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렸을 때에는 이상하게도 주머니에 돈이 없으면 먹고싶은 것이 너무도 많았다.생각만해도 침이 꼴깍꼴깍 넘어갈 정도로 먹고픈 것이 많았는데, 어쩌다 주머니에 두둑히 돈이 생길라치면 먹고픈 것 이 무엇이였는지 생각도 나지 않을 뿐더러 도통 어떤 것도 먹고 싶지 않을 뿐더러 막상 그 무엇을 사먹어도 맛이 나지 않았다.주머니에 돈이 생기면 그냥 배가 잔뜩 부른 것이다.어쩌면 이처럼 인간이란 돈이 많으면 인생의 맛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돈이 없으면 먹고싶은 것이 많은 것처럼 시간에 �기고 글을 쓸 여유가 없을 때에는 참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불쑥불쑥 끊임없이 떠오르다가도 막상 시간적 여유가 넉넉하여 권태까지 느낄 정도가 될 때에는 그렇게 수없이 떠오르던 이야기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다.
돈이 생기면 그 자체로도 포만감이 느껴지기도 하겠지만, 우선 무엇을 사서 입에 넣기 때문에 배가 부른 것이요. 배가 부르니 다른 먹고 싶은 것은 머리속에서 사라지기 때문인 것같다.배가 고플 때에는 눈에 보이는 것이 먹고 싶은 것으로 연결 되어지니 그와 연관된 다른 것도 간절히 먹고 싶기에 수많은 연결고리로 먹고싶은 것이 많게 느껴지는 것 같다.
마찬가지로 삶에 �겨 바쁘게 움직이다 보면 글을 쓰고픈 욕구가 시장기처럼 느껴지고 그 시장기는 사물을 맛있는 음식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눈에 비취는 수많은 일들이 지나간 추억과 고생과 경험을 연상시켜서 하고픈 말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바쁘게 움직이는 만큼 생각도 바빠지듯이.....잃어버린 기억이 현재와 합일을 이루고 그 합일이 새로운 깨달음을 주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이 남아도는 순간 삶의 경험이라는 바퀴는 멈추고 생각도 멈추거나 아주 느려진다. 그러므로 할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게 되는 것이다.삶의 이야기는 끊임없이 돌아가는 창조적 수레바퀴에 올라타야 가능한 것이 아닐까?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이같은 생각속에 주님의 은혜가 없다면 오염된 구정물처럼 생각은 오염될 것이다. 인간 스스로 느끼는 생각은 욕심이라는 사망의 생각만이 표출 될 뿐이니 깨달음은 커녕 유치한 자기 자랑으로 드러날 뿐이다.
성령의 가르침이 내게 임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나의 이야기가 무슨 의미가 있으며 나의 입은 독사의 음흉함일 뿐이로다.
가만히 앉아서 성경책만 일생을 통해 본다면 그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뜻이 발현 되어질까?모든 일을 제쳐두고 성경책만 열심히 본다면 하나님의 뜻을 알 수있을까? 아니다. 이것은 절름발이가 되는 것이요, 만물에 깃든 고귀한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치 못하는 우매한 자가 되는 것이다. 하나를 알고 둘은 모르면서 모든 것을 안다고 하는 독단에 빠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성경책에만 잇는 것이 아니라 세상 만물을 통하여 계시한다..........
그러나 세상 모든 만물이 하나님의 은혜로 다가오는 것은,오직 주님의 은혜 속에서만 가능하다. 인간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복하는 상한 심령속에 주님의 은혜가 임해야 가능한 것이다. 주님의 뜻에 의해 소경인 우리 인간들이 눈을 뜨는 것이다. 소경이 아니라고 하는 자에게 주의 은혜가 보여질리가 만무하지 않은가? 주님은 보지 못하는 자들을 눈을 뜨게 하는 것이지 본다고 하는 자들은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다.[요한복음 9장 41절] 목사란 성경책만을 보며 설교를 잘하기위해 설교연구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세상 만물에 깃든 하나님의 뜻을 눈으로 보고 고백하는 존재다. 은혜를 보고 느낀것을 말하는 것이다. 오직 주님의 은혜속에서 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바울과 제자들이 가만히 앉아서 성경책을 보고 복음을 전하지 않았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십자가란 성령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지 나의 의지에 따라 안락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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