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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나는 천만번 지옥에 가야 한다...

by 골동품나라 밴드 리더 2008. 3. 2.

 

 옛날과 비교하여 요즘 사람들은 너무도 잘 먹고 잘 살아간다. 자동차를 타고 어디든지 갈 수 있고, 전국에서 생산되는 산해진미를 맛볼 수 있고,세끼 밥을 아무런 걱정없이 잘먹고 있다. 조선시대 왕보다 더 잘먹고 잘살고 있지만,그것도 모자라 다른 사람들 보다 좀 더 많은 풍요와 행복함을 만끽하려고 온갓 쾌락의 도구들을 사 모은다.

 

이번에 이명박정부에 입각된 정부 관료들 중에 상당수가 외제차와 골프채 여러채의 집과 땅을 보유한 사실을 보더라도  쾌락을 맘껏 누리기 위한 인간의 욕망은 참으로 끝이 없음을 훤히 알 수 있는 것이다.

 

얼마전 내 아내가 1억이 넘는 아파트를 구입하여 이사를 간 잘아는 언니를 생각하며 자신도 모르게 " 부럽다 라고 말하여  " 어찌하여 당신이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라고 따지는 나와 대판 싸운 적이 있듯이 인간의 욕망은 타오르는 불길과 같아 스스로 억제하는 것이 심히 어려운 일이다.

 

참으로 옛날과 비교하면 왕보다 더 잘먹고 잘사는 사람들이 이 땅에는 가득찼건만 아직도 부족한 것이 많다고 아우성을 치며 쾌락을 즐기기 위해 부를 꿈꾸고 부를 누리려고 애를 쓴다.

 

 남만을 탓 할일이 아니다.  여기저기 내 주의를 세심히 살펴보면 내가 너무도 많은 사치와 낭비를 일삼고 있음이 여실히 보여진다.  나의 주둥이의  쾌락을 위해 맛있는 외식을 하는 적이 있으며, 자동차를 타고 여기저기 여행도 다닌다.

 

충분히 입을 만한 옷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약간 헤어졌다는 이유로 새 옷을 사입는다. 나의 즐거움과 쾌락을 만끽하기 위해서 돈을 사용한다. 남들처럼 살기 위해 돈을 쓴다.

 

생각하면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참으로 개 돼지만도 못한 짓을 일삼는 것이 아니던가?.이런 부끄러운 몰골을 두 눈앞에 놓고 날마다 내 두눈으로 목격하면서도 눈앞의 그 죄악을 전혀 깨우치지 못하고 살아간다.

 

예수님이 새 계명을 주셨다."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 이 가르침을 지키는 것이 성경의 모든 가르침을 온전히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하느니라!" 라고 말씀 하셨다.

 

이 가르침을 전혀 지키지 않으면서도 성경의 가르침을 지켜 행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 너야말로 양심이 화인맞은 지옥갈 인생이로다" 라는 말씀에 바로 내 자신이 해당된다는 사실이 느껴진다.

 

개,돼지 만도 못한 삶을 살면서 나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고 있다. 굶어 죽어가는 예수님을 본체만체 하면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기를 원한다고 입버릇처럼 외치고 있다. 타락과 오염된 세상에서 오염된 삶을 사는 사람들과 다를바 없이 살면서 잘먹고 잘사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외치고 있다.

 

짐승만도 못한 삶을 살면서 짐승보다 나은 줄로 착각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짐승들은 우리네 인간들처럼 온갓 쾌락을 즐기기 위해 사치를 하지 않는다. 짐승들은 먹을 것외에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그에 비하면 인간들처럼 더럽고 욕심많은 존재도 없다. 짐승만도 못하다 보니 " 잘먹고 잘사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라는 차마 짐승만도 못한 말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 나는 나의 즐거움을 위해 살아가는 참으로 부끄러움을 모르는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다.

 

 *태백산행에서 만난 할머니와 집.. 할머니는 어릴 때 집에 먹을 것이 없어서 이곳으로 시집을 왔다고 합니다. *

 

이런 창문하나 없는 암흑과 같은 곧에서, 당장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집에 살면서도 욕심을 부리지 않고 자족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이런 집에 비하면 궁궐같은 집이 있으면서도 그것도 모자라 더 많은 집과 땅을 내것으로 만들기 위해 혈안이 된 사람들도 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이 땅에서 사라질 나그네 인생들이 천년만년을 살것처럼 욕심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이 잘먹고 잘살게 복을 내려 주셨다"라는 거짓된 욕망의 변명을 늘어 놓으면서 말이다. 그래서 하느님이 이런 우리네 인간들을 지옥에 보내셔도 당연한 일이 되는 것이며 우리들은 그 어떤 항변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잘먹고 잘사는 것이 죄가 아닌 것처럼 떠들다 보니 나도 모르게 그들처럼 파렴치한 인간으로 변질되어 가는 것을 느낀다. 이런 시대의 흐름에 반한 가르침으로 죄악된 모습을 일깨워 주는 예수님의 은혜가 그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이런 이유 때문에 나는 잘먹고 잘사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고 가르치는 양심이 화인맞은 목사들의 거짓된 설교를 듣기 위해 내 발로 마귀의 소굴로 변한 교회를 찾아 갈 수 없는 것이다.

 

내 양심이 그것만큼은 허락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