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보면 축복이란 말이 많이 나온다. 모든 것을 빼앗겼던 욥이 다시 축복을 받아 처음 복보다 더 하게 하셨다.그런데 이같은 복이 과연 진정한 복일까?
처음보다 나은 복을 받았다는 말자체가 이상하게 들린다는 느낌이 생기지 않을까?
나의 가족이 전부 죽임을 당한 아픈 상처의 기억이 있건만 과연 진정한 복이라고 볼 수잇을까? 또한 새로 생긴 가족들과 언제나 히히낙낙 행복의 미소만이 가득한 삶이 될 수잇을까? 하나 둘 나이가 들어 죽음을 맞이하고 결국에 헛되고 헛된 삶이라는 사념에 빠져 들것이 뻔한 사실일진대 왜 하나님은 욥을 예로 들어 복을 이야기 하는 것일까?
만약에 욥의 이야기가 단지 인간사의 행복을 이야기 하는 것이라면 헛되고 헛된 한줌의 흙과같은 인생차원을 이야기 하는 수준을 벗어날 수없는 것이다. 욥기의 복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을 암시하는 것이다.
즉 세상것을 모두 빼앗기고 주님의 은혜가 임한 후에야 참된 복이 올 수있다는 것을 예시하는 것이다.세상것이 모두 오물로 인식되어 지는 그 은혜의 가치관이 임한 후에야 진정한 복이 임한다는 것이다.
구약에서의 모든 복은 바로 에수님을 증거하는 것이다.[요한복음5장39절]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복도 예수님이요, 성경에 쓰여진 복의 개념은 모두 예수님 그 자체만을 나타내는 것이다.그런데 이런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한 자들은 성경의 역사를 한국사적인 역사관에 대입시켜 말하고 잇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십일조를 잘하고 교회가 많이 생기고 전도를 잘하여 기독인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덕분에 이나라가 잘먹고 잘살게 되었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이 얼마나 한심한 기복론인가?성경에서의 복은 결코 물질이 아니다. 결코 물질과 연계 시킬여지가 없다.
물론 구약에서의 축복의 개념은 물질로 나타난 적이 많다 허나 이것은 결국엔 예수님 그자체로 귀속되어진다.예수님의 복을 암시하기 위한 예표일 뿐인데 문자에 얽매인 자들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단순하게 물질의 복을 구하는 자들이 된 것이다.
임마누엘이란[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말이 얼마나 놀라운 말인가?하나님을 보면 모두가 죽음을 면치 못하는 처지가 인간의 죄된 모습이 아니던가? 이런 더럽고 추한 인간에게 감히 의로우신 하나님이 임하겠다고 하시는데 도대체 더 무엇을 바란단 말인가?
축복이란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 그 하나밖에 없다. 은혜의 축복을 받은자는 가난해도 부해도 살아도 죽어도 축복의 은혜속에 사는 자이다. 이 사람들은 그 때문에 세상것을 가지고 축복을 받았다 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축복인데 단지 부해진 것을 가지고 축복이라고 말하거나 병이 나은 것을 가지고 축복이라고 하지 않는다. 병들어 죽어도 축복이요, 벼락을 맞아도 축복이요, 가난해서 굶어 죽어도 축복이요, 차에치여 죽어도 축복이라고 여긴다.
세상에서의 소꼽놀이에서 아무리 좋은 직위와 많은 재물과 자손의 축복을 받은들 그것이 헛되고 헛된 것이라는 사실이 믿어져서다. 오직 주님의 은혜가 함께 하는 것 그것만이 축복이라는 사실을 느끼는 자가 그리스도인이다.나약한 육신이 쉼없이 헛된것에 눈을 돌리기에 애통과 자복의 심정이 날마다 되지만 이런 파렴치하고 몰지각한 인생에게 오직 십자가의 은혜만이 가장 큰 축복임을 깨닫게 해 주시는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은 안개와 같이 사라지지만 오직 주님의 십자가의 피의 은혜만큼은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기를 빌며 사는 자가 그리스도인이다...빛이 임하면 사라질 안개를 소중히 여기고 축복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에게 유일하신 참된 빛이신 주님을 전하는 것이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세상과 하나님은 차원이 다른 것이다. 같은 속성으로여기려는 시도는 세상것을 놓치지 않으려고 힘쓰는자들의 본능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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