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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파도리를 다녀왔다...

by 골동품나라 밴드 리더 2006. 3. 27.

불혹의 나이를 넘어서면서 부터, 뜻모를  슬픔이 자주 밀려 오기 시작했다. 그 때부터 였을 것이다.이 도시를 떠나자 라는 노래가 내 마음을 사로 잡기 시작하던 때가....벗어나고 싶었다. 살벌한 도시, 씨끄러운 경적소리를 뿜고 달리는 자동차와 바람을 모두 막고 사방팔방을 가려 버린 아파트가 내 목을 조여 오기 시작한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약육강식의 피터지는 생존경쟁속에 내몰려진 내 모습이 사자가 먹다남긴 고기부스러기를 주어 먹기 위해 눈치를 보며 어슬렁 거리는 하이에나가 바로 나라는 것을 느끼고 비참한 내 몰골에 진져리를 치기 시작했다..

 

스스로를 바라보는 내 모습이 구역질 나도록 보기 싫어 져서 이제는 이 삭막한 도시를 벗어나서 조용한 바람과 소근대며 남은 생을 살고지고 싶었다. 그런 마음이 강열할 즈음에 파도리 이야기가 방송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초등학생이 없어 폐교될 처지에 놓인 파도리 마을 주민들이 학교를 살리기 위해 초등학생을 데리고 파도리로 이사를 오면 집도 주고 5년이상 거주해야 인정해 주는 어업권도 준다는 것이였다. 가고 싶었다. 아내에게 가자고 하였다. 그리하여 엊그제 파도를 직접 가보았다. 고추장사를 하면서 파도리 바로옆 모항이나  만리포쪽까지는 자주 갔는데 엎어지면 코닿을 만한 곳인 파도리는 처음이였다.

 

바다는 곱디고운 옥돌이 해변에 가득널려 있었다. 자동차 사고가 난후 부터 추위를 무척타는 아내는 더시 되돌아가고 나만 홀로 해변을 거닐었다. 그리고 함께 식당에 들어가서 회를 한접시 시켜 먹었다.. 상당히 부담가는 돈이였지만, 한번쯤은 아내에게 사주고 싶었다. 직접 잡아서 파아서 싸다고 하는 어느 할머니의 말을 믿고 들어 갔는데 그것이 아니였다. 고민고민 하다가 그냥 나올수가 없어서 아내를 사준다는 마음으로 시켜 먹었다.

 

그곳식당의 주인은 학생을 데리고 얼마전에 파도리에 정착한 사람이였으며  그사람과 함께 어떤 내외가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그들도 학생 셋을 데리고 파도리에 와서 살기 시작한지 얼마 안되는 사람이였다. 그들에게 물어 보니 언론에서 보도한 내용대로 집을 거져 마련해 주는 것이 아니라 집장만은 자신들이 해야 하는 것이였다. 집도 꽁짜라는 말을 하지 말라고 몆번에 걸쳐 말했지만 방송국은 공짜로 집을 준다고 방송을 하였다는 것이다.

 

 

또한 파도리에 와서 어업일만을 해서는 생활이 될수가 없다는 것이였다. 자기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하면서 어업은 부업으로 해야 안정된 생활을 할 수가 있다는 말을 하였다. 골치아픈 도시를 벗어나서 바닷가에 가서 조용히 살고지고 싶은데 어디를 가나  산느 것이 녹녹치 않은 곳은 없는가 보다..

 

나는 이제 오랜 장고를 해햐 할것이다. 어떤것을 선택할지는 아직도 미지수이지만, 도시를 떠나고픈 내 소망은 도시를 떠날 때까지 변함이 없을 것이다. 떠난다면 내년봄에 갈작정이다.. 아내는 그곳이 오히려 더 답답하게 느껴진다고 말을 하니   그말을 듣는 내 마음이 어두어 지는 것이다..

 

 

떠날까 말까?... 잘 모르겠는데요....세월이 정답을 이야기 해 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