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겠다고 몸부림치는 인간들...
사람이 죄를 지엇으면 당연히 죄의 댓가를 받아야 하는 것이 사람의 도리일 것이다.세상 모든 사람들은 죄에서 시작해서 죄로 마치는 것이 인간사일 것이다.
그런데 하나같이 살겠다고 몸부림치는 사람들로 교회가 가득하니 차마 양심이 잇는 사람이라면 두 눈뜨고 보기 역겨울 정도일 것이다.
이런 욕심많은 교인들을 보면서 과연 교회를 진리를 추구하는 공동체로 예수님의 몸으로 볼 자들이 누가 잇을손가? 정말 이상한 일은 자신이 노력하면 거룩해 질 수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성화될 수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 성화의 기준은 무엇인가? 자신도 성화의 기준을 전혀 모르면서 성화를 이야기 하고 자신은 거룩이 어떻게 해야 이루어지는지 또는 자신은 성화하고는 아무상관없으면서 성화되어야 한다고 난릴르 치고 자신은 거룩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육신적인 삶을 살면서 거룩을 주장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제껏 살아오면서 거룩한 사람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성화된 사람을 한번도 보지 못햇다. 자신이 거룩하다고 성화된 사람이라고 자부하던 사람들의 교만은 보았지만 그들이 거룩하거나 성화된 존재로 비쳐진 것은 아니였다.
오히려 자신은 무익한 존재요 , 아무것도 할 수없는 죄인일 뿐이라고 고백하는 사람들 속에서 주님의 은혜가 임함을 느꼈다. 그같은 말 속에서 진실성을 엿볼 수잇었다..
성화는 율법을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행위 이상을 말하는 것인가? 행위로는 세상 어떤 누구도 멸망받을 수박에 없다는 것을 성경은 잘 증명하고 잇다..
" 행위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떨어진 자로다. [갈라디아서5장4절] 은헤로 시작헷으면 은혜로 마쳐야 한다. 바울이 남은 전도 하고 자신은 구원에서 버림받을까봐 염려한 것은 바로 은혜에서 멀어지는 자가 되지 말라는 뜻이다.
성경은 오직 예수님의 은혜 그것만을 증거 하기 위해 존재 하는 것이다. 율법이나 행위를 강조하기 위해 성경이 존재 하는 것이 아니다. 행위로 따진다면 바리새인의 의를 쫓아갈 수 없다. 누구에게 복종하는 것인가? 바로 예수님에게만 복종해야 하는 것이다.
99% 성화된 사람과 1%성화된 사람과 어떤 차이가 잇을까? 인간은 의지가 약한 사람이 잇고 강하게 태어난 사람이 있다 참을성이 좋은 사람과 참을성이 없어 다혈질적인 베드로 같은 사람도 잇다.
특별히 참을 성이 좋은 사람에게만 은혜를 베풀고 참을성이 별로 없는 나약한 유전인자를 가진자는 버림받을까? 세리와 창기들이 과연 참을성이 좋을까?도대체 죄인을 구원하러 오셨다는 말은 무엇인가? 세리와 창기들이 먼저 하늘나라에 간다느말은 무슨뜻인가?
이들이 깨끗하게 살려고 노력하고 애써서 일까? 죄악에 길들여진 인간이 은혜가 임했다고 천사로 변질될까? 그렇다면 성령이 곁에서 인도하실 필요가 왜 잇을까?
한국교회는 율법론을 주장하는 자들과 구원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아무기적도 없이 단순하게 행위에 치중하는 보수주의적 기독론에 반기를 든 자들이 칭위로 구원받는다는 구원파를 형성해 나갔다. 너무쉬운 복음이니 기하급수적으로 번져 나갔다. 이들 구원파들의 주 무기는 기적과 병고침이다. 실제적으로 믿음을 보여주니 너도 나도 현혹되는 것이다.
보수주의적 신앙관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다른 체험을 보게되면서 칭위의 구원론에 빠지는 것이다. 행위로는 결코 은혜가 임하는 것이 아님을 알지 못하고 성화론을 주장하는 보수주의 기독론은 복음을 알려는 자들에게 은혜가 임하는 것을 차단하는 역활을 하는 것이다. 그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파로 변질되는것이다.
복음은 살겟다고 몸부림치는 자들에게 죽기를 바라라고 말해 주는 것이다. 구원을 먼저 생각하지 말고 자신의 자아를 완전히 죽이기 위해 애쓰라는 것이다. 살겠다고 몸부림치는 자신의 욕심을 모두 주님앞에 내려놓고 회개하는 심정이 되라는 것이다.
""내뜻대로 마옵시고 오직 주님의 뜻대로 하소서" 라는 절규만이 외쳐질 때 ..
그것이 산 고백이 될때는 살든지 죽든지 조금도 염려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죄를 알게 된자가 은혜를 알고 선을 알기 때문이다. 죄를 알지 못하고는 자신의 추악한 모습을 모르고 어떤것이 선인지 조차 모르는것이다.
죄를알지 못하는 자는 자신의 행위가 단지 구원받기 위한 종교행위 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그 때문에 죄를 깨우쳐 주시는 분에게 감사가 넘치는 것이다. 죄를 알지 못하고는 선이 무엇인지 알 수없다. 그 때문에 죄악을 일깨우는 주님의 은혜만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다..
