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 전쯤에 가출을 하여 오갈데가 없었던 나는 일명 양아치라고 불리던 사람들과 친구가 된 적이 있었다. 이들은 앵벌이를 비롯하여 도둑질 소매치기 구두딱기 등을 하면서 하루하루 어렵게 살아가던 친구들이 였다. 이들과 함께 밥을 먹으면서 잠시 지낸 것이였다.
그러나 사고방식과 성격이 다른 인간이 만나 살면서 평온만을 유지할 수는 없기에 그 중에 한 친구하고 다툼을 벌이게 되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오히려 더욱 친밀한 관계가 되었지만, 평생을 떠돌아 다니던 이 친구가 성인이 되어 갈 즈음에 어떤 여자와 만나 동거를 하게 되고, 어렵사리 이룬 가정을 지키기 위해,고아에서 벗어 나고자, 떠돌이 생활을 청산하고자, 어느 자식이 없는 부자집의 양아들로 들어가게된다.
어린 아이도 아니고 나이가 먹을때로 먹은 사람을 양아들로 삼을 정도라면, 이 친구의 외모와 됨됨이에 얼마나 좋은 평가를 하였는지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일생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던 꾀꼬리를 새장에 가두어 두면 울지를 못하다가 죽기직전에 마지막으로 슬픈 노래를 단 한번 부르고 죽는 것처럼, 이 친구도 부자집의 양아들로 들어가서 살다가 얼마못가서 제초제를 마시고 한많은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 친구가 자살을 할 즈음에는 나또한 삶이 너무도 고달픈 시절이였다. 친구들과 여자와 부모와 이 사회와 국가로 부터 완전히 배신을 당하였다고 생각하면서 이 한많은 세상을 원망하던 시절이였다.스스로를 자학하면서 술에 쩔어 살면서 언제나 죽음만을 생각하던 내 일생에 가장 가슴아프고 고통스러웠던 시절 이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에게는 실오라기 한가닥만큼의 삶의 희망이 보이지를 아니했다. 살면 살게 될 수록 내 앞길은 고통의 가시밭길 밖에 없다는 두려움과 절망만이 보였다. 더욱더 괴로운 것은 가난은 견뎌낼 지언정 친구들에게 당한 배신과 수모는 내 자존심이 도저히 용납 할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자해로 자살을 시도하였고 이유없는 폭력을 일삼아 누군가가 나를 죽여 주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아무에게나 폭력을 휘둘렀다. 그래도 멀쩡한 나를 보면서 결국 자살을 택하기로 하였다. 그런 굳은 결심을 하고 나 또한 눈여겨 보았던 제초제를 먹어 버렸다. 천안 순천양병원으로 실려간 나는 여러차례의 위세척 후에 살아 날 수 있었다.
다시 살아난 내가 너무도 보기 싫어서 나는 또다시 제초제를 먹었다. 그 구역질나는 제초제를 또다시 먹고 순천향병원으로 실려갔고, 위세척을 한 후에 다시 살아났다. 그렇게 죽음만을 생각하고, 살던 내가 지금의 아내를 만나고 부터 삶의 희망을 찾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내가 그랬던 것처럼, 자살한 이 친구도 사는 것이 너무도 힘들었나 보다. 살아온 인생의 절반 이상을 감옥안에서 지냈던 이 친구가 오랜동안 수형생활을 마치고, 사회에 나온 것이다. 친구들은 다 자기 살기 바빠서 쳐다 보지도 않고, 아내도 없고 자식도 없고 무일푼의 몸이 된 이 친구가 남은 인생을 헤쳐 나가야 할 것을 생각하니 얼마나 막막 하였을까?. 더구나 그런 곳에서 오랜동안 지낸 사람들의 대부분은 자존심이 엄청 강하기 때문에 누가 이래라 저래라 명령하는 것을 견딜 수 없어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남 밑에서 일을 잘 할 수도 없다.
