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중인 세계
글쓴이: 이근호목사
세상을 이해하고 분석하는 데는 죽음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죽은 자와 산 자를 분리시킨다. 죽은 자는 죽은 자들만의 세계로 간주해서
그들을 죽음의 세계로 밀쳐버리고, 산 자들은 산 자들만의 의견만 종합하면 된다고 여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에게 죽음을 짊어지어서 세상에 파견하셨다.
이로서 살고자 하는 자는 근원적으로 하나님에 대해서 무지한 자가 된다.
즉 이왕 사는 것, 바르게 살면 된다고 여기지만 이들은 혀 하나님에 대해서
전혀 아는 바는 없는 ‘우상숭배자’다.
바르게 산다는 것은 차라리 자신이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을 말한다.
그것도 조용히 죽음을 기다리는 방식이 아니다. 도리어 적극적으로 세상에 뛰어들어
자살하는 중이다.
청소년들은 좋아하는 가수에 빠져 자살하고, 젊은이들은 재벌들의
삶이 모델로 삼아 자살하고 있고, 중장년은 낭만에 빠져 자살하는 중이고,
늙은이들은 자신의 과거 추억에 빠져 자살하는 중이다.
더 큰 문제는 여기에 국한 되는 것이 아니다. 이 죽어감을 감추는 방식들로
세상이 온통 꽉 차게 된다는 점이다.
성공, 무슨 의미일까? 자신의 죽어감이 안 들키는 상황으로 꾸몄다는 말이다.
농부가 새로운 작물 재배로 올해는 큰 소득을 올렸다고 자랑하는 것이
자신의 죽어감을 교묘히 감추는 방식이다.
스타끼리 결혼하고 아들 낳았다는 연예계 소식에 잠시 흠뻑 빠지는 것도
그 순간만큼은 자신이 아직 살아있는 감이 들게 한다.
야당의 대여 투쟁은 세상을 두 패로 나누어 어느 한 패를 응원하므로 서
자신이 살아있다는 생동감을 준다.
희망, 그것은 절대로 이루어지면 안 된다. 꿈은 이루어지는 순간은 큰 비극이다.
희망이 순식간에 사라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꿈과 희망 자체를 계속 생산하는
길만이 아직도 자신이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유일한 처신이다. 죽어가면서
안 죽을 것처럼 위장하며 행세하는 이 피곤함. 이게 세상사는 피곤함이다
.
차라리 이미 죽어있기에 그 죽음만이 계속 이어짐을 믿자. 이게 현실이다.
산다는 것은 그 죽음을 증거하는 삶이다.
나의 죽음만이 아니라 모두의 죽음, 아담의 죽음, 그리고 그 안에서 발생된
하나님의 죽음까지. 모든 것이 죽음 안에서만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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