로 영화《아낌없이 바쳤는데》에 주연으로 캐스팅되었고 영화 주제곡 OST도 직접 불렀다.
 
 
 심수봉의 복귀작으로 화제의 중심이 된 영화《아낌없이 바쳤는데》는 개봉 이후 관객 5만명을 돌파하는 흥행몰이에 성공했고, 홍콩으로 수출까지 성사되었다.[1] 또한, 1979년에는 드라마《순자의 가을》주제곡 OST〈순자의 가을〉도 직접 불렀다.〈순자의 가을〉이라는 곡은 처음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1980년 전두환정권이 출범하자, 노래 제목에 영부인의 이름 '순자'가 나온다는 이유로 방송 금지 조치를 당했다. 1983년 후배 가수 방미가 이 노래의 제목을〈올 가을 엔 사랑할거야〉로 변경하고 가사 일부를 수정해 빅히트를 기록한다. 1984년 방송 금지 조치가 해제되자, 그 때의 아쉬움을 달래려 《올 가을엔 사랑할거야》라는 제목으로 다시 음반을 취입하기도 했다.[2] 1984년에 가수로 복직한 뒤 가정문제로 침체기에 빠졌던 상황에서 작곡, 작사한〈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가 수록된 앨범이 2만 여장이나 팔리는 판매량을 기록하며 심수봉은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1985년 발표한〈무궁화〉라는 곡도 히트하였지만 가사가 시대적 상황에 국민을 선동하는 뜻이 있다고 여겨져 방송 하루만에 금지 조치를 당했다. 다른 가수들보다 직접적인 정치적 탄압을 많이 받아 가수활동에 지장을 많이 받았던 심수봉은 자신이 경험했던 것들을 음악에 표현하면서 대중들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슬프고 애절한 곡들을 많이 불렀다. 그 뒤 1987년에 정통 트로트〈사랑밖엔 난 몰라〉를 발표하였으며 특히 이 곡의 가사가 사랑받고 싶은 여성의 마음을 담은 노래이기도 해서 여성들에게 널리 불렸다. 1997년에는 러시아 민요를 한국어로 번안하고 새로운 멜로디로 편곡한〈백만송이 장미〉가 히트하였다.
 
지난 2005년, 전국투어콘서트를 진행하던 심수봉은 이혼때문에 자신의 딸과 헤어졌던 사연을 담은〈아이야〉를 부르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국민가수라 불리고 있는 심수봉은 자신의 음반을 제작할 때 마다 새로운 노래를 직접 만들어서 수록했었는데 거의 대부분의 히트곡은 심수봉이 작곡하고 작사한 작품이다. 이와 같은 음악적 재능을 겸비한 심수봉은 대한민국 가요계 제 1세대 여성 싱어송라이터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눈물의술 작사 심수봉작곡 심수봉노래 심수봉 인적없는 밤이 오면 휘청거리는 내 마음 외롭고 춥던 날들은 이젠 다 지났다지만 이루지 못한 사랑도 운명으로 돌린 이별도 취해서 울던 날들이 오늘 왜 다시 떠오르는가 헤어졌지만 헤어졌지만 아무말 하지말자 차갑고 냉정한 마지막 그대 눈물로 가슴 적셔도 용서할수 없는 사람 용서하려 또 마시고 취하면 무너지지만 눈물의 술로 나를 달래네 사랑했지만 사랑했지만 헤어지면 끝이더라 아름답던 이야긴 사라지고 상처만 남겨 지더라 추억도 미련따위도 버리고 갈수 있지만 남겨진 아이 얼굴이 마시면 마실수록 떠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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