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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교회신앙

목사를 찾아 떠도는 교인들....

by 골동품나라 밴드 리더 2003. 6. 17.

그리스도인은 주님만을 의지해야 하는 존재임을 교인이라면 누구라도 아는 사실이지만 그 실천은 극히 미미하다.목사가 없으면 하루라도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고 접어야 하는 줄로 아는 자들이 많다.. 자신이 주의 종으로서의 삶을 사는 것이 당연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목사라는 존재에게 일임하고 간편한 신앙을 하겠다는 의타심은 아닐런지.. 누구라도 쉽고 편하고 안락한 삶을 원한다.

그리스도인도 예외는 아니다. 나또한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훌륭한 목사나 존경받는 목사라고 할지언정 겨자씨만도 못한 믿음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인간은 스스로 믿음을 향유할 수없는 더러운 육신의 옷을 덧입고 잇기 때문이다.. 이 어찌 할 수없는 육신의 초라한 몰골을 보며 인정하고 살아야 하건만 인간을 무슨 대단한 자로 추켜 세우고 믿음이 대단한 자로 숭상하니 그것이 미신이 되는 것이다.

목사란 자신의 죄인됨을 누구보다 사실적으로 고백하고 자신을 우상시 못하게 하고 오직 주님의 은혜만을 소망하고 의지 하도록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

현재의 한국교인들은 두패로 갈라진다. 교회와 목사를 우상으로 떠받드는 기복신앙자들과 이같은 부끄러운 일에 차마 양심상 참여치 못하고 더 나은 목사 더 괜찮은 목사를 찾아 떠돌아 다니다가 정착한 자들이 있다.

기존 교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보고 회의를 느껴 새로운 교회에 정착을 하였지만 여기에도 큰 맹점이 있다. 만약 내가 이 교회의 목사를 의지하지 않고는 신앙을 할 수없는 존재라면 내가 의지하는목사보다 더 복음적이고 개혁적인 교회가 나타날때에 어떤 태도를 견지하겠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에 내가 믿고 따르던 [주님이외에 믿고 따를 것은 결코 없다.]목사님보다 더 나은 목사님이 계신다는 소식이 내 귀에 들려 온다면 어찌 할까 하는 것이다. 이제껏 알던 훌륭한 목사님[?] 보다 더욱 은혜로운 복음을 전하는 그 목사의 등장으로 내가 의지하던 목사님의 설교가 예전에 환멸을 느껴 등지고 나왔던 목사들의 별볼일 없는 설교로 전락한다면 어찌 될까 하는 것이다.

내가 이런 가정을 상정하는 이유는 사람이 목사를 의지해서는 결코 만족이 나올 수가 없으며 기껏해야 상대성일 뿐이라는 것이다. 목사에게서 은혜를 받겠다는 발상 자체가 크나큰 우상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언제까지 더 나은 목사의 향내를 쫒아 발길을 옮기는 떠돌이로 살아갈 작정이냐는 것이다.


이런 떠돌이 인생이요,율법안에서의 소경된 삶을 진리의 자유로운 인생으로 바꾸어 주신 분이 주님이시건만 다시금 목사라는 제사장에게 매달리고 교회의 제도라는 것에 온 정신을 집중하려 하니 이런 모습을 보고 바울이 "율법의 초등학문으로 되돌아 갔느냐"[갈라디아서4장9절] 호통친 것이다.그리스도인들은 오직 주님이 주시는 영의 양식을 먹고 사는 자들이다.[요한복음 6장54절]

특정한 자가 선생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선생이 되어 각지체들이 느끼고 체험한 신앙고백들이 모이고 어우러져 주님의 형상을 또렸하게 나타내고 이루어 나가는 것이다. 어떤 목사님이라도 홀로 완벽한 형상을 이룰수는 없다. 다른 지체들에게 목사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배우고 또한 다른 지제들은 목사님께 배우는 것이요, 그러므로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함께 주님의 형상을 이우러 나가는 것이다.

각자의 사역이 다르고 은사가 다를뿐 똑같은 주님의 지체다. 베드로가 바울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며 바울이 베드로를 가르치는 입장에 서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권면하고 교제하며 배우는 은혜를 고백하는 곳이 교회를 이루어 나가는 것이다.이런 상태가 되기 위해서는 목사의 설교에 중독되어 인스턴트식 신앙을 해서는 안되며 오직 주님의 은혜를 입어 주님의 피와 살을 직접 받아 먹을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하며 목사만을 기대하지 말고 오직 주님의 은혜안에서 산돌이 되어 신령한 교회를 이루어 나가도록 각자가 제사장이 되기를 소망해야 한다...

한국교회가 잘못 이해하고 받아들인 교회제도와 형식 율법주의에 나또한 빠져서 허우적 대던 인간이다. 참으로 삼키기 힘들어 거부의 몸짓을 보이던 내가 그 쓴 말을 내뱉고 있으니 참으로 부끄러운 나의 자화상을 고백하는 것이다.

주님이 주시는 영의 양식은 목사나 평신도나 똑같다.주님이 만드신 지체를 나누어 차별적 요소를 발생시키는 일은 잘난체를 하고픈 인간의 허영심에서 비롯된 악의 부산물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