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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희 신앙컬럼

반론 이성권님의[좀 더 순화된 언어사용을]읽고

by 골동품나라 밴드 리더 2006. 8. 23.
반론 이성권님의[좀 더 순화된 언어사용을]읽고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외친것은 세례 요한 이였습니다. 또한 선지자들도 그 시대적 상황에 맞추어서 단어를 선택했습니다. 무조건 부드러운 단어만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오히려 올바른 견해가 아닙니다. 예수님이기 때문에 정죄와 독설을 하실수 있고 예수님의 제자와 선지자들이기에 정죄와 비판을 할 수 있다는 말은 어불성설입니다.

실생활에서 인간이 사용하는 단어라는 것은 특별난 것이 없습니다. 언제나 거기서 거기이죠.. 이성권님이 "성도의 글속에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엿볼수 있어야 " 라는 글 자체가 오히려 예수님을 흉내 내려는 위선은 아닌가 되돌아 보아야 합니다.

강도높은 단어를 사용하면 예수님 흉내이고 순화된 단어를 사용하면 예수님 흉내가 아니라는 말 자체가 자기 모순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누구든지 자기 마음에서 나오는 대로 할말을 하라고 주장하고 싶습니다.[물론 욕설같은 비상식적이고 비도덕적인 것까지 마음에 내키는대로 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이 위선으로 가득찬 자신을 감추고 광명한 천사로 위장하는 거짓됨을 하지 않는 일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어떤 단어를 사용하느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그 사람이 참된 복음을 전하는가 아닌가로 판단하는 것이 옳습니다.. 부드러운 단어가 들어가야 하는 곳에서는 부드러운 단어를 채용해야 하고 강도높은 단어가 필요한 곳에는 강도높은 단어가 필요합니다.

그 문제는 글을 쓰는 사람의 개성이나 주관 사상에 맞기는 것이 옳은 것이지 나의 기준으로 말을 하는 것을 정당한 일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나는 언제나 아름답고 멋진 풍경을 주제삼아 보기에 좋고 부드러운 그림을 그리는데 왜 당신은 파격적이고 강하고 사회를 비판하는 충격적인 그림을 그리느냐고 따지는 사람과 마찬가지의 논조라는 것이지요.모두가 똑같은 그림을 그리는 것을 날마다 구경하는 것처럼 고통스런 일은 없습니다.

국회의사당에 평상복을 입고 국회의원 선서를 하려는 유시민 위원에게 왜 양복을 입지 않고 나오느냐, 국회위원의 형상과 품위를 유지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 하고 따지는 것과 마찬가지 라는 것입니다.

모든 기사가 이성권님과 똑같은 심정과 시각에 맞추어서 쓰여진다면, 더 이상 이곳을 찾을 사람은 없게 되겠지요. 거룩한 모양새를 유지하느라 모두가 똑같은 기도 똑같은 설교 똑같은 행세를 하는 목사들을 보면서 불신자들은 교회라는 울타리는 거들 떠도 보지 않게 되지요.

자식을 사랑한다는 모습만을 보여주기 위해 언제나 부드럽고 사랑이 넘치는 말만 한다면 자식이 어찌 되겠습니까? 매를 들고 엄하게 야단치는 부모님이 밉고 그 순간에는 야속하고 사랑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어 보이지만, 그 훈계와 매,엄한 가르침이 아이를 철들게 만드는 아주 소중한 것이 되기도 합니다.

글이 잘못되었으면 그 잘잘못을 지적하는 것이 옳은 일이지, 나의 기준을 근거로 글에 사용한 단어를 가지고 문제를 삼는 것은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올바른 주장과 처사가 아니라고 봅니다.




*** 이성권님의 기사전문********

좀더 순화된 언어 사용을..
성도의 글 속에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엿볼 수 있어야
이성권 skl4239@paran.com

