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가롯유다를 생각할 때에 굉장히 나뿐 인간으로 치부하는 경우를 많이본다. 마치 가롯유다는 온갓 욕을 먹어도 싸다는 식으로 단정지어 말한다.
가롯유다를 아주 사악한 존재로 만드는 일에는 조금도 양심의 가책을 느까지 않으면서 일반 삯꾼 목사나 간음 목사나 세습목사를 대할 때는 아주 조심스럽게 대한다. 하나님의 종을 함부로 비판하지 말라고 말한다. 최대한 존중해주는 것이 주님의 사랑이라는 듯이 말한다.
잘못이 잇어도 감추어 주는 것이 미덕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왜 가롯 유다를 말할 때는 사악한 자의 표본처럼 말하는가? 왜 이단자들을 말할 때에는 구제불능인것처럼 함부로 말하는가? 예수님이 보시기에는 분명 우리들이나 가롯 유다나 별반 차이가 없다.
돈의 유혹에 넘어간 것 뿐이다. 돈의 유혹에 넘어간 자나 여자의 유혹에 넘어간자나 부의 변명에 넘어간자나 세습의 유혹에 넘어간자나 거짓 복음에 넘어간자나, 자기 자랑의 유혹에 넘어간자나 모두가 하나같이 가롯유다와 별다를바 없는 인간들이다.우리는 우리 자신을 가롯 유다보다 나은 인간으로 스스로 높일 필요가 없다. 우리는 가롯유다와 하등차이없는 열린무덤이요, 사악한 존재요 죄인의 괴수일 뿐이다.
이처럼 더러운 자신의 내면을 십자가의 은혜로 비쳐본 자는 인간을 위로하거나 인간의 죄를 감추려는 짓을 하지 않는다. 인간에게서는 선한 것이 나올 수없음을 깨닫기 때문이다. 가롯유다와 별다를것이 없는 추한 인간이지만 인간에게서 나오는 추한 죄를 드러냄으로 주님의 은혜를 높인느 것이다.
인간의 치부를 드러내어 그 사람을 매장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그 거짓 목사나 거짓 교인들이 그 불의와 거짓 복음과 목사의 우상에서 벗어나 참으로 인간을 조금도 의지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림으로 오직 주님만을 의지 하도록 하고자 함이다. 내 자신이 바로 가롯 유다와 별반 차이없는 추한 존재임을 사실로 고백하고 날마다 죽는 인간이 되는 것이 십자가의 길이다.
교회를 본존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목사를 보호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죄를 감추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주는 의지하는 자가 아니라 인간에게서 무엇을 얻어내겠다는 발상을 하는 심보일 뿐이다. 더러운 인간에게서 무엇을 바라리료. 오직 주님의 은혜속에서 하루하루 사는 것을 만족하는 것밖에 무엇을 더바란단 말인가?
살겟다는 욕심을 버리지 못하니 인간의 죄를 옹호하는 일에 매달리는 것이다. 추하고 더러운 죄를 지엇으면 죽기를바라고 지옥가야 마땅하다고 화개해야 할 것이 아닌가?사람이 두렵고 명예를 잃는 것이 두렵기 때문에 죄를 감추는 것이 아닌가?차라리 사람들에게 죄를 고백하지 못하고 차마 양심은 있어 목매달아 죽은 가롯유다가 죄를감추고 변명으로 일색하고 죄를 옹호하는 동조하는 자들보다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진정 가롯 유다보다 못한 존재로다. 차라리 나지함만 못한 추악한 인간들을 살리시는 것은 가롯유다보다 잘나서가 아니라 자신의 추한 죄를 자각하려는 자의 통회하는 심령 때문인 것이다. 그 때문에 주님의 은혜가 두렵고 놀라운 것으로 느껴지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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