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더럽고 추하고 위선적인 인간이라는 것이 느껴지지 않는 순간이 바로 나의 죽음이 닥쳐오는 날이다. 내가 나의 추함과 더러움을 망각하는 날이 내 머리에 교만의 가증함만이 지배하는 순간이 될 것이다.나는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나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는 참으로 교만한 자로다.그러함에도 주님의 은혜를 느끼고 사니 참으로 모순된 삶을 사는 것 같지만 은혜에 감복하여 끊어 엎드리는 자가 될 수밖에 없다.그것은 나의 죄가 참으로 산보다 크고 우주보다 넓음이 속일 수 없는 사실이요 죽을 때까지 벗지 못할 육신의 허물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죄가 많음에 나는 은혜를 느끼고 죄가 많음에 오직 주님의 은혜만을 소망하는도다.내가 나의 죄를 주님의 은혜로 알게 되지 못햇다면 나는 아직도 나의 행위를 옳은 줄로 여기며 율법의 몽학선생에서 벗어나지 못햇음이 분명하다.그래서 주님을 위해 온갓 기도와 찬송과 설교를 들으려고 애쓰고 온갓 복을 달라고 아직까지도 기도하는 무지몽매한 바리새인으로 남앗을 것이다..나는 인간의 의지라는 것이 온갓 욕심의 포장뿐임을 알게됐다.나는 내가 주님의 은혜를 알아도 내 몸이 천사가 되는 것이 아님을 또한 알게 됐다.그래서 나는 죄인이면서 은혜에 감사하는 모순된 삶이 지극히 정상임을 깨달았다.
나는 죽을 때까지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고 사는 애통한 자로 지낼 것을 소망한다.나에게 애통이 끊기는 날이 주님의 은혜가 사라지는 날이요 주님에게서 매이는 고리가 끊기고 가증의 교만만이 육신을 지배하게 됨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세상사람들은 애통의기쁨을 모른다. 애통하는 자를보고 자책하고 열등감에 빠진자라고 말한다.그러나 애통의 기쁨을 안자는 알 것이다. 그것이 스스로 자원한 고난이 아니라 은혜로 느껴진 사실이라는 것을 ..나의 애통에 대해 고마워 할 수잇게 해주신 주님의 은혜에 한 없는 감사를 느낀다. 이런 크나큰 은혜에 감사하면서도 나는 온갓 위선과 추함과 더러움을 안고 사니 끊임없는 주에 대한 은혜의 갈급함을 소망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더러운 육신을 빨리 벗어 던지고 푼 마음이 드는 것이다. 육신으로는 살고 싶으나 하나님의 은혜앞에서는 빨리 죽고픈 마음이 드는 것이다.참으로 주님의 은혜는 신비한 비밀이다. 인간의 관점으로는 절때 알 수없는 기이한 일이다.기록된바 "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엿다" "오직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셧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사람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느니라."[고전 2장9-10절] 인간의 노력이 완전히 배제될 때 인간의 생각이 완전히 사라질 때 의로움인 주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이다.바울이 꺼꾸러진 후에는 모든 생각이 죄악뿐임을 알게되는 일이 벌어 졌듯이 살려는 생각도 구원받겟다는 생각도 수치의 정점임을 자각했을 때 주님의 은혜를 알게 되는 것이다.
바울은 주님을 알기 전까지는 자신의 부활을 굳게 믿고 잇엇고 구원을 확신 햇으며 하나님의 아들이 될 것이라고 자부 햇으며 하나님을 위해서 열심히 기도하고 찬송하고 주님의 말씀대로 산다고 자부하며 살던 아주 꿈이 많고 의욕이 넘치고 자신감 잇게 살던 사람이엿다.그런데 이같은 생각이 모두 죄악뿐임을 깨닫는 자가 되엇다. 만약 바울이 가지고 잇던 생각중에 단 하나라도 변하지 않은 것이 잇다면 단 하나라도 뒤바뀐 것이 없다면 바울은 바울이 아니라 사울로 남 앗을 것이다. 자기가 구원 받겟다고 염원해도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깨달 앗고 자신의 몸에서는 선한 행위라는 것이 애초에 손톱만큼도 나오지 않는 것을 주님의 은혜로 자각하게 된 것이다.
인간의 생각이 완전히 죄악으로 규정 되어야 주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이다. 바울이 주님의 은혜를 소망하지도 않앗는데 주님의 사도로 선택된 것에 의아심을 가져야 한다. 바로 이것이 인간의 노력이 허사임을 증명해 주는 것이다. 주님의 은혜는 인간의 노력에 의해 아루어지는 사실이 아니라 완전한 포기에서 일어나는 일이요 상한 심령에게 주어지는 주님의 은혜임을 알려주는 것이다.
죄인의 괴수에게도 임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완전한 포기자가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는 자책하고 열등감으로 보이겟으나 주님의 은혜만이 나를 살게 하는 힘이 됨을 알기에 어찌할 수 없는 십자가다.
무에서 유를 창조 하시고, 약한 것에서 강함을 무지한 자를 들어올려 인간의 유능과 지식의 교만을 훼파하신다. 이토록 죄인을 일으켜 세우는 주님의 은혜는 사실 너무도 강함을 느낀다. 그 강한 은혜앞에 나의 추악한 육신이 확연히 드러나니 부끄러워자복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주님의 은혜를 모른다면 겸손함은 자기 욕심의 한가지요 자기의 의를 내세우는 가증한 것일 뿐이다. 자기의 죄를 고백하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죽기보다 싫은 창피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사실 아주 미세한 죄를 가지고 고백할 뿐이다. 허나 주님 앞에서는 속일 수 없음을 잘 안다.사람의 눈치나 보며 사는 나의 이 초라한 몰골 앞에 참으로 부끄러워 해야한다.
진리 앞에서도 사람의 눈치때문에 할말을 못하는 내 자신의 모습이 참으로 부끄럽다. 그러함에도 이같은 추한 몰골을 깨닫게 해주시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와 부끄러움이 함께한다. 날마다 내 자신의 자아를 죽일 수잇게 죄를 깨닫게 해주시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교만한 인간이 바로 나이다. 참으로 모순된 삶을 사는 나이지만 성경이 온통 모순 덩어리임을 깨닫는다면 이모순이 성령이 임해야 폴리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은혜만을 이야기하면 교만 하다고 하고 죄만 이야기하면 자책한다고 한다. 죄와 은혜 이것은 내가 죽을 때까지 함께 품고갈 십자가이다. 교만이여 제발 내몸에서 떠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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