당당뉴스가 추구하는 것은,
가능하면 원고를 수정하지 않고, 기사를 쓴 사람의 뜻하는 바를 그대로 전달하겠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장점이 될까? 아니면 단점이 될까? 물론 모든 것에는 장단점이 함께 합니다. 그러나 장점이 더 크게 나타나도록 제도의 틀을 만들어가야 하겠지요. 이런 의미에서 당당 뉴스가 추구하는 바가 장점이 더 클까? 단점이 더 클까? 이 또한 쉽게 결론이 날 수 없는 것은 각자 나름대로의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봅니다.그러나, 좀더 순화된 언어를.. 당당 뉴스의 기사를 대하며,그 제목부터가 조금은 자극적이고 격하고 거친 표현이 아닐까 하는 느낌을 가질 때가 많습니다. 왜? 그렇게 표현해야 할까.... 물론 눈길을 끌고 조회 수를 올리는 효과는 있겠지요. 사실은 이런 것 때문에 기사의 제목을 자극적으로, 특히 인터넷 언론 매체에서는 될 수 있는 대로 자극적인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그러나, 당당 뉴스는..
인터넷 매체이기는 하나 일반 매체와는 달리 복음을 담고 있는 기독교 매체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고,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나가야 한다는 큰 목표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기사를 쓰시는 분이나, 기사화시켜 당당 뉴스에 올리는 운영진에서 이 점을 잊지 말아야 된다고 봅니다. 물론 각자 나름대로의 생각으로 자극적이고 격하고 거친 표현의 기준이 달라질 수 있다고도 봅니다. 그러기에 운영진의 판단이 심사숙고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담은 글 당당 뉴스는,
이런 저런 글과 기사로 이루어지지만, 결국은 복음을 전파하는 데 그 목적이 있으리라 봅니다. 다시 말해서 복음을 담은 글입니다. 복음은 복된 기쁜 소식으로, 자극적이고 격하고 거친 표현으로 이루어지는 복음이 아니지요. 물론 "독사의 자식들아"도 있습니다. 인간의 타락이 「하나님처럼」 되려던 것에서 왔습니다. 예수님 흉내내고, 「예수님처럼」 되려는 것에서 과연 복음이 나올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예수님이 될 수 없다면, "독사의 자식들아"를 외치며, 이것이 복음이라고 정당화를 꾀할 수 없다고 봅니다. 예수님이 "독사의 자식들아" 했다고 해서, 나도 "독사의 자식들아"하고 외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담은 글 당당 뉴스는,
이런 저런 글과 기사로 이루어지지만, 결국은 예수 사랑을 전파하는 데 그 목적이 있으리라 봅니다. 다시 말해서 당당 뉴스의 글 속에는 예수 사랑이 소복이 담겨져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 사랑을 엿보기 어렵고 오히려 「예수쟁이 지나 내나」가 되는 모습이 되어서는 안되리라 봅니다. 형제를 사랑하는 모습보다는 오히려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는 모습으로 비쳐질 수 있는 표현은 걸러질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담은 글
당당 뉴스는,
이런 저런 글과 기사로 이루어지지만, 결국은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 땅에 이루어가고자 하는 데 그 목적이 있으리라 봅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갈려면 우선 그리스도의 형상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그리스도의 형상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야 하구요.
당당 뉴스의 글 속에서,
과연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보여주고 있는가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몇 몇 글들은 제목에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보다는 타락한 세상 속의 인간상을 느끼게 되는 것은 저만의 느낌일까요? 그렇다면 다행이겠지요. 그러나 다른 분들도 이런 느낌을 가지게 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제대로 담지 못한 글들이 있다는 것이니, 이 점을 운영진은 좀더 심사숙고해야 하리라고 봅니다.

결론
저만의 느낌인지 모르겠습니다.
몇 몇 글들은 자극적이고 격하고 거친 표현으로 좀더 순화된 언어를 사용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지난날 게시판의 토론을 통해서 언어의 순화를 촉구하니, "독사의 자식들아"를 말하며, 아무나 하면.... 흉내는 것이고 「예수처럼」이 되어 욕이 되지만, 자신은 예수화되어 있기에 "독사의 자식들아"가 욕이 아니라 복음이라고 했었지요.

이런 사람을 착각 속에 빠져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착각 속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것을 봅니다. 각자 나름대로의 표준이요, 잣대라지만 일반적으로 통하는 상식선을 넘어가면 곤란합니다. 바로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는 신앙이 되고 마는 것이지요. 열심만 가지고 올인하면 주를 삼키고 맙니다. 자극적이고 격하고 거칠은 표현만이 나의 뜻을 나타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순화된 언어로도 얼마든지 내 뜻을 충분히 나타낼 수 있지요. 또 그것이 글 쓰는 기술이 될 수도 있습니다. 좀더 순화된 언어 사용에 심사숙고는 당당 뉴스가 되기를.... 우리 모두 좀더 순화된 언어 사용을 힘쓰도록 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