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라는 분이 과연 이 세상에 태어나신것이 실제적 사실인지 아니면 전래 설화나 동화등을 차용하여 만든 가상인물인지를 두고 반대론자와 찬성론자와의 논쟁은 오래도록 지속되어 온 것 같다. 이렇게 지루한 논쟁이 계속되는 이유는 역사적 사실관계의 불확실성 때문일 것이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태어나고 살아 존재 하였다는 정확한 역사적 자료가 있었다면 그 부분에 대하여 반대하는 자들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예수님의 역사적 실존을 믿는 기독교인들은 수천년동안 이어져온 성경내용을 근거로 예수님의 역사성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반대론자들은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부활이나 바다위를 걸었던 이야기 오병이어 죽은자의 부활과 승천 등등의 수많은 성경기록들이 고대설화를 그대로 차용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예수님 시대에는 활자가 발달하지 못해서 문헌을 길게 남길수가 없었다 성경은 후대에 다시 더하거나 가공 편집되어 만들어진 것이다.]
성경에 기록된 이야기와 너무도 똑같은 내용들이 성경이 기록되기 훨씬 전에 많은 구전과 문헌으로 기록되어 있었다는 것이며 성경을 쓴 기록자들이 그런 문헌이나 구전을 인용하여 성경에 기록한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같은 고대역사성을 이해하고 공부한 지식층 기독인들은 예수님의 부활이나 승천 수많은 기적들은 모두 후대에 성경을 기록하거나 편집한 기독인들에 위하여 편집되고 가공된 것이며 실제적 사실이 아니라고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역사적 사실을 알지 못하는 일반기독교인들과 기독교의 역사성을 배우지 못한 목사들은 이같은 사실을 전적으로 부인하고 오로지 성경에 기록된 내용들은 모두 진실이라고 믿고 있으며 성경의 기록과는 조금이라도 다른 부분을 말하는 자들은 이단자라고 공격을 가하고 있다.
결국 예수님의 실존과 성경기록의 실재성을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한결같은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모두가 예수님을 직접 보거나 만지거나 한 것이 아니라 책에 기록된 내용을 보고 판단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란 자연적인 현상을 초월하는 기적들을 누군가가 이야기 할 때 믿어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예를 들어 어제 태어난 아이가 갑자기 호랑이로 변한 것을 보았다고 누군가가 나에게 말하거나 언론에 보도가 되었다면 미쳤다고 여기거나 잘못된 보도라고 즉각적으로 인식하고 믹게 될 것이다.그리고 누군가가 바다에서 고기를 잡고 있는데 갑자기 커다란 용두마리가 나타나서 탱고춤을 추고 사라졌다고 하면 그 누구도 믿지 못할 것이며 미쳤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그 말을 듣고 미쳤다고 말하는 사람과는 달리 직접 아기가 호랑이로 변하고, 용이 탱고춤을 춘 것을 본 사람이라면 더욱 미치고 팔짝 뛸것이다. 정말 보았는데도 믿어주지 않으니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만약에 이 글을 읽고 용이 탱고를 추는 것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기독교인들이라면 그는 절대 예수님의 기적이나 부활에 대하여 남들에게 역사적사실이라고 주장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내가 역사적으로 믿는 성경의 기록들은 실제로 일어난 일이였지만, 남이 보았다고 하는 용춤이나 아기가 호랑이로 변한 사실은 절대 불가능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야야 말로 모순중의 모순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예수님의 기적이나 역사성은 남들에게 믿으라고 강요하거나 주장할 건덕지가 못된다. 그것은 마치 스스로를 일컬어 바보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기 때문이며, 계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따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매한 행동일 수밖에 없다.
