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라는 것은 육체이다. 육체는 언제나 육체를 위하는 일만을 최고로 생각한다. 뇌는 언제나 자신의 신체가 행복해 하고 번영하는 것을 추구한다. 뇌는 눈을 통하여 판단 한다,물론 장님인 경우에는 귀를 통하여 판단을 하고 눈까지 보이지 않는 다면 느낌으로 판단한다. 즉 보이는 사물을 두고 뇌는 즉각적으로 판단을 하게 되는 것이다. 옳고 그름을 가장 먼저 판단하고 유익일까 손해일까를 생각한다. 옳고 그름을 먼저 판단하는 이유는 세상에 법이 있기 때문이다. 법에 저촉되는 것 자체가 손해가 되기 때문에 옳고 그름을 판단 하는 것이다.옳고 그름을 판단 하는 것 자체가 결국은 손익을 따지는 차원에서 나온 발상이다.
인간은 어떤 사물을 대하던지 즉각적으로 손익을 따져 이익을 추구하는 양상을 띄게 되어 있다. 누구라도 이 문제에서 예외는 없다. 손익의 차이로 미세한 손해는 볼지언정 큰 손해는 절대 인정하지 못한다. 예를 들면 내 눈앞에서 어떤 사람이 죽어가는데 그 사람을 도와주면 내가 죽는다는 것을 알면 절대 그런 손해 나는 짓은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아주 적은 손해는 기쁜 마음으로 하게 될까?..그렇치가 않다. 아무리 적은 손해라도 그것이 손해라는 인식을 하는 순간 부터 인간은 아깝다는 생각을 동시에 하게되고 손해를 감수하는 조건으로 내 행동에 의를 부여 하게 된다. 즉각적으로 내 행위를 선으로 여기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인간 본능의 사슬을 인간이 풀 수 있을까?. 그것은 가능하지가 않다. 인간은 육체를 지닌 존재이기 때문이다. 죄밖에 나올것이 없는 인간이기에 인간의 몸은 죄의 삯으로 흙으로 돌아간다. 선악과를 먹는 순간부터 인간은 선악을 구별하려는 욕망이 생겨났다. 날 떄부터 선악을 즉각적으로 판단 하는 본성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이 생각하는 선악이 하느님의 선악과 동일하지가 않다. 성경은 인간이 어떻게 해야 진정한 선인가 라는 것을 깨닫게 말씀을 주셨다.
아주 쉬운 것이다.. " 내 이웃을 내몸처럼 사랑하라" 이다.. 이것을 지키지 아니하면 성경의 모든 가르침을 지켜도 백해무익하다고 말씀 하신다. 난해한 성경구절을 굳이 들먹일 필요가 없다. 바리새인들처럼 성경말씀대로 살겠다고 발버둥치고 평생을 성경연구에 매달리고 하는 일들이 백해무익한 것임을 주님은 이 말씀 한가지로 들추어 내신다.
내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지 아니하면 인간의 행함이라는 것 자체가 모두 헛것이라고 말씀 하신다. 선악을 판단하는 것 자체가 모두 위선이요 회칠한 무덤같은 짓꺼리 임을 알리신다. 이 말씀을 앞에 두고도 내 행위를 남들보다 높게 평가한다면 그것처럼 역겨운 일은 없다. 인간은 모두가 똑같다. 보는 즉시 판단하고 인지하고 손익을 따져 몸이 반응한다.
지금 당장 천국보내 줄테니 죽으라고 해도 절대 그것을 믿지 못해 거부하는 인생이 인간이다. 코딱지 만한 것은 손해봐도 탈이 안나니 감수 하지만 내 재산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나를 따르라고 하는 명령에는 거부한다. 그 순간 내가 믿습니다 "라는 고백이 거짓임이 탈로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느냐 라는 변명이 있기 때문이다. 바리새인들이 그들의 행위를 열린 무덤의 행위라고 하자 미친듯이 날뛰듯이 오늘날도 똑같다..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지 않는 너는 지옥자식이다 " 라고 말씀 하시니, 저는 그래도 창기와 세리처럼 나쁜 짓을 많이 하지 않습니다. 가끔은 주님의 가르침에 따라 의로운 일도 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저는 의로운 사람입니다. 저만큼은 지옥자식에서 예외 일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성화된 삶을 살지 않습니까?.. 비록 내 이웃을내 몸처럼 사랑하지 않치만 말입니다.. 주님만은 아시지요.. 제가 의로운 행위를 한다는 것을... 그러니 가장 큰 계명을 지켜내지 못했어도 조그만한 것을 지켰으니 구원을 보장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뇌는 언제나 육체를 위해 온 정멸을 쏟아 붇는다. 이런 뇌구조가 온통 거짓임을 밝혀내는 분이 주님의 영이시다..
