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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아버지와 아들....

by 골동품나라 밴드 리더 2005. 5. 4.

이모님의 아들이 장가를 간다고 하여 인천에 가게되었다. 어릴 때 한번 보았던 이모 아들은 장가갈만도 할만큼 늠름한 어른이 되어 잇었다.결혼식이 끝나고 친척들이 이모님집에 모였는데 92세된 외할아버지도 와 계셨다. 외할아버지는 점점 기억력이 떨어 지시는지, 사람들을 잘 알아 보지 못하였다. 오랜전부터 알았던 사람들은 기억을 하였으나 자주보지 못했던 사람들은 누구인지 모르는듯 아는체도 하지 아니했다. 내 아내도 할아버지가 자신을 알아 보지 못하는 것 같다고 하면서 서운해 하는 눈치였다. 만나기만 하면 너무도 반갑게 맞아주시던 할아버지가 태도가 돌변하여 고개를 갸우뚱 하시니 속이 상하는가 보다.

 

외할아버지의 얼굴과 손이 까많게 변해가고 있었다. 세포의 노화가 거의 이루어진 상태여서 그런 현상이 일어난 것이리라.. 혈관이 막히고 모든 기능이 제할일을 다한듯이 보이는 할아버지의 까많게 변한  몸을 보면서 인생의 희노애락의 편린들이 가루로 부서지는 느낌이 들었다. 얼마나 더 사실 수 있을까? 볼적마다 안쓰러움이 들지만, 나는 아무것도 해준것이 없다. 어릴적 할아버지가 우리집 식당에서 일을 하시며 함께 사셨을때 할아버지의 주머니를 몰래뒤져서  여러번에 걸쳐 돈을 훔친 기억밖에는 없다. 이제와 그 죄를 갚기 위해 용돈이라도 드리면 좋으련만, 내가 없다는 이유로, 살만큼 사셨으니 돈을 쓸곳도 없겠지, 그 핑계로  머뭇머뭇거리며 세월을 흘려 보낸다.

 

할아버지의 등뒤로 가서 목언저리를 두손으로 두둘겨 두렸다. 사람이 제명에 살지 못하고 죽는 이유중 가장 큰 이유는 혈관의 막힘이다. 혈관이 막히는 순간 모든 기능은 멈추고 세포는 살지 못하고 함께 죽는다. 나는 너무 연로 하셔서 더러워진 피를 빼드릴 수도 없으니 그나마 막혀 있는 혈관이 뚫려지기를 바라며 안마를 해드린 것이다.

 

한참을 그러고 있는데, 둘째 외삼촌이 다가오셨다. 그러더니 난데없이 할아버지에게 돈을 꿔달라고 하였다. 나중에 올 때 갚는다고 하면서.. 둘째 외삼촌은 대학까지 나온 인텔리다. 다른 여자자식들은 초등학교를 겨우 나왔을 뿐인데 그어려운 살림중에서도 특별히 공부를 잘하여 땅을 팔아서 대학교육까지 시켰던 것이다. 그런데 일생을 백수로 건들건들거리며 살고 지낸다.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외숙모님과 이혼을 하시고 자식들 중에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막내아들은 아버지가 살고 있는 집마저 차지하기 위해  이혼을 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재촉하였고 그 자식 덕분에 이혼까지 하게 되었다. . 

 

자식들이 아버지를 아버지로 여기지도 않고 쳐다보지도 않으니, 말년이 비참하기 그지없는 생을 보내고 있다. 아파트 경비원으로 지내는데, 애경사 부주금으로 받은 월급의 대부분이 다 나가는 처지이다. 자식들 결혼식 할 때는 몇천만원이 들어 왔느니 하면서 좋아 하시더니, 이제는 그 빚을 갚기에 벅차 숨이 가쁘신듯 하다.이모님의 아들에게 없는 형편에 부주와 폐백비까지 냈으니, 돈이 다떨어진 모양이다.

 

다 늙으셔서 이제 언제 돌아 가실지 모를 아버지 앞에서 돈 5만원만 꿔달라고 하는 모습을 보니 참 보기가  좋치 아니해서 눈길을 돌리고 싶었다. 외할아버지는 ' "돈없어" 하면서 꿔주지를 아니하려는 눈치였다. 매번 그런 일들이 생기다 보니 이제 자식을 믿지를 못하는가 보다. 그러자 외삼춘은 한번 보자고 하더니 주머니를 뒤져서 지갑을 꺼내어 열더니 " 십만원짜리 수표가 있네" 하면서 사람들에게 돈을 바꿔 달라고 하였다. 그런더니 5만원을 자신의 주머니에 쏙 집어 넣었다. 친척들의 찌푸져지는 얼굴들을 보면서 나는 인생이 참으로 비통한 것이 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런 모양새를 지켜보던 사람들이 그냥 관과할리가 없었다. 이모와 외삼춘들이 잠시 후에 술한잔 하면서 농담식으로 질책을 가한 것이였다. 그러자 자존심이 상하신 둘째 외삼춘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몇마디 하시고는 버럭 화를 내시며 벌떡 일어나서 집에 가신다면서 밖으로 나가셨다.내 차로 함께 가려고 하였기에 잠시후에 가자고 하였으나,막무가내였다.이모들에게 돈을 꿔달라고 해도 아무도 꿔주지 않자 [꿔준적은 있어도 갚은적은 없다고 이구동성으로 말씀 하신다.] 60이 넘은 자식이 90이 넘은 아버지의 지갑을 열어 돈을 빼내가는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아버지는 돌아가실 때까지 아버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은 새옹지마 일 뿐이데, 무엇을 위해 그토록 발버둥치며 사는지, 참으로 가련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인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