사람이 죄를 지엇으면 당연히 죄의 댓가를 받아야 하는 것이 사람의 도리일 것이다.세상 모든 사람들은 죄에서 시작해서 죄로 마치는 것이 인간사일 것이다.
그런데 하나같이 살겠다고 몸부림치는 사람들로 교회가 가득하니 차마 양심이 잇는 사람이라면 두 눈뜨고 보기 역겨울 정도일 것이다.
이런 욕심많은 교인들을 보면서 과연 교회를 진리를 추구하는 공동체로 예수님의 몸으로 볼 자들이 누가 잇을손가? 정말 이상한 일은 자신이 노력하면 거룩해 질 수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성화될 수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 성화의 기준은 무엇인가? 자신도 성화의 기준을 전혀 모르면서 성화를 이야기 하고 자신은 거룩이 어떻게 해야 이루어지는지 또는 자신은 성화하고는 아무상관없으면서 성화되어야 한다고 난릴르 치고 자신은 거룩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육신적인 삶을 살면서 거룩을 주장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제껏 살아오면서 거룩한 사람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성화된 사람을 한번도 보지 못햇다. 자신이 거룩하다고 성화된 사람이라고 자부하던 사람들의 교만은 보았지만 그들이 거룩하거나 성화된 존재로 비쳐진 것은 아니였다.
오히려 자신은 무익한 존재요 , 아무것도 할 수없는 죄인일 뿐이라고 고백하는 사람들 속에서 주님의 은혜가 임함을 느꼈다. 그같은 말 속에서 진실성을 엿볼 수잇었다..
성화는 율법을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행위 이상을 말하는 것인가? 행위로는 세상 어떤 누구도 멸망받을 수박에 없다는 것을 성경은 잘 증명하고 잇다..
" 행위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떨어진 자로다. [갈라디아서5장4절] 은헤로 시작헷으면 은혜로 마쳐야 한다. 바울이 남은 전도 하고 자신은 구원에서 버림받을까봐 염려한 것은 바로 은혜에서 멀어지는 자가 되지 말라는 뜻이다.
성경은 오직 예수님의 은혜 그것만을 증거 하기 위해 존재 하는 것이다. 율법이나 행위를 강조하기 위해 성경이 존재 하는 것이 아니다. 행위로 따진다면 바리새인의 의를 쫓아갈 수 없다. 누구에게 복종하는 것인가? 바로 예수님에게만 복종해야 하는 것이다.
99% 성화된 사람과 1%성화된 사람과 어떤 차이가 잇을까? 인간은 의지가 약한 사람이 잇고 강하게 태어난 사람이 있다 참을성이 좋은 사람과 참을성이 없어 다혈질적인 베드로 같은 사람도 잇다.
특별히 참을 성이 좋은 사람에게만 은혜를 베풀고 참을성이 별로 없는 나약한 유전인자를 가진자는 버림받을까? 세리와 창기들이 과연 참을성이 좋을까?도대체 죄인을 구원하러 오셨다는 말은 무엇인가? 세리와 창기들이 먼저 하늘나라에 간다느말은 무슨뜻인가?
이들이 깨끗하게 살려고 노력하고 애써서 일까? 죄악에 길들여진 인간이 은혜가 임했다고 천사로 변질될까? 그렇다면 성령이 곁에서 인도하실 필요가 왜 잇을까?
한국교회는 율법론을 주장하는 자들과 구원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아무기적도 없이 단순하게 행위에 치중하는 보수주의적 기독론에 반기를 든 자들이 칭위로 구원받는다는 구원파를 형성해 나갔다. 너무쉬운 복음이니 기하급수적으로 번져 나갔다. 이들 구원파들의 주 무기는 기적과 병고침이다. 실제적으로 믿음을 보여주니 너도 나도 현혹되는 것이다.
보수주의적 신앙관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다른 체험을 보게되면서 칭위의 구원론에 빠지는 것이다. 행위로는 결코 은혜가 임하는 것이 아님을 알지 못하고 성화론을 주장하는 보수주의 기독론은 복음을 알려는 자들에게 은혜가 임하는 것을 차단하는 역활을 하는 것이다. 그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파로 변질되는것이다.
복음은 살겟다고 몸부림치는 자들에게 죽기를 바라라고 말해 주는 것이다. 구원을 먼저 생각하지 말고 자신의 자아를 완전히 죽이기 위해 애쓰라는 것이다. 살겠다고 몸부림치는 자신의 욕심을 모두 주님앞에 내려놓고 회개하는 심정이 되라는 것이다.
""내뜻대로 마옵시고 오직 주님의 뜻대로 하소서" 라는 절규만이 외쳐질 때 ..
그것이 산 고백이 될때는 살든지 죽든지 조금도 염려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죄를 알게 된자가 은혜를 알고 선을 알기 때문이다. 죄를 알지 못하고는 자신의 추악한 모습을 모르고 어떤것이 선인지 조차 모르는것이다.
죄를알지 못하는 자는 자신의 행위가 단지 구원받기 위한 종교행위 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그 때문에 죄를 깨우쳐 주시는 분에게 감사가 넘치는 것이다. 죄를 알지 못하고는 선이 무엇인지 알 수없다. 그 때문에 죄악을 일깨우는 주님의 은혜만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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