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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교회신앙

절받기를 좋아하시는 하나님[?] 부처님[?]

by 골동품나라 밴드 리더 2002. 11. 13.

타종교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것은 옳치 못한 일임을 익히 알면서 나는 평소 느껴오던바를 말하련다.
불자들은 부처님에게 절을 한다. 백배니 천배니 열심히 절을 하는데 나의 좁은 소견인지 몰라도 과연 그 절을 받는 부처님이 절하는 사람을 훌륭하게 바라볼까하는 점이다. 또한 만약에 부처님이 자신에게 절을 하는 사람을 보며 입이 벌어져라 좋아하는가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과연 신의대열에 끼일 수있는 존재가 되는 것인가 의문이 생기는 것이다. 부처님이 원하시는 것은 자비가 아닌가? 그렇다면 자신을 우상화하여 불상에 절하는 것을 만족해 할 존재처럼 마음을 못비운 존재인가 말이다.

부처님이 완전히 자신을 비운 존재라면 결코 자신에게 헌신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리라. 차라리 그것보다는 굶주리고 헐벗은 자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이 자신에게 절하는 것 보다도 훨씬 유익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실까?그것이 바로 부처가 말한 부처의 가르침이자 부처가 되는 길이 아닐까? 그런데 불자들은 이 사실을 까많게 잊은 것인지 전혀 모르는 것인지 오직 부처에게 불공을 드리고 자신의 행복을 위해 가족의 안일을 위해 부처님에게 헌신한다.즉 부처를 자신의 불행한 삶의 해결사로 믿고 살아있지도 않은 인간이 만든 쇠덩어리에 절을 하는 것이다.어쩌면 부처는 주위에 즐비한데 그들이 부처로 보이지 않으니 그럴듯해 보이는 부처의 불상에게만 자비와 헌신을 하는 것이다.

이처럼 불교의 본질은 사라지고 온통 인간의 욕심을 채우려는 자들로 불상이 불교의 권좌를 차지하고 있다. 물론 이것은 모두 내 개인적으로 느끼는 감정이다. 허나 이같이 본질을 잃어버린 종교로 전락해 버린 불교와 마찬가지로 기독교의 미신적인 행동들은 참으로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은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마태12장7절]라고 말씀 하셨지만 도대체 이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가보다. 그러니 하나님께 제사를 지내는 것은 한번이라도 어기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여기면서 지극히 작은자인 예수님을 거들떠도 안보는 행위에 대해서는 참회하는 것을 볼 수가 없다.

자신의 종교 할동을 의롭게 여기다보니 교회라도 가지않는 자만보면 지옥간다고 엄포를 놓는다. 아니 교회가면서 헐벗고 굶주린 예수를 거들떠도 안보는 것이 과연 천국갈 의로운 행동인가 말이다. 교회는 아니 가지만 예수님 같은 분들을 돌보고 아끼는 자라면 과연 교회가는 자와 교회가지 않는 자와 누가 올바른 자인가 말이다. 한국의 교인들은 교회에 대해 헌신하고 물질을 아주 아까운 줄 모르고 하나님께 갇다바친다. 그런데 그것이 산자의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아니라 죽은자의 하나님께 바치는 뇌물이나 우상에게 바치는 미신적 행동은 아닌가 되돌아 볼일이다.

하나님은 산자의 하나님이지 죽은자의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이다 .죽어가는 자를 돌보지 않고 자신에게 경배하기를 바라는 하나님이라면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이다.그러함에도 하나님이 먼저 자신을 드러낸 이유는 바로 예수님의 은혜의 십자가 앞에 서보지 않고서는 자신의 우상의 껍질과 죄를 자각 할 수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사랑안에 합류되어야 사랑을 알 수잇다.자신의 추함과 위선과 더러움앞에 자복하는 삶이 바로 사랑의 은혜에 이끌리는 삶이 되는 것이 아닐까?

자신의 목적달성을 위해 기도하고 찬양하고 헌금하고 설교하고 구제하는 행동은 모두가 가증스러운 일일 것이다.물론 믿음을 얻기위해 하는 기도나 찬송이나 설교나 헌금도 매한가지다. 진정 자신이 가증스런 존재인지를 깨달은 교인이라면 사실대로 고백해야 한다고 본다.은혜를 받을 수없는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내놓고 통회하는 고백이 필요할 것이다.스스로 하나님이라는 우상을 만들어 놓고 자신의 안일과 행복과 믿음은을 얻기위해 애쓰는 가증스런 몸짓앞에 절규하자. 불교의 불상앞에 절하는 미신적 행동과 다만 불상만 없을뿐 목적을 위해 기도하고 헌금하고 찬양하는 짓에 의미를 부여하지 말자 그저 터져나오는 찬송이면 하고 터져 나오는 기도라면 하자. 허나 거기에 어떤 의미도 부여하지 말자 자신의 요구도 말할 필요도 없으며 잘한 일이라고 생각지도 말자.더러운 죄를 깨우쳐주신 은헤에 감사만 할 뿐이다...

쉼없이 발생하는 미신적 행동앞에 무엇을 바라리요 오직 주님의 사랑의 은혜가 임하여 사랑의 행동과 사랑의 생각만 할 수 있기를 바라자. 사랑안에 거하는 것만이 참 평안과 의가 아닌가....그러나 구제나 자비를 베풀기 전에 먼저 주님의 십자가의 의미를 깨달아야 한다. 주님의 사랑의 은혜를 먼저 알지 못하고는 인간은 사랑을 알 수가 없다. 자신의 더러움을 깨닫지 못하고는 모두가 자신을 높이려는 행동으로 드러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