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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내 친구는 예뻤다.....[첫번째]

by 골동품나라 밴드 리더 2006. 10. 21.

그녀를 처음 만난 때는 중학교 2학년이 막 되어서 였다. 친구들의 아지트인 고바우오락실에서 그녀와 그녀와 그녀 친구들을 보고 추파를 던지며 은근슬쩍 몸을 기대면서 관심을 나타냈었다. 그리고 그녀와 그녀친구들을 괴롭히는 후배녀석들을 호되게 야단치고 상처난 곳에 약을 발라주면서 친해 졌었다. 그 때부터 세상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들과 함께 어울려 있으면 온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무지하게 기뻤다.

 

허구헌날 술주정을 하시며 뭇매를 드시는 아버지가 계시는 무서운 집안 풍경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공부도 학교도 세상 모든 것이 다 무의미 해졌다. 오직 그녀들과 함께 어울려 밤새 떠들고 놀고 노래하고 이야기꽃으로 밤을 지새우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였다. 그녀는 윤형주의 "바보" 라는 노래를 자주 불렀다. 그 노래를 생각하노라면, 아직도 내 귓가에 그 노랫자락이 아련히 들려오는 느낌이 든다.

 

그녀의 얼굴은 활짝핀 하이얀 복사꽃 같았다. 남자 친구들은 모두 그녀에게 시선을 떼지 아니했다. 서로 그녀를 차지 하려는 속내가 있는 듯이 보였다. 어느날 친구집에 남자 네명과 여자 네명이 모였다. 하루종일 신나게 놀고나서 여자친구를 선택하기로 하였다. 애인이라는 개념보다는 친구로써 한 팀이 되어 보자는 의도 에서 였다.

 

여러가지 논란끝에 고스톱으로 결정하기로 하였다. 모든 친구들이 그녀가 자신의 파트너가 되기를 바라는 눈치 였는데, 그럴 가능성은 완전히 불가능이였다.여자친구를 선택하는데에 있어 고스톱으로 결정한다는 것이 우수운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그 때는 친구들이 사심이 없었고 그만큼 우정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순수함이 묻어 있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였다.내 속내를 드러내는 것이 너무 부끄러웠다고나 할까? 그녀는 나의 죽마고우인 내 친구와 짝을 이루었다. 속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지만,표현을 하지는 못했다.나는 아주 현명하며 당차 보이는 듯한 여자친구와 짝을 이루었다.

 

 그리고 몇날 몇칠을 신나게 미친듯이 입이 터져라 웃으면서 학교도 가지 않고 유토피아 같은 행복의 낙원에서 꿈을 꾸는 듯이 지냈다. 그 덕분에 우리 친구들은  얼마후 하나, 둘, 셋 결국은 많은 친구들이 학교를 그만 두었고 나도 예외가 아니였다. 결석을 한 나에게 옆드려 뻗치라고 선생님은 명령 하였지만, 나는 죽어도 못하겠다고 버텼다.  얼마 후 학교를 그만 두었다. 그리고 나서도 우리들은 모였다. 순수한 그 우정으로 우리들은 즐거운 날들을 보냈다.

 

 

그러나 세월은 우리편이 아니였다. 점차 어린 양들의 모습에서 늑대와 여우로 변해가는 것이였다.자연적인 사람에서 현실적인 사람으로 탈바꿈 해가는 것이였다. 몇년이 흐르면서 그녀들이 다른 남자친구들에게도 관심을 가지고 우리들도 다른 여자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감히 상상 할 수도 없었던 미움이나 원망도 생겨나고 나는 그녀들에게 몹쓸짓을 하기도 하였다. 그녀들은 내가 무서워서 도망을 다녔다.

 

그리고 몇년의 세월이 더 흘러 그녀가 내 친구의 친구와 동거를 한다는 소식이 들려 왔다. 날마다 폭력적인 남편에게 수없이 매를 맞는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가 하는 술집을 지나가다가 그녀를 언듯 보았다. 그녀는 얼른 얼굴을 돌렸다. 나도 얼굴을 돌렸다. 그리고 그녀가 이혼 하였다는 소리가 들렸왔다. 딸아이를 남겨두고 떠나간 것이다.

 

많은 세월이 흘러간 어느날 나는 그녀 친구를 만났다. 그녀친구들은 아직도 서로 연락을 하면서 친하게 지내고 있었다. 그녀와 친구들이 모이던날, 나는 어릴적 남자 친구들을 모이게 하였다. 어릴적 수많은 친구들이 모였지만, 너무 오랜만에 만난 탓인지 서로를 잘 모르는 것 같았고 어색한 분위기가 연출 되었다.

 

그 때 그녀가 거기에 나왔다. 그녀는 변호사 사무장일을 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여서 딸아이를  낳고 잘 살고 있다고 하였다. 그녀가 잘 살고 있다는 그 이야기가 나를 기쁘게 만들었다..