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그리스도인
기독교인이 자연보호에 더 앞장서야 하는 이유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을 아끼고 자연의 고귀함과 소중함을 일찍이 깨달은 민족들은 산에 자생하는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를 함부로 꺾는 것을 용인하지 않습니다. 자연을 자신들의 세대에 실컷 이용하여 순간적인 부를 누려야 한다는 철부지 같은 생각을 하지 않고, 당장은 큰 소득이 없으나 오래오래 보존하고 아낀다면 그 자연이 주는 값어치가 후손들에게는 상상을 초월하는 막대한 이익을 준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자연을 아끼고 소중히 생각하는 이들 아름다운 나라들은 자동차가 늘어났다고 함부로 산을 깎고 바다를 막아 도로를 만들지 않습니다. 이들은 인간의 욕심이 끝이 없다는 것을 잘 압니다. 때문에 도로를 아무리 크게 만들어도 머지않아 다시 도로는 예전처럼 자동차로 가득 차고 꽉 막힌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리하여 몇 백년이 지나도록 도로를 넓히지 않고 마을 그 자체를 고이고이 간직하고 특색있는 문화가 보존되도록 지켰습니다.
당장의 불편이나 이익을 위하여 함부로 도로를 개설하거나 마을을 수장시키거나 바다를 없애 버리지 아니합니다. 오히려 현대문명의 이기가 사람들을 피곤케 하거나 사람들과의 불신을 조장하지 않도록 옛날의 문화와 전통을 고수하고 이용하도록 애를 씁니다. 마을길은 몇 백년이 지나도록 변함이 없건만 이들은 도로가 막힌다고 한탄하거나 성질을 부리거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그 불편함을 해소하는 것이 오히려 인생의 참맛을 잃게 하고 사람들과의 정을 단절시키며 느림의 미학을 망각하게 하여 마음을 빨리빨리식 속물근성으로 조급하게 만든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이들 관광문화국들은 자연이 주는 안식과 평화 그 끝없는 천혜의 행복을 만끽하고 사는 민족들입니다.
우리나라도 처음에 막무가내식 개발만 하지 아니했더라면 현재까지도 금수강산을 보존하며 관광 수입만으로도 사는데 불편하지 않았을 지도 모릅니다. 설령 부자나라가 되지는 아니했을지라도, 마을마다 가진 특색과 경치 문화의 다양성을 느끼고 호흡하며 서로를 보듬어 안고 이해해 주는 인심이 넉넉한 나라로 지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가진 자들의 더 많이 가지려는 개발논리 앞에 무지하고 힘없는 가난한 사람들은 언제나 희생양이 되었으며, 결국은 서로를 불신하고 미워하는 이기주의만이 나라 안에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만약에 경제발전의 속도를 조금만 늦추고 환경보호를 최우선 순위에 두고 개발을 해나갔다면, 우리나라는 천혜의 비경과 깨끗한 물을 간직한 관광대국이 되었을 지도 모르며, 국민간의 불신이나 적대감 빈자와 부자의 냉소적 감정은 크게 발생하지 않았을 지도 모릅니다.
지금처럼 잘 살지는 못할지언정 자급자족하면서 우리 한민족이 함께 어울려 살며 우리는 하나라는 두레공동체적 마음은 지금처럼 산산이 부서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자연이 파괴되는 그 양만큼 사람의 마음은 속물근성으로 변하거나 이기주의로 치닫게 되는 것을 현대의 자본주의 국가들을 보면서 깨닫고 우리들의 모습을 보면서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인들은 더더욱 자연보호에 앞장서야 합니다.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이 먹이신다는 것을 진정 느낀다면 하나님의 섭리대로 움직이는 자연을 함부로 파헤치거나 멸망시켜서는 안됩니다. 그같은 일에 우리 기독인들이 앞장서거나 동조하는 일은 더더욱 안됩니다. 이 지구는 인간들의 탐욕으로 환경이 파괴되어 언젠가는 멸망할 것이라고 많은 과학자들은 내다보고 있습니다.
지구의 멸망의 시기를 얼마나 늦추느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을 뿐입니다. 우리 기독인들조차 개발이익을 얻어 부를 누리려는 가진 자들의 횡포에 세뇌되거나 이용당해서는 안됩니다. 순간의 이익 때문에 영원토록 지켜지도록 해야 할 지구를 멸망시키는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영혼을 전도하는 것이 중요한 듯 하지만 인간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지구를 생각해 본다면 과연 지구를 지키고 자연을 보호하는 일이 한 영혼을 구원하는 일 못지않게 소중하고 값진 일임을 깨달을 것입니다. 지구가 환경파괴로 멸망하지 않는다면 주님의 은혜에 의해 구원받을 자들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것입니다.
아담에게 세상을 다스리라고 한 것은 함께 공존공생을 하며 살라는 것이었지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물을 멸종시키라고 한 것은 분명 아니었습니다. 아담이 범죄하매 자연을 다스릴 수 있는 혜안을 잃어 버렸을 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잃어버린 자에게 자연이 함께 공존할 대상이 아니라 한낱 자신을 위한 이용물로밖에 비쳐지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은 이 세상의 자연 하나하나에 하나님의 깊은 뜻이 숨겨져 있음을 깨달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영원히 말살하려는 근시안적 사고 속에서 행동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자와 뱀이 어울려 뛰어 놀고 개와 고양이가 입맞추고 온 세상 동물들이 함께 어우러져 하나님을 찬양하고 노래하는 세상이 되도록 자연을 자연 상태로 되돌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의 깊은 뜻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지구의 멸망 속도를 늦추는 일이야말로 가장 큰 전도요 복음 전파라고 생각합니다.
