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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희 신앙컬럼

올챙이는 올챙이적 시절을 기억하지 못한다..

by 골동품나라 밴드 리더 2004. 10. 31.

올챙이는 올챙이적 시절을 기억하지 못한다.

인간의 삶이라는 것이 지난 세월을 곱씹어 되돌아 보면 남는 것은 후회밖에 없는 허무함 그 자체이다. 인간의 인지 능력이라는 것도 우주적 관점으로 본다면 치졸한 것이요 한마리의 올챙이가 허부적 댄 물장난일 뿐이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깨닫지 못한 우리네 인간들은 언제나 그렇듯이 나라는 주체를 우주의 주인공의 자리에서 놓고 보려는 시각 때문에 꽤나 잘난 것으로 여긴다.

"모든 악은 무지에서 비롯된다" 라는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어찌보면 세상의 악은 무지 자체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악의 근간인 무지는 과연 어디까지가 한계적 범주인가 하는 것이 문제의 단초라고 생각해 볼 수있다. 과연 어디까지가   무지의 종착점일까? 과연 인간이 무지에서 벗어 날 수는   있는 것일까? 과연 올챙이적 생의 범주에서 탈피할 수있을까?

오늘날의 기독인의 관점에서 한번 생각해 보자 신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입문하게 된 기독인의 특성과 그들의 자라나는 과정을 살펴보면 인생살이의 여정을 걷고 있음을 알게 된다. 아무것도 모르던 젖먹이 신앙자들은 호기심에 들떠 마냥 기뻐하면서 호들갑을 떨고 적극적인 신앙모습을 나타낸다. 그러다가 계속된 반복학습의[설교.기도. 성경공부] 효과덕에 더 이상 배울것이 없다는 듯 는 자부심을 가지는  교인스런 모습을 보인다. 이들보다 좀더 성숙하게 된 사람들은 서서히 겸손된 자세로 변모한다. 신앙의 무한한 힘앞에 자신의 실체를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기독인들을 넓게 나눈다면 이렇게 세부류로 나눌 수가 있다.

이제부터는 자신의 말이 곧 진리라는 완성된 틀속에서 한번도 벗어나지 못하는 고정화된 인간으로 일생을 살게 되는 것이다. 다른것이 있다면 그 수준의 차이점 뿐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는 주체는 언제나 세상을 심판하는 주관자로 군림하는 것이다. 한살이든 세살이든 열살이든 언제나 그자라에서 내 말이 곧 진리라는 관점으로 살아나간다는 것이다. 물론 철이 들 때마다 지난 시절이 부끄럽고 후회로 다가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똑같은 일을 되풀이 하는 무지한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오늘날 보수주의 기독인들의 편협하고 속좁은 신앙관을 비판하는 자유주의 신앙인들도 예전에는 보수주의 신앙의 여정을 지나온 자들이다. 어릴적 막무가내로 우기고 따지던 그 철부지 행동이 얼마나 부끄러운 것인지를 깨닫고 그들의 무지를 깨우쳐 주려 하지만 그들이 자라나지 않고서야 어찌 깨달을까? 그러나 지금의 나라는 존재도 올챙이의 범주에서 결코 벗어난 것이 아니니 결코 자랑할 것도 잘난것도 없는 것이다...

내 아이가 나도 어른이라고주장하면서 어른처럼 행동하고 과시하고 우긴다고 한들 어른이 아님을 알 수있는 것은 내가 어른이 되었기 때문이다. 철부지의 투정으로 바라보면 되지만 그보다 어린 아이들을 유약하기 때문에 가르쳐 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철부지들을 가르쳐 주는 당사자도 그보다 더 철이 들은 사람에게는 철부지일 뿐이다. 먹이사슬의 피라미드식 공식처럼 신앙도 그 단계를 거치는 것일 뿐이다. 결국은 인간의 신앙이라는 것은 바벨탑 이상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인간적 신앙의 성숙도를 가지고 남을 비판하고 가르치려 하는 자들이다. 자신이 스스로 깨달은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얼마나 무지한 우주의 올챙이 인줄 깨달았다면 결코 성화니 십일조니 제비뽑기니 주일성수니 청부니 하는 말들이 얼마나 허무한 것임을 알것이건만 거기에 가치를 두고 자랑하려 하니 그 철부지의 신앙을 자랑하는 어린아이를 보는 것이 지난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게 되는 것이다.

주예수의 십자가외에 무엇을 자랑하리료..세월이 지나면 후회로 점철되는 것이 지나온 신앙관이요 신앙생활의 모습이 아니던가?현재에 안주하려는 그 정체된 모습을 가장 두려워 해야할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아니던가? 육신의 옷을 덧입고 있는 나를 망각케 하는 사단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 누가 인간을 장성한 신앙인으로 만드는 가 교리인가? 설교인가? 주석인가? 부흥회인가? 교회생활인가?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진리의 영외에 무엇이 있으랴...올챙이로 살다가 가는 인생길을 알지 못하고서야 나의 잘난체는 떠날줄을 모르는 것이다. 그 때문에 내 행위를 떠벌리고 자랑삼아 신앙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육신의 삶으로 만족하며 자족하며 사는 모습인 것이다..올챙이인줄 모르고 사는 것 이들을 깨닫게 할 해결점은 오로지 예수님의 손에 달린것이다..

**60년대 흑백사진이나 영화 텔레비젼을 보면 촌스러움 그자체로 다가올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삶을 반추해 보면 부끄러움으로 다가온다. 신앙도 마친가지 이다. 생각이 어린아이로 퇴행하는 노인의 지적 수준이 아니라면 지금 이곳에서 떠벌리던 수많은 글과 행동들이 수치로 다가올 뿐이다..진리로 남을 것이 있다면 진리 그 자체일뿐..인간의 면모는 죄악으로 남는다.그 때문에 회개와 자복외에 자랑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옛날 높은뜻 숭의교회 토론게시판에  올린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