이 친구처럼 가난 때문에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이 있고, 권력과 부귀 힘을 가진 자들이 패배와 몰락 부정부패로 인하여 자존심에 상처를 당하고 할복이나 자살을 하는 경우가 있고, 우울증이라는 병으로 인하여 그 정신적 슬픔과 고통을 잊고자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다.모두가 죽음이 이 세상을 사는 것보다 더 행복할 것이란 마음으로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이 사십대 중반에서 맨손으로 살아가자니, 얼마나 힘들고 벅찮을까?. 나는 그 친구를 위해 면회한번 제대로 간적이 없고, 그져 나만 살기 위해 애를 써 왔다. 이 친구가 사회에 나왔다는 것을 알고 난 후에도 만나서 밥을 한끼 먹어야지 벼르고 벼르기만 하였을 뿐 다음에 연락하자 그래 다음에 연락하면 되지 뭐 금방 죽을 것도 아닌데, 몇일 후에 연락 하지... 하루하루 미루기만 하였었다.마음 한 켠에는 불현듯 사회에 제대로 적응을 할 수없는 이 친구와 함께 약초를 채취하러 다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릴적의 인연이외에는 거의 함께한 날들이 없는 이 친구와 함께 하는 것도 어려울 것이란 생각에 쓸데없는 생각일거라며 혼자 도리질을 쳤었다.
그러다가 몇일전 모임에서 만났다... 나를 만나기 위해 이 친구가 온 것이다. 내가 안 나온다면 모임에 나오지도 않겠다고 한 이 친구를 만나기 위해 내가 그 모임에 나갔는데, 이 친구를 만난 후에 나는 가지고 간 산야초 효소를 다 마시고, 난 후 그것도 모자라서 맥주까지 마시고, 술에 진탕 취하도록 이 친구와 마시고 헤어져 돌아 왔는데, 그것이 마지막이 될 줄이야..
그리고 다음날 나는 약초를 채취하러, 남해안으로 내려갔다. 찜질방에서 하룻밤을 지새고 다음날 섬으로 들어 갔는데, 한창 산에서 약초를 채취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이 친구가 자살 하였다고.....
밖으로 나가는 배는 끊어진 상태였고, 나는 산에서 내려왔으나 가보지도 못하고 어쩔 수없이 섬에서 갇혀 하룻밤을 보내야 했다. 마음에 밀려드는 괴로운 심정을 달래기 위하여 그날 밤 민박집 주인에게 안주 한접시와 이제는 잘 마시지도 못하는 소주 한병을 주문하고 홀로 홀짝 홀짝 들이켰다.꼭 애정과 사랑을 쏟아주고 관심을 가져주어야 할 사람에게는 관심조차 없으면서, 내가 필요한 사람들에게만 깊은 관심과 애정을 쏟는 것은 아닌지.... 내가 그 친구를 죽음으로 몰아 넣도록 방치 하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가슴이 져려왔다. 그러나 그뿐 이였다. 그 다음날 배를 타고 되돌아 오면서...아무렇치 않은듯 아무런 일도 없었던듯 감정이 생겨나지 않는 내 모습을 보면서, 내가 변해도 많이 변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명의 친구가 제초제를 먹고 둘이 죽었다. 살아남은 자에게 죽은 자들의 죽음을 통하여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하느님은 일깨워 주고 있지만, 망둥어 마냥 세상미끼의 유혹앞에 덥석덥석 물고 늘어진다. 곧바로 벌어질 죽음의 향연을 알지 못한 채 말이다. " 그 옛날 어느 별에서 내가 세상에 나올 때 사랑을 주고 오라던 작은 음성 하나 들었지. 진실한 사랑을 할 때만 피어 나는 사랑의 장미"미워하는 미워 하는 마음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주기만 할 때 수백만송이 백만송이 꽇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나라로 돌아 가겠지......."
죽음이란 누군가에게는 손쉽게 찾아 오지만 누군가에게는 질기고 질긴 생명줄이 버티고 있어서 살아 남게도 된다.산자와 죽은 자의 차이는 종이 한장 차이일 뿐인데, 어찌보면 일찍 예방주사를 맞은 것일 뿐인데, 우리들도 오래지않아 그가 맞은 예방 주사처럼 두려움에 떨며 예방 주사를 맞아야 할텐데, 먼저 맞은 그 친구를 부러워 할 때도 있지 않을까 하는 어리섞은 생각 같은 것을 하게도 된다... .
어릴 적 추억의 흔적들이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하면 나란 존재도 흔적없이 사라질 날이 올것을...그날을 위해
남을 위해 울지 말고 나를 위해 울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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