기독교인이 자연보호에 더 앞장서야 하는 이유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을 아끼고 자연의 고귀함과 소중함을 일찍이 깨달은 민족들은 산에 자생하는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를 함부로 꺾는 것을 용인하지 않습니다. 자연을 자신들의 세대에 실컷 이용하여 순간적인 부를 누려야 한다는 철부지 같은 생각을 하지 않고, 당장은 큰 소득이 없으나 오래오래 보존하고 아낀다면 그 자연이 주는 값어치가 후손들에게는 상상을 초월하는 막대한 이익을 준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자연을 아끼고 소중히 생각하는 이들 아름다운 나라들은 자동차가 늘어났다고 함부로 산을 깎고 바다를 막아 도로를 만들지 않습니다. 이들은 인간의 욕심이 끝이 없다는 것을 잘 압니다. 때문에 도로를 아무리 크게 만들어도 머지않아 다시 도로는 예전처럼 자동차로 가득 차고 꽉 막힌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리하여 몇 백년이 지나도록 도로를 넓히지 않고 마을 그 자체를 고이고이 간직하고 특색있는 문화가 보존되도록 지켰습니다.
당장의 불편이나 이익을 위하여 함부로 도로를 개설하거나 마을을 수장시키거나 바다를 없애 버리지 아니합니다. 오히려 현대문명의 이기가 사람들을 피곤케 하거나 사람들과의 불신을 조장하지 않도록 옛날의 문화와 전통을 고수하고 이용하도록 애를 씁니다. 마을길은 몇 백년이 지나도록 변함이 없건만 이들은 도로가 막힌다고 한탄하거나 성질을 부리거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그 불편함을 해소하는 것이 오히려 인생의 참맛을 잃게 하고 사람들과의 정을 단절시키며 느림의 미학을 망각하게 하여 마음을 빨리빨리식 속물근성으로 조급하게 만든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이들 관광문화국들은 자연이 주는 안식과 평화 그 끝없는 천혜의 행복을 만끽하고 사는 민족들입니다.
우리나라도 처음에 막무가내식 개발만 하지 아니했더라면 현재까지도 금수강산을 보존하며 관광 수입만으로도 사는데 불편하지 않았을 지도 모릅니다. 설령 부자나라가 되지는 아니했을지라도, 마을마다 가진 특색과 경치 문화의 다양성을 느끼고 호흡하며 서로를 보듬어 안고 이해해 주는 인심이 넉넉한 나라로 지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가진 자들의 더 많이 가지려는 개발논리 앞에 무지하고 힘없는 가난한 사람들은 언제나 희생양이 되었으며, 결국은 서로를 불신하고 미워하는 이기주의만이 나라 안에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만약에 경제발전의 속도를 조금만 늦추고 환경보호를 최우선 순위에 두고 개발을 해나갔다면, 우리나라는 천혜의 비경과 깨끗한 물을 간직한 관광대국이 되었을 지도 모르며, 국민간의 불신이나 적대감 빈자와 부자의 냉소적 감정은 크게 발생하지 않았을 지도 모릅니다.
지금처럼 잘 살지는 못할지언정 자급자족하면서 우리 한민족이 함께 어울려 살며 우리는 하나라는 두레공동체적 마음은 지금처럼 산산이 부서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자연이 파괴되는 그 양만큼 사람의 마음은 속물근성으로 변하거나 이기주의로 치닫게 되는 것을 현대의 자본주의 국가들을 보면서 깨닫고 우리들의 모습을 보면서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인들은 더더욱 자연보호에 앞장서야 합니다.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이 먹이신다는 것을 진정 느낀다면 하나님의 섭리대로 움직이는 자연을 함부로 파헤치거나 멸망시켜서는 안됩니다. 그같은 일에 우리 기독인들이 앞장서거나 동조하는 일은 더더욱 안됩니다. 이 지구는 인간들의 탐욕으로 환경이 파괴되어 언젠가는 멸망할 것이라고 많은 과학자들은 내다보고 있습니다.
지구의 멸망의 시기를 얼마나 늦추느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을 뿐입니다. 우리 기독인들조차 개발이익을 얻어 부를 누리려는 가진 자들의 횡포에 세뇌되거나 이용당해서는 안됩니다. 순간의 이익 때문에 영원토록 지켜지도록 해야 할 지구를 멸망시키는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영혼을 전도하는 것이 중요한 듯 하지만 인간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지구를 생각해 본다면 과연 지구를 지키고 자연을 보호하는 일이 한 영혼을 구원하는 일 못지않게 소중하고 값진 일임을 깨달을 것입니다. 지구가 환경파괴로 멸망하지 않는다면 주님의 은혜에 의해 구원받을 자들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것입니다.
아담에게 세상을 다스리라고 한 것은 함께 공존공생을 하며 살라는 것이었지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물을 멸종시키라고 한 것은 분명 아니었습니다. 아담이 범죄하매 자연을 다스릴 수 있는 혜안을 잃어 버렸을 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잃어버린 자에게 자연이 함께 공존할 대상이 아니라 한낱 자신을 위한 이용물로밖에 비쳐지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은 이 세상의 자연 하나하나에 하나님의 깊은 뜻이 숨겨져 있음을 깨달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영원히 말살하려는 근시안적 사고 속에서 행동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자와 뱀이 어울려 뛰어 놀고 개와 고양이가 입맞추고 온 세상 동물들이 함께 어우러져 하나님을 찬양하고 노래하는 세상이 되도록 자연을 자연 상태로 되돌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의 깊은 뜻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지구의 멸망 속도를 늦추는 일이야말로 가장 큰 전도요 복음 전파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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