내가 아무리 닭이 먼저 태어난다고 믿는다고 해도 닭은 누가 낳았지 라는 의문을 벗어버리지 못하듯이 , 그렇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예수님을 역사적 사실로 굳게 믿을 것이다 라고 마음 먹고 믿으려고 노력한다고 해서 예수님이 역사적 사실로 믿어 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역사적 사실이 인간의 행동에 변화를 줄 수 있도록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을 직접 눈으로 보고 죽은자를 살리고 바다위를 걷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기적을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한다 해도 예수님이 신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다. 성경을 믿는다는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생각해 보라 그들은 수많은 기적을 보았다고 하지만 예수님을 믿을 수가 없었다. 십자가에 돌아 가시고 난 후 부활 하였어도 그것을 두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하여 옆구리에 손을 넣어보아야 하지 않았던가?.손을 넣어도 허상일 뿐인것을...
용이 탱고춤을 춘 것을 믿지 못하듯이 인간이란 자연적인 현상을 벗어나는 일은 절대 믿을 수가 없는 존재로 태어난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결단코 예수님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였지만, 모두가 부질없는 약속이였다. 초라하게 끌려가는 예수를 보니 그가 보여준 기적들은 모두 속임수로 밖에 여겨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져 눈에 보일 때만 믿어질 뿐 현상이 사라지면 물거품과 허상으로 변할 뿐이다. 용이 춤을 춘 것을 보고도 그냥 영화한편을 본 것 이상이 되지 못할 뿐이다. 망각의 동물이 인간이기 때문이다.
결론은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절대 역사적 사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역사서나 만화책이나 다를 것이 없다 그냥 그런 일이 있었나 보다 하고 흥미거리 이상이 되지 못한다. 역사서가 인간의 마음에 변화를 일으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어떻게 예수를 구주로 받아들이는 것인가? 모두가 거짓을 말하는 자들인가?.역사적 사실을 믿고 예수님을 믿는 다고 말하는 자들은 역사적인 예수를 믿는 자들이지 현재 실제적으로 나타난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아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어떻게 된 일인가?.그들은 모두 과거의 역사를 믿는 자들인가?.아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믿음이란 과거를 믿는 것이 아니다 현재 일어나는 일 때문에 믿음이 오늘날에도 발생하는 것이다. 역사성만으로 믿음을 논한다면 이스라엘민족 외에 오늘날에는 복음이 전하여 지지 못할 것이다. 역사성만으로 복음을 전하고 그것을 믿게 한다는 것은 하늘과 세상을 좌지우지 하는 제우스나 헤라신을 믿는 것과 다를바가 없기 때문이다.
역사는 역사일 뿐이다. 지난 역사는 기독교인들에게 그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예수님의 역사성은 한낱 부질없는 허수아비였지만 예수님의 죽음으로 인하여 예수님의 약속대로 성령으로 임한다면, 그것은 역사가 아니라 현재성이다. 그러나 성령이 단 한번 나타났다 사라지는 일회성 강림이라면 그 또한 역사적인 일이 될 뿐이다. 역사성을 뛰어넘어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없는 일이 되려면 역사성을 넘어서는 초월적인 현상이 오늘늘에도 변함없이 이어져야 한다.
망각의 동물인 인간에게는 세상을 살아갈 동안 함께 하는 영적인 힘이 없다면 모두가 지옥자식이 될 뿐이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예수님의 영이 함께 하신다. 그것이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실제적으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날마다 자신이 지옥자식과 다를바 없는 벌레만도 못한 인생임을 고백하고 참화하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선한일을 해도 의롭게 산다해도 예수님 앞에서는 죄로 가득찬 자화상이 드러날 뿐이다. 육신을 가진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오직 주예수의 도우심 외에 없다는 것을 깨우치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영이십니다 라고 고백하는 이유는 예수님을 믿는 것은 육신적인 일이 아니라 영적인 일이라는 것을 주님이 가르쳐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그리스도인들은 절대 예수님의 역사성을 사실이라고 이방인들에게 주장하지 않는다. 하느님은 영이시기 때문이다. 성령의 복음을 전하는 것은 역사를 전하는 것이 성령의 가르침대로 따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과거를 고백하는 삶이 아니라 현재를 고백하며 살아가는 자들이 참된 그리스도인들이기 때문이다.
살려는 자는 죽고 죽으려는 자는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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