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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희 신앙컬럼

예수님의 토론방식.

by 골동품나라 밴드 리더 2004. 9. 5.
예수님의 토론방식.

 

 

완전함을 요구 하시는 예수님의 가르침

 

 

 

혹자는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 당신은 완전한가" 라고 따지고들면 과연 이곳에서   토론이 가능할 수있는가? 라고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성경속에서 예수님의 토론 자체를 면밀히 살펴 보면 바로 예수님의 토론방식이 이런 방식이였음을 발견하게 된다.바리새인들은 갖가지 난제들을 가지고 예수님과의 격렬한 토론을 하길 원했다. 그들이 제시한 문제들은 사실 바리새인들이 줄기차게 난상토론을 거치던 풀릴길 없는 화두요, 문제거리 였던 것이다. 그들이 해결하지 못하고 설왕설래 격론을 벌이던 신학적 과제들을 가지고 예수님께 답변을 요구하였던 것이다.

자신들의 질의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에 대해 곧바로 반격을 가할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지금의 성화론이나 예정론 청부론 제비뽑기론 주일성수 십일조 기타등등 과 같이 도저히 인간의 생각으로는 풀릴길 없는 싸움이 종식되지 않을 것들을 가지고 예수님께 싸움을 걸어 왔던 것이다. 이들 바리새인들은 결국은 싸움장에서 보고 배운 것을 가지고 예수님께 시비를 걸려고 한것이다. 예수님의 답변에 대해 공박할 꺼리는 무궁무진 하였던 것이다.

간음한 여인이 돌에 맞아 죽게되자 죄없는 자가 치라 라고 함으로써 종결을 짓게 만들고 형제들의 부인이 된 여인이 하늘나라에서 누구의 부인이 되는 것이 마땅한가? 라는 질문에 하늘나라는 먹고 마시고 자식낳고 즐기며 사는 곳이 아님을 말함으로써 반론자체를 할 생각조차 못하게 차단하신것이다.천국가서 즐겁게 살 생각을 가진자는 아예 천국을 꿈꾸는 것이 가당치 않음을 말씀 하신것이다.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한 완벽에 가까운 삶을 살았던 부자청년이 찾아오자 예수님은 너의 가진 모든 것을 버리고 자신을 �으라고 하셨다. 더이상 무슨말을 하랴? 세상 어떤 인간이 이 말씀을 듣고 실천할까? 모든 인간이 예수님을 버리고 떠나갈것이 아닌가? 이토록 매정하고 피도 눈물도 없는 말씀들 하실 수있을까?

자! 그런데 이런 예수님이 " 누구든지 나를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마태11장6절]" 라고 말씀 하신다. 아니! 도저히 지키지도 못할 가르침만을 수도없이 남발하시는 예수님이 자신 때문에 실족하지 않는 자가 복이 있다라고 한다. 과연 예수님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다니신것일까? 아니면 실족케 하려 다니신것일까? 바로 자신의 행위를 가치있게 바라보는 인간들은 그 누구를 막론하고 은혜가 임할 수없음을 깨닫게 하기 위한 것이였다

성전보다 더큰 주님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않는 예수님 이런 분에게 주일성수는 무엇이고 십일조가 왠말인가? 아예 바리새인들의 끊나지 않는 난상토론 주제를 한방에 끝내는 말씀을 하신것이다.

교리를 어기는 제자들을 보며 질타하자 예수님은 "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듯이 죽으리라 하셨거늘[마태15장4절]".이라는 말씀으로 이들이 모두 멸망의 자식임을 지적 하신다. 즉 완벽하게 효를 행한자만이 제자들의 죄를 물으라는 것이다..바리새인들이 이말에 차마 반기를 들지 못한 것은 자신을 되돌아 보면 완변한 효를 행한것이 없음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있었기 때문이다.이들은 인간의 관점으로 볼 때 창기나 세리 그 누구보다 양심은 있는 사람들이였다.

제자들이 누가 천국에 가서 크게 될까 토론하자 예수님은 한마디로 이들의 입을 닫게 하신다."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지극히 작은자를 본체만체 한 자는 연자맷돌을 지고깊은 바다에 빠지는 것이 훨씬 유익하다고 말씀 하시는 것이다. [마태18장3-6]

인간의 행위가 구원을 얻는데에 얼마나 무가치한 것인가를 예리하게 지적하신 것이다. 왜 이런 인간으로써는 도저히 가능하지도 않는 상상속의 동화같은 이야기를 꺼내놓으셨을까? 그로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떠나갔다. "내 아버지께서 오게하여 주시지 아니하면 누구든지 내게올 수없다 하였노라.이러므로 제자중에 많이 떠나가고 다시는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요한6장65-66]"

도저히 사람으로서는 할 수없는 행위를 가르치고 그런 말씀으로 답변을 하시는 예수님에게 바리새인들은 따진다. " 당신이 정말 사랑이 있는 분이라면 어떻게 이렇게 인격을 무시하고 매정한 말씀으로 일관할 수있는가? 라고 따진다.[누가11장45절] 그러자 예수님은 참으로 너희들은 지옥갈 자들이구나 너희는 선 하나 까딱하지 아니 하면서 남에게 성화된삶을 살라고 가르치니 너희의 보잘것없는 행위로 남을 죽이는 구나 . 지옥갈 자들아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는 자도 막는구나.[누가11장52]

한마디로 말해 예수님의 말씀은 완벽 그자체이다.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이 말씀앞에 날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죄인의 범주에서 결코 벗어날 수없음을 느끼고 더러운 인간이 살아 숨쉬는 것에 놀라워 하며 두려워 하며 감사해 하며 애통해 하며 살게 되는 것이다.이 모든 일이 주님의 은혜로 인해 벌어지는 기적임을 느끼며 살아가는 자들이다.

이런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주님이 가르친 말씀을 그대로 전하게 되는 것이다. 행위로 의를 삼으려는 자들에게 그들의 행위가 얼마나 무가치하며 지옥갈 행위인지 깨닫게 해주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복음이다.오늘도 주님이 산 성전이 되어 가르친다면 예수님의 말씀은 변색되지 않고 전해진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헛된 유전이나 학문 철학 지식 신학에 착념치 않게 되는 것이다.구덩이에 빠뜨릴 지식은 바리새인들이 열쇠를 가지고 있으나 진리는 주님만이 가지고 계신것이다.이사실을 믿고 사는 자들이 그리스도인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