인간은 어떤 사물을 대하던지 즉각적으로 손익을 따져 이익을 추구하는 양상을 띄게 되어 있다. 누구라도 이 문제에서 예외는 없다. 손익의 차이로 미세한 손해는 볼지언정 큰 손해는 절대 인정하지 못한다. 예를 들면 내 눈앞에서 어떤 사람이 죽어가는데 그 사람을 도와주면 내가 죽는다는 것을 알면 절대 그런 손해 나는 짓은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아주 적은 손해는 기쁜 마음으로 하게 될까?..그렇치가 않다. 아무리 적은 손해라도 그것이 손해라는 인식을 하는 순간 부터 인간은 아깝다는 생각을 동시에 하게되고 손해를 감수하는 조건으로 내 행동에 의를 부여 하게 된다. 즉각적으로 내 행위를 선으로 여기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인간 본능의 사슬을 인간이 풀 수 있을까?. 그것은 가능하지가 않다. 인간은 육체를 지닌 존재이기 때문이다. 죄밖에 나올것이 없는 인간이기에 인간의 몸은 죄의 삯으로 흙으로 돌아간다. 선악과를 먹는 순간부터 인간은 선악을 구별하려는 욕망이 생겨났다. 날 떄부터 선악을 즉각적으로 판단 하는 본성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이 생각하는 선악이 하느님의 선악과 동일하지가 않다. 성경은 인간이 어떻게 해야 진정한 선인가 라는 것을 깨닫게 말씀을 주셨다.
아주 쉬운 것이다.. " 내 이웃을 내몸처럼 사랑하라" 이다.. 이것을 지키지 아니하면 성경의 모든 가르침을 지켜도 백해무익하다고 말씀 하신다. 난해한 성경구절을 굳이 들먹일 필요가 없다. 바리새인들처럼 성경말씀대로 살겠다고 발버둥치고 평생을 성경연구에 매달리고 하는 일들이 백해무익한 것임을 주님은 이 말씀 한가지로 들추어 내신다.
내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지 아니하면 인간의 행함이라는 것 자체가 모두 헛것이라고 말씀 하신다. 선악을 판단하는 것 자체가 모두 위선이요 회칠한 무덤같은 짓꺼리 임을 알리신다. 이 말씀을 앞에 두고도 내 행위를 남들보다 높게 평가한다면 그것처럼 역겨운 일은 없다. 인간은 모두가 똑같다. 보는 즉시 판단하고 인지하고 손익을 따져 몸이 반응한다.
지금 당장 천국보내 줄테니 죽으라고 해도 절대 그것을 믿지 못해 거부하는 인생이 인간이다. 코딱지 만한 것은 손해봐도 탈이 안나니 감수 하지만 내 재산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나를 따르라고 하는 명령에는 거부한다. 그 순간 내가 믿습니다 "라는 고백이 거짓임이 탈로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느냐 라는 변명이 있기 때문이다. 바리새인들이 그들의 행위를 열린 무덤의 행위라고 하자 미친듯이 날뛰듯이 오늘날도 똑같다..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지 않는 너는 지옥자식이다 " 라고 말씀 하시니, 저는 그래도 창기와 세리처럼 나쁜 짓을 많이 하지 않습니다. 가끔은 주님의 가르침에 따라 의로운 일도 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저는 의로운 사람입니다. 저만큼은 지옥자식에서 예외 일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성화된 삶을 살지 않습니까?.. 비록 내 이웃을내 몸처럼 사랑하지 않치만 말입니다.. 주님만은 아시지요.. 제가 의로운 행위를 한다는 것을... 그러니 가장 큰 계명을 지켜내지 못했어도 조그만한 것을 지켰으니 구원을 보장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뇌는 언제나 육체를 위해 온 정멸을 쏟아 붇는다. 이런 뇌구조가 온통 거짓임을 밝혀내는 분이 주님의 영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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