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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창녀가 된 친구이야기......

by 골동품나라 밴드 리더 2004. 1. 1.

창녀가 된 친구이야기......

 

나는 국민학교 시절부터 오락실에 자주 갔었다. 지금이야 최신식 디지털 오락게임이 주종을 이루고 있지만 내가 처음 오락실에 구경을 갔을 때만 해도 전기장치로 움직이는 수동식 게임이 전부였다.

제대로 기억은 하지 못하지만 자동차는 모타에 의해 돌아가는 도로위를 반복해서 달리는 것이였으며 후일에는 총을 쏘면 그 불빛이 도깨비의 몸에 닿아 도깨비가 소리를 지르는 것이 최신식게임으로 나왔던 것 같다.

그리고 머지않아 삼팔육 세대들에게 선풍적 인기를 끌던 겔러그 게임이 나오기 시작했다. 모니터에 나타나는 화면상태로 게임을 한다는 것은 실로 놀라움 그 자체였다. 별것 아니던 오락실의 인기는 가히 하늘을 찌를듯이 치솟앗다.

나는 아버지의 폭력이 무서워 가출을 밥먹듯이 하는 처지였기에 오락실이 나의 아지트요 제2의 집이나 마찬가지였다. 하루종일 오락실에서 지내면서 친구들과 함께 오락실에서 게임에 정신이 빠져 있는 어린아이들의 주머니에서 몰래 돈을 빼내어 밥을 사먹기도 하고 오락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날 고등학교 동네형이  여자친구를 오락실에 데리고 오기 시작했다. 나이는 내또래밖에 안된 여자 아이였는데 그 어린 나이에 왜 그 성질 괴팍한 형을 쫓아다니는지 이해가 안갔다.

둘이서 애인사이라는 소문이 무성하고 나중에는 임신을 하였느니 라는 둥의 소문도 들렸다.어쨋거나 저쨋거나 여자 친구를 데리고 다니는 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동네 아이들의 부러음과 동경 질투의 대상이 되었다.

그런데 얼마후 나는 오락실에서 중학교에 다니던 여자친구들을 친구와 함께 꼬시게 되었다. 그들과 어울리기 시작하면서 동네형과 애인사이로 지내던 여자 아이가 그녀들과 친구이면서 부모없이 홀로 연세가 꽤 드신 할아버지와 단 둘이 쓰러져 가는 듯한 집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정 형편이 너무도 열악한 아이들에게 그들의 마음을 통제해 주고 위로해줄 부모마저 없다는 것은 길잃은 새끼양이 들판에 내던져진 것과 같은 상태일 것이다. 이 여자 친구는 돈 때문에 쉽게 동네 형에게 유혹을 당하고 그의 노리개로 살다가 나중에는 술집을 전전하며 오직 돈을 벌기 위해 유흥가를 떠돌았다.

다 쓰러져 가던 그녀의 집은 그녀의 할아버지가 홀로 지키고 있었고 그 할아버지가 살고 있는 집은 그녀의 여자친구들과 우리 남자친구들의 잠자리요 아지트요 보금자리로 변해있었다. 그런 환경이므로 그녀가 다시 그집에 와서 산다는 것은 아예 상상조차 할 수없는 일이 분명했다.

그런데 어느날 인가 한번 할아버지를 찿아 왔다. 그리고는 많은 돈을 보이며 자랑을 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서울에서 창녀생활을 시작한 것이였다. 그 어린나이에 창녀가 되어 할아버지 앞에 나타났고 많은 돈을 보이며 허랑방탕하게 지내는 자신의 친구들에게 함께 가서 일하기를 권했으며 친구들이 자신을 따라서 창녀가 되기를  간절히 원했는지도 모르겠다. [ 범죄란 공범자가 잇다는 것 만으로도 변명과 위안과 죄책감이 확연히 감소된다.]



중학생의 어린 나이에 창녀가 될 수밖에 없는 사회현실을 나는 그 때 몰랐지만 그 여자의 당차 보이는 눈동자가 아직도 내눈을 주시하고 있음을 그녀의 할아버지가 살던 집을 기억하다보면 떠오르곤 한다..

나와 아주 어릴적 사귀었던 여자친구가 서울에 살면서 가끔 그녀를 만나기도 하였단다. 그런데 마지막 소식은 그녀가 사창가에서 죽음을 맞이 했다는 것이다.물론 확실한 것인지 아닌지 정확한 소식통은 아니지만 그녀가 죽었다는 소문만은 내 귀에 들려왔다. 약을 과다 복용해서 죽었다는등 기둥서방에게 맞아 죽었다는둥 이상한 소문이 들려올 뿐이였다.

사람들은 이 소녀가 창녀의 직업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을 나쁜 것이라고 비난 하겠지만 나는 결코 그녀의 잘못이 아니라고 본다. 바로 나의 배부름과 나의 풍족함이 유지되는 것 자체가 창녀의 직업을 가진 그녀보다 더욱 악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가난 때문에 도덕질을 하고 강도질을 하고 창녀짓을 하는 것은 바로 나의 방관에 의한 행동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사실은 바로 우리들이 그들에게 죄를 범하도록 주도한 교사죄에 해당된다는 말이다. 내가 직접 죄를 짓지 아니했으니 나는 깨끗하다 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창녀보다 못한 짓이건만 창녀를 나쁘다고만 말하니 참으로 거져 받은 그리스도의 은혜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없도다..

창녀의 직업이 옳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악을 행할 수밖에 없는 존재들을 보면서 방관만 하고 입으로만 교훈을 일삼는 방관자적 행동을 하는 우리들이 더욱 큰 죄를 범하고 있다는 것을 직시하라는 말이다. 굶어 죽은 사람이나 창녀의 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그들을 위해 방관만 하는 그 행위가 창녀보다 나은 것이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내가 진정 주님의 뜻에 따라 행함을 하였다고 자부하는 교인들이라면 모든 것을 바쳐 그들을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전부 드리지 않는한 욕심가득한 욕망이 마음에 남아 있다는 증거이며 창기의 행동을 계속해서 범하고 잇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 사실을 모른채 하나님의 은혜 덕분에 이제 바른 생활을 한다고 자부하고 사니 우리가 바리새인이 아니고 무엇인가? 선하고 의로우신 분은 주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