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 무오하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허나 그것은 영적인 것에서의 무오이지 역사적인 해석으로 무오하다는 것이 아닙니다.만약에 역사적인 사실로써의 완벽성을 주장한다면 그들은 역사적 사실을 믿는 것이지 현재의 영적인 실체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역사는 과거요 현실과 동떨어질 수박에 없는 인식관에 머물 수밖에없는 것이 인간의 한계성입니다.] 에덴동산이 실제 존재하였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그 사실을 믿겠다는 의지가 잇을 뿐이지 정녕 믿는 것은 아닙니다.그 사실을 믿는다고 해보았자 아무의미가 없는 이유는 그 역사적 인식이 그 사람을 변화 시키는 데 아무 도움도 아닌된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이란 아무리 믿겠다고 각오를 다지고 결심을 하여도 그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뿐더러 설령 믿는다 하여도 사단의 속임수에 빠진 한계성안에서 머문다는 것입니다.즉 예수님의 은혜가 없이는 인간의 믿음은 모두 썩어 없어질 배설물이라는 것이지요. 성경이 쓰여진 목적은 단 하나 예수님을 증거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 사실이 진정 믿어 졌다면 이제 풀리지 않던 성경이 풀린 것입니다.[누가복음24장45절] 더 이상의 의문이 사라졌는데 성경의 또다른 의문을 파헤치겠다고 매달리는 것은 사실은 의문이 풀리지 않은 자의 모습이 아닐까요? 수수께끼가 풀렸는데 그 수수께끼는 어디에서 나온 것이냐고 묻는 것과 같은 이치이지요.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셨다는 것을 믿지만 그럼 하나님을 만든 것은 누구냐고 묻는 것은 아직도 하나님이 세상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자신도 모르게 표출하는 상태를 나타내는 것입니다.믿지 못하면서 믿는다고 고백하려 애를 쓰는 양상을 나태내려는 것은 그만큼 스스로 구원에 대한 욕망이 강렬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천국에 가겠다는 욕망으로 종교생활을 함으로써, 믿음자체가 없으면서도 믿음이 있다고 자부한 것과 마찬가지이죠. 인간이 믿겠다고 하는 믿음은 언제나 의문속에서 허우적 대는 것이나, 주님의 은혜가 임하면 우리들의 마음을 열어 주시어 성경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그 깨달음은 이제껏 보던 성경의 해석이 아니라 차원이 다른 것이기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주님앞에 자복하게 만드는 것입니다.단 몇구절을 이해 할지언정 그 놀라운 뜻을 깨닫는 순간 더이상의 인간적 요구는 사라지게 되겠지요..자신을 이끄시는 주님이 계신데 어찌 인간에게 의탁하는 존재가 되겠습니까? 정녕 성경을 깨닫게 해주신 분이 주님이심이 믿어진다면 말입니다. 도마의 의심은 누구라도 지니는 인간의 속성입니다. 단지 그 사실을 고백치 못하고 믿음이 있노라 하고 믿음있는 척 숨기고 사는 종교인이 많을 뿐이지요 그러나 의심많은 도마가 그 의심의 족쇄에서 풀려난 것은 죽은 사람이 살아난 것을 본 때문이 아니요, 베드로가 바다위를 걸어가는 것을 본 때문이 아니요,떡조각으로 오천명을 먹인 오병이어의 역사적 사실을 직접 목격한 때문이 아니요, 죽어버린 나사로를 살린 다시살려내는 기적을 본 때문이 아니라, 그 어떤 기적과 기사를 직접 두눈으로 보아서 믿음이 생긴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은혜가 임한 덕분에 주님앞에 엎드려 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속에 나오는 이적과 기적의 말씀이 나는 틀림없이 믿어 진다고 하는 말을 하는 자들은 진실을 말하는 자들이 아닙니다.문자적으로는 모순과 무오하지 않는 것들로 가득해서,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것들이 이해되고 의문이 풀리는 것은 주님의 은혜 때문이지, 내가 믿는다고 마음먹어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육신적인 것으로 영적인 믿음이 생기지는 않습니다.그러므로 영은 영이요, 육은 육임을 고백하고 오직 주님만이 진리임을 고백하는 자들이 그리스도인일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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